이름들의 인문학 by 박지욱
초기 의학의 발전과정은 재미있고, 배울점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의학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의 '메스를 잡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외과적인 수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이름들의 인문학'에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인 세균과 바이러스, 약, 백신 등의 발전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 읽는 내내 흥미로웠습니다.
이 책은 이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으로, 총 3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의학과 관련된 내용, 2부에서는 역사 문화 지리 문명과 관련된 내용, 3부에서는 우주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동떨어진 섬에서 유래한 인슐린'이었습니다.
섬을 뜻하는 외국어 ile(프랑스어), insel(독일어), island(영어), isla(스페인어), isola(이탈리아어)에서 시작된 내용이 격리를 뜻하는 영어 isolation으로 이어집니다.
14세기 이탈리아는 흑사병 유행지에서 온 선박을 항구 밖에 있는 섬에 격리를 시켰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검역'이었습니다. 이렇게 섬에 결리를 시켜 관찰한 기간이 40일이었고, 40일은 이탈리아어로 'quaranta giorni'였고 이것은 영어로 격리를 의미하는 quarantine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 19의 판데믹이 발생 한 이후 각국은 검역(quarantine)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바이러스 노출이 의심되는 사람에게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같이 검역 quarantine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 경우가 그동안 흔하지 않았는데, 이 단어의 기원을 이 파트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검역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insulin)으로 이야기가 연결됩니다. insulin도 섬과 관련이 있는 단어였습니다. 인슐린은 췌장의 내분비 조직(=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조직)인 랑게르한스 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섬(insula)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서 '인슐린'이라고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1869년 독일의 의과대학생이었던 랑게르한스가 현미경으로 췌장을 관찰하다가 섬처럼 흩어져 있는 세포 집단을 발견하였고, 그 이후 물질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것이 알려져서 그 세포 집단을 '랑게르한스의 작은 섬(islet of Langerhans)'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의과대학에서 생리학, 조직학, 내과학 등을 공부할 때 항상 나왔던 이 랑게르한스라는 분은 의과대학 시절에 의학 교과서에 남을만한 위대한 발견을 했었다는 점도 신기했습니다.
단어의 기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보니 라틴어를 포함하여 여러 국가의 언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고, 의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참고하시면 도움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