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부터 맥도날드까지 훑어지는 독일의 기차여행
나는 독일의 기차를 매우 좋아한다. 차가 없는 유학생이었던 나에게 (지금도 차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독일에서 기차를 타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악기 가방 들쳐 매고 다른 도시로 연주를 가던 일,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던 날의 설렘, 유명한 연주자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큰 도시로 향하던 길...
가벼운 연착은 기본이고 예정된 기차가 사라져 버리기 일쑤라 독일의 기차 시스템은 악명이 높지만
기차를 타는 날 설레는 마음에 나는 그런 불편함은 거뜬히 이해해버리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
내가 기차를 좋아하는 건 기차에서 내린 후 무언가 즐거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 감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도시 어느 역에서 출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밀린 카톡에 답장을 보내고 고개를 들어보면 이미 창밖엔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있다. 파란 하늘과 닿아있는 초원이 끝도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 초원 멀리에는 꼭 빨간색 세모 지붕의 집 한 채가 있다. 시력검사기에 눈을 대고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쳐다봐야만 했던 바로 그 그림 속의 집을 독일에서 나는 자주 만나게 된다.
세모난 집이 사라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면 터널이 나온다. 창밖의 풍경에 넋을 놓고 있다 깜깜한 터널에 진입하면 당황스러운 표정의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입은 헤 벌리고 있는 바보 같은 얼굴이다. 달리는 기차 창문에 반사된 내 얼굴은 거울 속의 내 얼굴과 셀카를 찍을 때의 얼굴과는 다른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얼굴은 어떤 얼굴과 가장 비슷할까 생각하다 보면 다시 사방이 환해진다.
터널이 긴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의 초원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기차는 중세시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그만 마을을 통과한다. 흰 벽에 갈색 나무 대들보가 격자무늬로 되어있는, 구시가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전통양식의 건물들이 가득한 동네이다. 그런데 그 중세시대 마을엔 빠르게 지나가는 포르셰도 있고 맥도널드의 노란 간판도 있다.
어떤 구간은 이미 자주 다녀 그 풍경을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매번 마치 기차를 처음 타본 어린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몇 시간이고 지속되는 여정에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바깥을 읽어낸다.
기차가 주택가 바로 옆을 지나갈 땐 그 짧은 순간 누가 사는 집인지 샅샅이 조사라도 하듯 낡은 트램펄린과 누워있는 나무 자전거, 빨랫줄에 매달려있는 색 바랜 수건 따위를 살펴본다.
당나귀와 닭이 돌아다니는 농장을 지나면서는 저곳에 사는 독일 농부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나의 주말과는 많이 다르겠지, 하루 일과를 끝내면 어떤 술을 마실까 - 하는 실없는 상상을 끝도 없이 늘어뜨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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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즐거운 기차여행은 이제 몇 년 전에 누리던 추억의 호사가 되었다. 아기 엄마가 된 이후 기차를 타는 것은 나에게 곤욕스러운 일이다. 남편 없이 아기와 단 둘이 기차를 타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아기가 크게 울면 어쩌지, 화장실도 불편한데 응가라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에 빨리 기차에서 내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남편에게 아기를 맡겨두고 독일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친구들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