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20개월 아기와 엄마의 아침 단상
이르면 아침 7시 반에서 늦으면 9시 사이 우리 가족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0개월 아기 박시아의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 세 식구는 커다란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잔다. 아직 시아의 방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일어난 시아는 퉁퉁 부은 얼굴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본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일도, 학교도 올 스톱이라 엄마나 아빠가 시아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쪽으로 돌아 누워있는 엄마를 타고 넘어 얼굴에 뽀뽀를 해보지만 엄마의 눈은 떠질 줄 모른다. 할 수 없이 아빠 쪽으로 넘어가 잠든 아빠를 세차게 흔들어보지만 아빠의 코 고는 소리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숨을 푹 내쉬고 시아는 이불속 어딘가에 파묻혀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찾아본다. 요즘 좋아하는 삔쀠 (펭귄)이나 꿔끼이(코끼리) 영상이나 사진을 보고 싶지만 아무리 이리저리 만져보아도 원하는 화면은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핸드폰을 잠가두었기 때문이다. 시아는 할 수 없이 침대 밖으로 나와본다. 침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지만 시아는 엄마 아빠가 일어나기 전 혼자서 침실을 나서는 법이 없다. 시아는 침대 옆 탁자 위에서 잠들 기 전 엄마가 읽어주었던 책을 몇 개 골라 다시 침대로 낑낑대면서 올라온다.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다 보면 엄마가 뒤척이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시아는 재빨리 엄마를 깨운다.
“엄마이야 !!”
큰 소리로 엄마를 불러보고 그도 아니면 엄마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보기도 한다. 깜짝 놀란 엄마는 잠에 취해 오만상을 찌푸리며 실눈을 뜬다. 시아는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엄마를 바라본다. 그 환한 미소가 너무 예뻐 엄마는 결국 눈을 크게 뜨고 시아를 향해 웃는다.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아까와 달리 여유 있고 따뜻하다. 엄마가 일어나서 기쁘다는 인사가 틀림없다. 시아는 엄마가 하품을 하고 고양이처럼 온몸을 쭉 늘리며 기지개 하기를 잠시 기다린다.
“아나죠 아나죠 (안아줘)”
아침 8시, 시아는 엄마에게 안겨 거실로 나온다. 밤사이 빵빵해진 기저귀를 갈고 나면 시아는 오늘의 첫 놀이를 탐색한다. 단추를 저금통에 집어넣기도 하고 컵을 쌓을 수 도 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기린 인형을 가지고 따그닥 따그닥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시아가 거실을 누비며 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는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엄마는 매일 아침 똑같은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똑같은 순서로 스트레칭을 한다. 본격적인 육아에 나서기 전 밤사이 뻐근해진 몸을 푸는 것이다. 어깨를 풀어주고 그다음엔 골반 스트레칭을 한다. 잠은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시간인데 어쩐지 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침에 더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시아는 블록을 쌓으면서 스트레칭 비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하나 둘 셋 넷을 따라 한다. 어느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시아가 배고프다는 표시를 낸다.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 주방에 가자고 한다.
“시아야 배고파요?” “네” “우리 맘마 먹을까요?” 네”
주방에 들어선 엄마는 아이패드를 켜고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이 시간에 하는 영상통화가 익숙해져서 이제 외할머니는 화면이 뜨기도 전에 시아야 하고 손녀딸을 부르기 시작한다. 엄마가 호박과 버섯을 잘게 잘라 볶음밥을 만드는 사이 시아는 외할머니에게서 고추와 오이, 상추의 생김새와 이름을 배운다. 시아는 고추를 먹어 본 적이 없지만 매번 고추를 들고 맵다는 시늉 하는 외할머니 덕분에 시아도 고추를 보고 ‘아이 매워’라고 한다. 시아의 아침밥이 준비되면 시아는 아기의자 위에 앉혀진다. 아이패드는 식탁 위로 올라온다. 밥을 먹으면서도 외할머니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함께 숫자를 세어보기도 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신체 부위의 명칭을 알려주기도 한다.
시아가 외할머니와 밥을 먹는 사이 엄마는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시아가 아침에 어질러 놓은 장난감을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고 바닥에 쌓인 먼지들을 닦아낸다. 거실에서 시작해 침실과 화장실까지 훑고 나면 시아도 밥을 거의 다 먹어간다. 시아가 흘리거나 혹은 던지는 밥풀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주방 청소는 맨 마지막이다. 청소를 마치고 주방에 돌아온 엄마가 외할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매일 통화를 하지만 시아가 얼마나 많이 컸는지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이야기를 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듣는 새로운 근황인 것처럼 매번 시아의 귀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크게 감탄한다.
아무도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 시아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함미야아아아아아” 혹은 “엄마야야아아아아아” 라고 외치며 엄마와 아이패드 너머의 할머니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돌린다.
외할머니와 함께 아침밥을 다 먹고 나면 아이패드와 함께 시아도 아기의자에서 내려온다. 다시 자유로워진 시아는 주방을 누비며 - 할머니가 자기를 잘 지켜보는지 틈틈이 확인하면서- 주방 놀이를 한다. 엄마가 깎아준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나머지는 도마 위에 얹어놓고 장난감 칼로 쓱쓱 썰어본다.
요란했던 아침밥의 흔적을 다 치우고 나면 엄마는 시아의 손을 잡고 시아는 아이패드를 품에 안고 다시 거실로 나온다. 거실에 도착한 시아는 아이패드를 적당한 위치에 내려놓는다. 이번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바이올린은 시아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바이올린을 멋지게 꺼내 들고 다시 엄마를 부른다. 엄마와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는 뜻이다. 하지만 엄마가 자신의 바이올린은 잠을 자고 있어서 연주할 수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시아는 혼자서 신나게 연주 -하는 척- 을 한다. 엄마와 아이패드 너머의 외할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조그만 바이올린을 가슴에 얹은 채 명연주를 뽐낸다.
아이패드의 배터리가 떨어져 갈 즈음이면 그제야 외할머니와의 영상통화도 종료가 된다. 오전 내내 얼굴을 봤으면서도 할머니에게 빠빠이 하자면 시아는 싫다는 표시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시아와 외할머니가 눈물겨운 작별을 하는 사이 엄마는 아직도 쿨쿨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우러 간다. 아빠는 잠에 취해 눈을 뜨기가 아쉬웠지만 해가 중천에 떠있는 것을 알고선 순순히 일어난다. 아침 시간 동안 혼자서 시아를 돌보았을 엄마를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안고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일어나는 것이다.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긁적이며 큰 소리로 하품을 하고 시아를 향해 장난을 걸기 시작하면 엄마는 점심을 준비하러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엄마 아빠는 점심에 항상 구운 빵에 치즈와 야채를 올려 먹는다. 오늘은 어제 사온 계란으로 스크램블 에그도 곁들여냈다. 시아를 다시 아기의자에 앉히고 나면 엄마와 아빠도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엄마는 아빠보다 성격이 급해서 자기보다 무엇이든 천천히 하는 아빠를 나무늘보라고 놀리곤 한다. 이런 속도 차이는 함께 밥을 먹을 때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토스트기에서 뿅 하고 빵이 올라오면 엄마는 아뜨뜨드 하며 빵의 온기가 사리지기 전 버터를 빠르게 바르고 한입 베어 문다. 엄마는 첫 번째 빵을 끝내고 두 번째 빵을 토스트기에 넣는 동안 아빠는 여전히 손바닥에 빵을 올려놓은 채 버터를 꼼꼼히 바르고 있다. 아빠가 계란 요리를 처음으로 입에 가져갈 즈음 엄마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과일을 내온다. 원래도 좁지 않았던 엄마 아빠의 속도 차이는 엄마가 시아를 낳고 나서 더욱 크게 벌어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아는 빠르고 행동에 주저함이 없는 엄마를 닮았을까, 느리지만 계획적이고 꼼꼼한 아빠를 닮았을까. 엄마는 문득 궁금해졌다. 미끄러운 치즈를 포크로 찍느라 집중하고 있는 시아를 보며, 시아는 엄마처럼 빠르게 움직이되 아빠의 꼼꼼함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시아를 부탁하고 주방을 나선다. 엄마에게 드디어 샤워를 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가 문을 닫고 엄마는 그제야 휴 하고 큰 숨을 내뱉는다. 드디어 혼자만의 자유시간. 다리를 붙잡고 쳐다보는 아기 없이 혼자 변기에 앉아있는 게 이렇게 소중한 기분이었나. 물을 내리고 일어나며 엄마는 아빠가 시아를 책임지고 있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길고 따뜻한 샤워를 하겠노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