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날에는’
회사에 소속되어 다닐 때 혼자 살던 동네는 역삼동으로, 걸어서 출퇴근 가능한 곳이었다. 테헤란로부터 점점 옅어지는, 건물 밀도가 낮은 주택가에 있었다. 역삼역 주변은 복잡하고 분주한 평일과는 다르게 주말과 휴일에는 여느 동네 못지않은 한적함이 있었다. 햇빛 좋은 날, 평일에는 정장 입은 회사원들이 가득한 대형건물 공지에서 편한 차림으로 피크닉 하는 외국인들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아침은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러 걸어가는 20분 동안 사람 한 명, 차 한 대 보지 못한 적도 있다. 영화 속 텅 빈 도시였다. 같은 공간에서 확연하게 다른 도시의 나른함을 즐기는 것이 나의 동네 생활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쌍문동이다. 일을 집에서 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과 생활 그리고 시간, 공간 모든 경계가 느슨하다. 내가 느끼는 동네의 평소 분위기도 그렇다. 이 두리뭉실함 속에, 오히려 조금 더 분명 해지는 것이 있다. 생활방식과 취향이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방식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탐색과 선택을 해야 한다. 일상은 시간과 과정을 거치더라도 이유가 분명해진다. 무언가를 더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것도 필요하다.
처음 이사 와서부터 적극적으로 동네 탐방에 나선 우리는 오랜 기간, 느리긴 하지만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곳곳을 누비고, 최근에는 산 넘어 동네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북 적 이 던 오래된 가게, 새로 생긴 카페와 식당에 가보고 ‘오늘 같은 날에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식사 메뉴 선택지를 채워간다. 내가 작동시키는 레이더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편리와 익숙함 만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