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미술관에서 전시장 입구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려고 하는데, 바로 옆에 서 있던 안내자가 짧고 빠르게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우리뿐이었지만, 말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고, 얼핏 들었지만 상황과 관계없는 어떤 말소리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만의 중얼거림이었을까. 나는 고개를 돌려 보았는데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일행들과 폭을 맞추려고 바로 몸을 돌려서 계단을 오르며 전시장을 향했다. 이상함이 전시 내내 나를 감쌌는데, 중간쯤이 돼서야 해소되었다. 그 일은 어떤 전시의 퍼포먼스였다. 작품 설명이 적혀 있었고, 그가 나직하게 말한 것은 짤막한 기사였다. 그것은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에게 다시 물었어야 했을까? 나에게 전할 말이 있나요? 의도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남았고, 지금도 간간히 그때가 생각나는 것 보면 예상하지 못한 짧은 사건이 기억에 미치는 잔상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런 것이라면, 징검다리 건너던 천변에 그것들이 나타난 때도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늘 지나다니던 야트막한 물가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공간처럼 머물렀다. 어떤 움직임이기도 했고, 단지 물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검은 그것들은 종종 물가에 나타났다. 그들의 기사를 본 것이 그 전시의 마지막이었다. 남녀노소 지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깨끗한 물 때가 되면 삼삼오오 사람들이 천변에 발을 담그고 나는 그들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이런 만남은 더 직접적이지 않은가.
지나다 보면 내가 속으로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단번에 알아채어 답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내가 눈치채지도 못한 경우 거나 그래서, 비슷하지만 아주 몰라서 천진난만한 경우에 그들의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과 경험 데이터에서 즉각 처리된, 우리가 만난 순간, 그 짧은 시간 안에 관찰과 파악이 끝나고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부분만을 짚어주는 조언을 듣는 경우다. 불필요함이 스며들 틈도 없다. 그들은 주변의 소란스러운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잡한 매장이나 시장에서나 나직하면서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들은 또렿하게 나에게 전도된다. 나는 그들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많은 이들이 조언을 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이런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직접 대면하는 깊숙한 경험을 하는 것은, 그 순간은 쉽게 잊히지 않고 새겨진다. 물론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시장에서 사소한 물품과 관련된 일이지만, 이 대수롭지 않다는 말은, 그만큼 중한일이 아니라는 말은..
그런데 말입니다, 아니 그토록 중한일은 어쩌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가 작고 어디부터가 큰일일까. 큰일은 사실 큰 일이다. 어떤 일을 꿈꾸지만 큰일은, 대수로운 일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그 일의 보통은 연속된 소소한 일들의 임계치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그 안의 쇄새한 일들을 큰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 일부가 된다. 큰일 하는 사람의, 큰일의 소쇄한 일은 그 큰일의 경계 지워짐이 그 일의 중함에 따라 다른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다 큰일까지이고 대역이나, 위업이라는 말을 쓸 정도의 일은 생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운동가의 그 일은 거사다.
지나간 전시에서의 망설임 때문이었는지 내가 만난 이 세명의 전문가들과의 주고받음은 실 생활에서의 유용함까지 확인되면서 생각할수록 기분 좋은 완결된 사건으로 남아있고 오늘은 그것들을 기억하는 밤이다.
잡화 매장에서 목욕 수건을 팔고 있는 판매대의 담당자가 말했다. '가끔 삶아 관리하면서 평생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수건을 정말이지 20년 넘게 사용 중인데, 조금 해진 것 빼고는 깨끗하다. 그때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물건을 구입했고 다른 사람들도 좋다고 생각했을 테니 이름을 들어봤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과연 최근에 일상용품 브랜드와 협업하여 제품을 내놓은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이 글의 시작은 최근에 쇼핑을 하던 중 생긴 반가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시장에서 김치찌개용으로 얇은 어묵을 사려는데 작은 봉지 기본 양이 8장이어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번 사용할 것은 4장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나는 물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장님이 '남은 것은 냉동실에 보관하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눈이 동그래지며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냉동실의 용도란 그런 것이다.
계산대에서 물건들을 정리해 주시던 직원분이 비닐로 한번 더 싸 주시겠다고 했다. '괜찮습니다.'라고 했는데 '비누와 함께 음식을 담으면 냄새가 베이기 때문에 좋지 않아요. 비누와 따로 담고 음식을 한번 더 포장해서 가방에 넣는 게 좋겠어요.'라고 하셔서 또다시 눈이 번쩍 뜨이며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순순하게 답했다.
오늘, 날씨기록 24.08.07. 24°-32° 서울 (잠시 비, 그리고 해)
춘노 작가님이 '입추'라는 사실을 전해주어서 아직 무덥게 느껴지는 날씨지만 숨이 트인다. 옆집의 조금 시크한 꼬마가 지난 학기에 리코더 연주를 시작했다, 꾸준하게 하는 것이 '재미를 찾았나 보다'하며 신기해했는데 점점 곡이 늘어나고 정교해지더니 클래식과 애국가를 넘나들었다, 잘한다! 요즘에는 뭔가 익숙한 연주를 수시로 하는데 '뭐였지?' 생각해 보니 그건 지하철 상행선의 연결 도착음으로 리로리리/ 리로리로\ 띠로리로리^ 띠로리로/ 띠리리링\ 띠로^리로리\ 이런 느낌이다. 기다리던 열차가 온 것 같은 소식이 자꾸 전해진다.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 냄새가 가득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렇지만 알 것 같다, 아직 오늘은 비가 그치고 한 낮이 되면 매우 습하고 더울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