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인사동길은 새로 짓고 있는 건물 높이를 짐작하게 하는 타워크레인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노점의 장식품은 유행을 타며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뀌곤 하는데, 이번에는 물고기 나무조각 장식품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고, 손님은 보지 못했지만 꿀타래 가게도 여전하다. 비워진 점포들이 여전하게 비워져 있는 것도 여전하다. 오늘, 내가 다른 날과 다르게 이 길을 보는 것은 j의 서예용품 구입에 따라나섰기 때문이다. 관광기념품들에서 눈길을 안으로 조금 옮기니 붓, 화선지, 벼루, 먹 등 문방사우를 구입할 수 있는 필방들이 보이고, 사야 할 것들이 있으니 자세히 안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들어가 볼 수 있는 상점들이 많다. 보지 못했던 시선이 지나치던 인사동길에 한 줄 더해졌다.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니 이곳이야말로 사교의 장이 아닌가. 그가 속 깊은 이가 되는 까닭은 곁에서 침묵하기 때문이다. 필담나누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내가 사귄 친구는 길 건너 작은 골목의 서점에서 만난 노견이다. 붉은 실을 목에 걸고 주인아주머니가 간식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다가 관심을 표한 나에게 다가와 빈 손을 킁킁거리더니 볼일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여러 필방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아서 놀라곤 했다. 전각을 위한 도구로 다양한 석종과 형태, 크기로 다듬어진 전석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며 글쓰기 도구를 사고 있다, 먹을 갈고 붓을 들어 글 쓰기를, 새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전벽돌이 깔린 거리에서 좁은 현관을 통해 포장된 한지 더미 사이로 들어갔다. 올라오는 이의 길을 비켜가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들어섰을 때 차갑게 닫힌 서먹한 공기 틈에서 달고 노곤한 냄새가 어른거린다, 적당히 또똣하고 단내 나는 옥수수. 이걸 알아챈 것이 나만이 아니라면 뭔지 적잖이 궁금했을 거다. 알갱이마다 윤나는 껍질을 가지고 알차게 익은 것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건 출발하기 전에 동네, 산지직송에서 사가지고 넣어 놓은 찐 옥수수가 양 어깨에 메고 있는 백팩 안에서 이중으로 묶어놓은 비닐봉지를 흘러, 내부에서 방수처리되고 두께감 있게 짜인 검은 합성섬유조직 사이로 나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식사 때 외에 찐 구황작물들을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내가 먹고 싶어 옥수수 한 봉지를 사는 일은 거의 없다. 올해는 선물 받은 옥수수를 찌기도 하고 강냉이밥도 해서 알차게 먹었는데, 참, 기름을 넣고 볶아서 소금을 뿌려 먹은 것도 좋았지만, 옥수수는 옥수수일 뿐. 이런 것들이 무색하게 그때부터 이 옥수수는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대상이 되었는데, 경계를 만드는 포근한 장막으로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환경의 공기사이를 은은하게 구분하여 알려주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가방을 세워 살짝 끌어안는다. 여름의 옥수수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친밀함이랄까. 찐 옥수수를 넣어 사대문 도성 안으로 상경한 나는, 이거 조금 촌,스럽기는 하지만 어쩐지 어울리는 구성이다. 묵직한 단맛의 고구마는 겨울을 견디게 하고, 포슬포슬 담백한 감자는 여름을 가볍게 했는데 이 반짝이는 옥수수알들의 경쾌함은 짧게 스치는 차가운 바람만으로도 가을이라고 불뤼는 오늘 나들이길에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