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구성
처음 간 동네의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굴짬뽕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바구니를 들고 저-쪽부터 수저통을 채우기 시작하셨다.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정도로 한창 바쁜 점심시간은 지나 빈자리가 생긴 때이다. 우리는 원래 가려던 칼국수집 앞에서 뿌옇게 김이 차있는 실내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출입문에 재료가 소진되었다는 메시지를 보고는 근처의 다른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비어 있는, 창가 쪽 옆 테이블 서랍을 채우고 우리 자리로 오셨다. '올 것이 왔군.' 자연스럽게 하던 얘기를 멈추고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약간의 애매한 시간과 장소에서 생기는 익숙해지지 않는 어색한 순간이다. 다만 오늘은, 이런 일은 처음인 작은 사건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나의 오른편으로 오셔서 서랍을 열고 수저와 냅킨을 채우시고 조심스럽게 살피시더니 초록색 장미가 새겨진 새 냅킨 한 장을 살포시 식탁에 올려놓고 자리를 옮기셨다. 흔한, 아니 요즘에는 오랜만인 것 같은 옛날 감성의 꽃잎 몇 장과 줄기, 나뭇잎으로 단순하게 나눠진 초록의 장미, 그 옆 '감사합니다' 메시지 역시 단색 출력되어 있다. 냅킨 한 장이 이런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은 어쩐지 조금 귀여웠다. 아주머니의 메시지가 나에게 전달되었다.
'네, 이 마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랍을 열고 수저를 꺼낸 것이.
2인용 분식집 테이블 위 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수저통에는 숟가락, 젓가락 2세트가 꽂아져 있었다. 종지에 작은 단무지 조각들을 올려놓고 떡볶이 그릇을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분식집에는 포장 손님들이 많고 떡볶이를 뒤적일 때마다 매콤달콤한 김이 나는 솥뚜껑 앞자리에서 어묵과 꼬마김밥 먹는 손님들이 종이컵에 담긴 국물을 홀짝이며 서 있다.
4인용 테이블 두 개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물통과 컵을 내어주시고 주문을 받으셨다.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으려고 하는데,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이 덮인 수저통이 가운데 놓인 쟁반 위 작은 양념통들의 반대편, 그러니까 옆 테이블 쪽에만 놓여 있었다. 힐끗 보고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어르신은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드시다 말고는 수저통을 번쩍 들어서 우리 테이블로 옮겨 주신다. '이거 쓰면 됩니다.'
아이쿠, 어르신..
그렇게 오래 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식탁에 세워있어서 위험해 보이거나 눕혀져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은 수저통을 대신해서 말끔하게 보이는 식탁을 신선하게 바라보았다. '헤헤, 수저는 여기 있지!' 자리에 앉으면 위치를 파악하고 가까이 앉은 사람이 수저를 놓는다. 보통 수저통은 통로의 반대쪽에 많이 위치해 있었지만, 서랍식 수저통은 열리는 공간을 확보해야 해서 통로 쪽에 많이 설치된다. 먼저 안쪽부터 앉은 사람이 수저를 놓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서랍식 테이블은 나중에 통로 쪽으로 앉은 사람이 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옆 테이블에서 소곤소곤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왼쪽 편 수저 서랍통이 스르륵 눈치 없이 열린다. 탁, 하고 고정이 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열린다. 어쩔 수 없이 몸은 최대한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고 손을 뻗어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저는 냅킨을 꺼내려는 것뿐이고, 그때마다 서랍을 닫으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다시 열리리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건 완전히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냥 열린 상태로 둘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지런하게 식탁에 놓아둔 수저와 너무 어울리지가 않아요. 이 식탁은 지금 우리의 일부가 되어있어요, 이건 마치 삐져나온 주머니 안감 같거든요.
요즘 정겹게 보이는 동그란 쟁반 가득 차려지는 백반 사진들을 보면 쟁반에 수저가 같이 놓인 경우가 많았다. 예전 반상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한 상 받아 들면 부족한 것이 없다. 한 10년 정도 된 것 같다, 서랍식 수저통 있는 식탁 본 것이. 처음 보았을 무렵에는 반찬 가짓수가 많고, 불판도 있는 집에서 공간 활용하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 집 두 집 보다가 요즘에는 없는 곳을 보기 힘들 정도로 많고,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많이 보았다. 이곳들은 관리 시간이 있기 때문에 수저통을 채우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담당직원이 도구들을 가득 채운 이동식 서랍통을 가지고 다니며 이동을 시작한다. 꺼내지고 놓이고 사용된 것은 다시 이동을 시작한다. 치워지고 닦여지고 말려진 것은 다시 이동을 시작한다.
다양한 기능이 들어오는 식탁에 서랍식 수저통은 어쩌면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가운데 숯불을 올릴 수 있는 식탁, 양꼬치 꼬지의 돌기가 틀에 맞춰져 돌아가는 식탁도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가운데에 설치되기 때문에 주변으로 반찬 그릇들이 놓인다. 참, 맥주를 시원하게 해주는 식탁도 있었다! 이건 각자 필요한 것이라서 테이블의 가에 냉각 컵이 설치되어 있었다. 기능 식탁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런 식탁들은 식단 구성, 배치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식탁의 개수와 크기, 차려지는 식사의 구성, 운영방식 등인데 이것들은 중요하지만 부수적이고 사실 제일 위에 있는 것은 주인장의 생각일 테다.
1인용 시간이 기준인 바 테이블에 앉으면 자리 앞에서 각자 물 잔을 내어준다. 주문을 하고 서랍을 열어서 종이집으로 개별포장되어 있는 수저를 꺼내 놓는다. 소스 담을 그릇도 챙기고 각자가 기호에 맞게, 원하는 방식으로 나의 식탁을 세팅한다. 가방과 겨울 외투는 이미 제자리에 놓여있고 간혹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위치 고정을 위해서 머리끈도 준비되어 있다. 식사를 위한 한 그릇의 식사가 위쪽 선반에 놓인다. '잘 먹겠습니다!' 간간히 얘기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각자의 먹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물론 홍대 앞 거리의 그 피자가게는 둥그렇고 높은 테이블 주변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서서 일회용 알루미늄 접시에 담겨 녹아내리는 따뜻한 치즈와 페퍼로니가 올려진 피자 한 조각을 손으로 반쯤 접어 한 입 가득 채운다. 어디론가 향하는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콜라 한 모금을 마시고, 마음은 벌써 대열에 합류한 듯 봄바람같이 출렁이는 기분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딱 그런 날에, 그 시간에 안성맞춤이다.
수저를 놓는 것은 식사 준비의 시작이 된다. (식당에서는 물을 먼저 내어 주기도 하지만 그때까지는 주문 전이다.) 가지런하게 놓는다. 아기자기하거나, 단정해 보이는 수저받침을 사용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냅킨이 수저받침을 대신하기도 한다. 식탁에 누구는 여기에 누구는 저기에 자기의 숟가락을 놓아주고 (위치를 정하고), 00 이가 좋아하는 반찬은 여기에, 뜨거운 뚝배기는 안전하게 이쪽 편에, 손으로 잡기 쉽게 쌈채소는 이쪽으로 저쪽으로 배치가 시작된다. 그걸 하는 사람도, 그걸 받는 사람도, 우리는 먹는 일에 있어서 배려하고 배려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고 또 그것을 느낀다.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식탁의 끝에서 손바닥으로 매만지며 나란히 가로선을 맞춰준다. 사실 그렇게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미 어떤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졌다는 뜻이다.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이지만, 물론 음식의 양도 사람에 맞춰 준비되기 시작했다. 큰 잔치 식탁을 차릴 때에는 4-5명씩 손이 잘 닿도록 같은 음식을 나눠서 배치한다. 특별한 날 한껏 기분을 내며 좋은 그릇들을 꺼내고 알록달록하게 음식들을 담아내고 필요한 것들을 다시 챙겨본다. 메인 요리는 아마도 가운데 놓일 것이다. 혹은 케이크가 놓일 수도 있겠다. 아무렇게나 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중심에 놓았다. 그 사이에서 왼손을 쓰고 움직임이 큰 p군은 왼쪽 구석자리를 선호하곤 했다.
나는 사실 혼자살 적에 식판을 사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한 판에 밥과 국, 반찬들을 양껏 배치하고 잘 먹고 나서 하나만 쓰윽 닦으면 되니까 그렇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 없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 보니 밑반찬이 다양하고 풍성한 본가에서나 생각할 수 있었던, 가짓수가 많을 때라야 상대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고 한두 가지 찬과 주요 요리 정도로 차려지는 우리 집의 식탁에서는 의미 없는 것이다. 식판으로 서빙되는 병원 환자식은 식판에 올려지긴 했지만 (수저칸이 있는 식판도 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과 디저트까지 개별 그릇에 뚜껑까지 덮여 보온되는 푸드컨테이너에 실려서 지정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이동한다. 식사 시간이 되면 침대 끝에 뉘어 있는 접이식 플라스틱 식탁 판을 세운다.
요리하는 로봇과 서빙하는 로봇이 등장한 이때에 우리의 수저는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우아하게 손가락 스냅을 펼치며 내 자리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아줄 수 있을까?
밥숟가락 놓는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것 같다.
수저를 꺼내고 놓는 방식도 어딘가 즈음이 될 수 있다.
토요일에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