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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Oct 19. 2024

돼지껍데기

우리 돼지껍데기도 시키자.

너 먹을 수 있어?

그럼, 나 좋아해. 예전에 한 번 먹어본 적 있어.

못 먹을 거 같은데.

아니야, 먹을 수 있어. 시켜봅시다.

그럽시다.


 "돼지껍데기 하나 주세요."


 사장님은 정체 모를 분홍의, 그러니까 분홍의.. 그것을 작은 접시에 잘라서 가져다주셨다. 그건 아기돼지 같았다. 그러니까 이게 돼지껍질인 것을 알겠는데, 내가 아는, 먹어 본 돼지껍데기는 이런 게 아니었거든. 사각판형에 도톰하고, 단단하게 가공된, 생각해 보니 양념된, 구웠을 때 쫀득한 느낌이 살아있는 그런 게 누가 보아도 돼지껍데기인데. 이건 아니야. 내가 그걸 먹어본 것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간, 그러니까 꾀 오래전에 북적이는 거리에 펼쳐진 야외 테이블에서였지. 처음이지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어. 즐거운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런 아기돼지의 피부를 구워 먹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옆에서 말은 못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어린이였던 r을 보니 자신 있게 먹겠다고 한 내가 호들갑 떨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침착한 척하면서 몇 점 먹어보았지만 더는 먹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디 가서 '아무거나 잘 먹어요, 먹어봤어요.'를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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