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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Jul 28. 2024

마른 두부, 둠비

둠비


 얼마 전에 장을 보다가 '마른 두부'가 눈에 띄어서 사 왔다. 얼핏 보아도 플라스틱 용기가 아니라 잘 맞춰진 비닐포장만 되어있는 것이 탄탄했는데 과연, 하나를 집어 올리니 수분이 빠져나간 묵직함이 느껴졌다. 포장을 열고 도마 위에서 두부라기보다는 흔들림 없는 치즈 덩어리 같다. 반을 가르는데 칼같이 잘려나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 얇게 썰어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적당한 두께로 다듬어서 납작한 작은 식탁용 냄비에 넣고 물을 채워서 데웠다. 접시에 한 점 덜어 담고 한 입 크기 젓가락으로 나눠서 우물거리는데, '이거다!' 고소함이 씹을수록 퍼저나온 따뜻한 두부는 '둠비' 제주도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만든 두부이고 불뤼는 이름은 '둠비, 마른 둠비', 이렇게 귀여운 이름의 음식이자 식재료가 있었단 말인가. 씹히는 게 꽉 눌러 부친 녹두전 같이 콩의 질감이 있어서 부침도 고소하고, 김치찌개에 넣고 오래 끓여도 제 맛과 식감을 유지했다. 차게 먹어도 좋고 따뜻하게 먹어도 좋은, 여름철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절대 단백질로 당분간 자주 식탁에 올릴 것 같다.


 둠비는 제주도에서 '큰일'에 손님들에게 내어주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잔치에는 한 사람에게 한 접시씩, 넓게 썬 돼지고기와 순대, 둠비 한 조각을 올린 '고깃반'을 대접한다. <참고> 둠비-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주어


 제주에서 이 삶은 돼지고기 맛을 '듬삭하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어떤 맛일까, 돼지고기의 기름짐이 입안 가득 씹히는 듬직한 맛일까. 듬삭하다 못지않게 궁금한 묵직하게 나는 감칠맛이라는 건 '배지근하다'는 또 어떤 맛일까. 제주도 바다를 생각하며 방 안에서 서핑을 하다가 좋은 자료를 발견했다.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맛 좋은 제주어> 제주도 음식과 조리법, 어르신들의 말과 기억이 담겨있다. 궤깃반(고기반), 둠비는 의례음식으로 구분되어 있고, 다양한 곡물을 넣은 밥과 떡, 생선요리들이 나와있는 맛있는 책이다. (다음 링크를 따라가면 PDF로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책에 나온 제주어가 모아진 '작은 사전'도 볼 수 있습니다. ->  <맛 좋은 제주어>  링크 연결이 모바일 어플에서 잘 되지 않으면 브라우저에서 여시면 됩니다. 제주학연구센터/제주학 아카이브)


 오래전에 누군가가 통화하는 것을 듣고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여서 먼 이국에서 살다 오셨나 보다 했지만, 알고 보니 제주도가 고향이셨다. 가족들과 통화할 때만 쓰신다고 했다. 제주도 말은 여행에서 식당 이름에 쓰인 것을 궁금해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조끄뜨레(가까이) 바당'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드라마 제목으로 익숙한 '맨또롱 또똣'도 있다. 드라마는 보지는 않았어서 뉘앙스를 해석하기는 어렵지만 '맨도롱' '또똣' 둘 다 따뜻하다를 표현하는데 맨도롱은 또똣보다 미지근에 가깝다고 한다.   


 몇 해 전에 서점에서 어린왕자의 경상도 방언 번역 '애린왕자'라는 책을 보고 누가 이런 책 낼 생각을 했나 재밌어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은 독일의 출판사 틴텐파스 Tintenfass 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는 어린왕자 버전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경상도, 전라북도 판이 있고, 제주어 번역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전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제목부터 궁금하네, 어떻게 지어질 것인가.   


 애린왕자

 에린왕자

 

 만약을 대비해서,

 음식 관련 된 제주어를 몇 가지 찾아서 적어본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


송키 채소

우영밭 텃밭

감저 고구마

지실 감자

촙쏠 찹쌀

침떡 시루떡

모물 메밀

고를 가루

짐치 김치

콥데사니 마늘

대사니 짐치 마늘장아찌

닥세기 달걀

돗괴기 돼지고기

도야지 돼지

좀복 전복

구젱긴 소라

밥당석 도시락

촐래 반찬

또또 따끈따끈

페삭페삭 바삭바삭

호꼼 조금

사그렛거 상하기쉬운것

펜도롱하다 멀쩡하다

맨도롱 따뜻

맨도롱 했수과? 따뜻합니까?

돌코롬 호다 달콤 하다

몰치락 호다 포동포동 하다

산도록 호다 서늘하다

실렵다 차갑다

들여싸 마셔


간안 갔니?

간잰 갈려고?

감수광 가십니까? 가세요?

사수꽈 사신겁니까? 사세요?

이서구꽈 계셨습니까? 있었어요?

감시냐 가느냐?

멍 ~하면서

강옵서 갔다오세요

함수꽈 하고있습니까?

강방왕 가서 보고 (확인하고) 와서

게므로 설마

모슴 마음

엇나 없단다

봉그다 줍다

얼마꽈 얼마입니까?

부치룸 부끄러움

많쑤게 많습니다

답쑤다 ~같습니다

다울렵디? 재촉하냐?

톨랑톨랑 철렁철렁


몇 가지 조합해 봤습니다.

응용편 (원어민에게 검증되지 않은 사전의 단순 조합으로, 실제 사용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또 둠비 따끈따끈 두부

둠비, 맨도롱 했수과? 두부, 따뜻합니까?

호꼼 몰치락하다 조금 포동포동하다


맛좋수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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