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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Nov 30. 2024

노마딕 푸드트럭의 정착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타코트럭을 운영하던 젊은 사장님은 번화가 사거리의 버스정류장 근처에 정착했다. 좁고 깊은 매장이고 그렇게 눈에 띄는 곳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다. 바깥에 서있는 키오스크, 묵직한 타코야키 주물틀이 전면에 있고 반대편 끝에 음료 제조 주방, 그 사이에 작은 테이블들이 벽을 따라 놓였다. 천천히 구워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에 도톰한 문어조각이 자리를 잡고 펄럭이는 가쓰오부시를 마요네즈와 간장과 우스터소스를 기본으로 만든 소스가 잡고 있다. 여전하게 맛있다.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학교 앞에서 파스타 푸드트럭을 발견했었다. 커다란 들-통에서 신선하고 진한 토마토소스를 한 국자 떠서 담아주었는데 공원에 앉아서 바질잎 조각을 씹으면서 먹으면 바람은 가볍게 불어오고 따뜻한, 기분 좋은 기운이 붉게 감돌았다. 그런 트럭이 보이지 않아서 수소문했더니 옆 동네에 가게 내신 것을 알게 되어서 한가한 시간에 찾아가 보았다.


 조금 이른 점심시간,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도로변으로 넓게 열린 폴딩도어 폭 가득하게 햇빛이 쏟아져서 먼지가 부서지는 오후였다. 주방의 열기는 느껴지지 않고 이제 막 준비가 시작된 것 같았다. 우리는 첫 손님이었다. 메뉴가 제법 있어서 몇 가지 고르고 식전빵을 먹으면서 가게를 구경하고 있었다.


 식사 준비가 시작된 주방에서

 묘하게 정적이 흐른다.


 전운이 감돈다.


 두 분은 이상하리만치 말없이 음식을 준비하다가 몇 마디 주고받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창과 문을 닫고, (우리는 갇혔다) 모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귀 기울여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막 정착을 시작한 가게의 운영에 관한, 요리 작업 방식 같은 것이었으리라. 대화의 결론이 좋지 않았으면 우리는 점심도 못 먹고, 그 맛있는 토마토 스파게티도 영영 못 먹을 뻔했지만, 다행히 두 분은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사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당시 어린이였던 r이 그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며 “갇혔어!” 셋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던 순간을 말하면서 깔깔거렸기 때문에 떠올린 것이다. 남의 집, 위기 순간의 목격자가 되었다. 부부인 두 사장님은 300m 거리의 중심지로 식당을 확장 이전했고 동네에서 사랑받는 파스타집으로 항상 손님들이 많았다. 조금씩 운영 방식에 변화 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던해지고 있을 즈음, 10년이 채워질 즈음, 문은 닫혔고 두 분은 훌쩍 제주도로 떠났다. 다시금 시작된 유목생활일까. 어쩐지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되고 그들 답다는 생각도 든다. 제주의 바닷가 어디에서 토마토소스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착된 생활,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다. 그 안에서

 고요함은, 에너지는, 다시

 어디로든 뻗어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단출했던 메뉴판이 풍성해진다.

 타코야키 사장님은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다른 종류의 구운과자를 같이 팔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포장마차를 부르게 되었을까? 움직이지 않는 마차가 대부분이었던 포장마차는 어지간한 거리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포장집이라는 말도 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다. 포장집이라는 게, 이건 거의 텐트와 맞먹는 발상인데.. 아니 그리고 말로 끄는 수레는 보지도 못했다, 조랑말은 귀엽지. (그래도 철도 궤간은 마차, 두 말의 엉덩이 폭 기준으로 되어있다.) 명동 거리에 해질녘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상인들의 손-수레 이동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몽고, 고속도로에서는 이사 트럭을 본 적이 있다. 3.5톤 정도 되어 보이는 트럭에 살림살이 그리고 집을 실어 나른다. 집은 뼈대와 포장으로 구분되어서 실리고 트럭은 움직인다. 짐이 트럭 용량을 넘지 않는지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예전에, (이런 걸 목격하게 되다니.) 마트의 건물 철거를 하면서, (거의 포장집이었다.) 해체된 철골부재를 트럭에 실는 모습을 보았다. 트럭은 하나가 왔는데 주차장에 쌓인 것을 트럭으로 옮겼고, 차곡차곡 부재들을 올렸으나.. 누가보아도 트럭은 가라앉으며 납작해지고 있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하며 트럭이 견디어 주기만을 바라던, 희망을 움켜쥔 작업자와 관리자들은 해가 저물고 작업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이는 그때에 트럭 하나를 더 부르기로 결정해했다. “그것 봐, 안된다고 했잖아!” 누가보아도 안될 일이다. 건축 자재들은 때에 따라 이동수단의 단위에 맞춰 재단된다, 도로에서 이용가능한 컨테이너 박스. 인력으로 이동되는 자재들은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들 수 있는 단위로 나뉘기도 한다. 100리터 쓰레기봉투가 없어진 것과 비슷하다. 소형로봇과 웨어러블 기기는 이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는 하지만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단위는 흔들림 없다. 게르는 일종의 포장집이다. 양털 펠트와 직물로 나무 골조를 포장한다. 그 원형 가운데 난로, 불이 있고 하늘로 열려진 바람구멍이 있다. 옷 입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온용 내피를 입고 바람막이를 걸친다. 이 겉 포장의 재료는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비, 바람은 막으면서도 숨 쉬는 옹기 같은 기능의 얇은 시트, 익히 알고 있는 고어박사님이 만든 텍스도 있고 한때 엉뚱하게 감귤에도 이름 붙여졌던 타이벡도 있다. 우리가 얼마나 포장마차를 좋아하는지 실내 포장마차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차용이다. 그러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실내 포장마차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얼마나 나플거리는 가벼움을 좋아하는지? 그런 것에 비하면 아파트는, 확장된 발코니 지대는 참 견고하다. 확고한 실내에서 벗어나 중간지대를 찾는 사람들은 카페에 머무른다.

 

 집에서 느끼는 포차감성은 가벼운 가구 이동에서 왔다. 엊그제는 작업실 책상을 비워 식탁에 연결하고 바로 옆에 1인 소파를, 창을 향해 앉도록 붙였다. 식탁과 가장 큰 책상이 길게 이어진 거실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작업을 이어간다. 식탁이 넓어지기도 하고 책상이 되기도 하고, 과일 정물이 놓이기도 했다가 선물 받은 간식 꾸러미가 쌓이기도 한다. 김수영 문학관에 가면 시인의 서재 코너가 있는데 그곳에 시인의 커다란 책상이 놓여있다. 시인은 시와 에세이, 번역을 할 때 각각 앉는 자리가 달랐다고 한다, 시를 쓸 때는 동편으로 앉았다. 나는 지금 서편으로 앉아있다. 오전에, 나는 지금 그 소파에 앉아서 문을 열고 눈 내린 창밖을 보면서 글을 적고 있다. 이곳은 모든 문을 넘나드는 길목으로 제각각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비교적 가벼운 가구들이어서 필요할 때마다 배치 바꾸는 일을 한다. 몇 가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고 나머지는 바뀐 생활에 대응해서 불편 없이 맞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불편을 견디지 않고 그때에 필요한 방법을 찾는 것. 그가 내게 알려주고 있다. 멈춰서 고민하고 생각한 일을 하는 것. 우선 침착하게 멈춰서는 것이, 멈춰 설 수 있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우리 집의 노마딕 생활에 한몫, 하는 것은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이불을 쓰는 것이다. 적정한 두께와 크기를 맞추면 착착 개어서 수납할 수 있고 낮 동안에는 여유 있게 공간을 쓸 수 있다. 게다가 온돌 바닥난방을 하는 집의 특성을 한껏 활용해서 겨울에 뜨끈한 기운 그대로 받을 수 있다.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탈탈 털고 개어 놓고, 햇빛 좋을 때에는 베란다에서 바짝 말린다. 여기에 가벼운 야외용 스테인리스 주전자와 커피필터, 시에라컵, 외출용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접시세트가 식탁에 더해지고, 가끔씩 등장하는 말린 소시지와 건조한 빵, 입는 이불, 비상용 말린 개구리..


 작년에 시장 여기저기 가게들을 돌며 운영되던 붕어빵 수레는, 쌀집 앞에서 호떡으로 바뀌었는데 겨울에는 어묵도 같이 팔기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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