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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쇠 Aug 03. 2023

모로코 사막에서 피는 담배와 위스키의 맛

사하라에서 보내는 모로코 여행 3일 차의 기록

야간버스는 달리고 달려, 해가 막 뜨려고 하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파리에서 미리 '핫산네 민박'이라는 사하라 사막 투어 및 숙박 업체를 예약했기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에는 그곳에서 보내준 택시 기사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곳에서 또 한 시간 정도를 차로 더 들어가야 드디어 사막이 나온다.

다시 끝없는 모래와 자갈, 간간이 보이는 나무들로 이어지는 단조로운 풍경을 지나쳐, 택시는 우리를 사막 초입에 위치한 핫산네 민박 숙소에 내려주었다. 우리는 예약 사항을 말했고, 로비에서 사장님이 오기 전까지 잠시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본 배경화면으로만 봤던, 그 캐러멜색 모래 무덤들이 보였다. 사막이었다!


로비에 있는 소파에 짐을 잠시 내려놓고 기다리니 사장님이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했다. 요구르트와 계란프라이, 과일, 잼, 빵. 무엇보다도, 커피! 그래 나는 커피가 너무나도 절실했다. 야간버스에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해 간신히 눈을 뜨고 있었다. 따뜻한 음식이 주는 온기가 좋아서 와구 와구 먹었던 것 같다.

낙타를 타고 들어가는 사막 투어는 오전 11시부터 시작이었다. 밥을 먹고 잠시 쉬다가, 다시 선크림을 바르고 뜨거운 모래 바람을 막아줄 히잡도 썼다. 원하는 색의 천을 고르면 직원분이 머리에 둘러주셨다. 나는 시원한 하늘색 히잡과 흰색 옷을 입고, 시간이 될 때까지 멍 때리며 기다렸다. 드디어 11시! 11시 투어에 신청한 사람은 우리 일행 3명을 포함해 5명이었다. 인솔에 따라 숙소 밖으로 나가자, 낙타 다섯 마리가 열을 맞추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모로코에 온 목적이 바로 이 낙타들을 보는 것이었지,라는 감상에 빠져있을 때쯤 저기에 어떻게 올라타지?라는 걱정이 몰려왔다.


인솔자가 첫 번째 낙타에게 앉으라고 툭툭 치자 낙타들은 하나 둘 다리를 굽히고 앉았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 낙타에 탔다. 낙타 등에 올라타서 손잡이를 잡고, 인솔자가 꽉 잡으라는 말과 함께 다시 낙타의 등을 치니 낙타가 다리를 피고 일어났다. 순식간에 엄청난 반동과 함께 시야가 높아졌다. 처음에는 꽤 무서웠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절차다. 모든 일행이 낙타에 타고, 드디어 우리는 사막으로 향했다.

내가 탔던 낙타

사람은 언제부터 사막에서 낙타를 탔을까?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 단봉낙타를 가축화 한지는 서기 3000년이 되었다고 나와있다. 낙타 없이 사막을 건너기란,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욱더 꺼려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발은 푹푹 빠지고 햇빛을 피할 그늘은 없으며, 바람 한 번에 모래 언덕의 지형이 바뀌는 사막. 인류가 몇 백 년, 천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낙타를 타고 사막에 들어갔다. 그러한 사실이 주는 약간의 고양감과 얄팍한 자부심을 안고 낙타는 점점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얼마 간을 더 들어가자,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낙타 타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이 엉덩이의 고통이다. 팁은 낙타의 걷는 반동에 맞추어 나도 몸에 긴장을 풀고 같이 움직이는 것이라지만, 유효한 조언인지는 모르겠다. 엉덩이 뼈의 고통이 심화될 때쯤, 인솔자는 우리를 점심 먹는 베이스캠프에 멈춰 세웠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나무 몇 그루 난 곳이었다. 간이식 화장실과 그늘 아래의 평상도 있었다. 낙타들도 물을 마시고 쉬어갈 시점이었다.

잠시 평상에 앉아 간간히 부는 바람을 느끼며 내 엉덩이가 평평해지지는 않았나 생각하고 있을 무렵, 음식이 나왔다. 어디서 요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솔자분은 우리에게 모로코식 샐러드와 타진, 그리고 과일을 주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배고팠는지 싹 싹 긁어서 먹어버렸다. 먹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사람의 몸이란 왜 이렇게 솔직한 걸까? 이곳에 오니 생활이 단순해지는 것 같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기대어 졸다가, 친구들이 어디에서 샌드 보드용 보드를 주웠다며 모래 언덕을 오르겠다고 해서 잠에서 깨버렸다. 난 지금 이렇게 나른하고 게으르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아서 샌드 보드는 사양했다. 대신 점점 언덕 위로 올라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로 응원을 했다.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겠거니, 했는데 언덕의 끝까지 올라가서 점이 될 만큼 멀어져 있었다. 샌드 보딩에는 전혀 관심이 들지 않았지만, 저 위에서 보는 사막의 풍경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친구가 샌드 보드로 언덕을 내려오고, 나도 언덕을 올라갔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경사가 생각보다 심했다. 한 발 한 발 뗄 때마다 푹푹 빠지는 모래가 발을 붙잡아주어서 무서운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발이 점점 푹푹 빠져서 한참 발을 굴렀다고 생각해도 돌아보면 겨우 한 뼘 더 앞으로 갔을 뿐이었다. 결국 언덕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지는 못하고, 비탈면 어느 즈음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사막이 멀리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낙타들, 평상의 사람들이 점처럼 보였고, 바람이 조금 더 시원하게 불었다. 숨이 찼던 것 같다. 잠시 우두커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샌드 보드를 탔다. 아주 높게 올라간 것은 아니어서 샌드 보드가 가다가 멈췄다, 가다가 멈췄다, 하다가 멈췄다.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그냥 보드를 들고 저벅저벅 내려왔다.


아까 앉아 있던 나무 그늘에서 잠시 더 쉬다가,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이제 출발해야 한다는 인솔자의 말을 듣고 엉덩이를 떼었다. 다시 덜컹거리는 낙타 등에 타서 한 시간 정도를 갔다. 내가 갔던 그날은 구름이 있는 흐린 날이어서 그런지 해 지는 모습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사진을 찍는 것이 투어에 포함된 모양이었다. 어버버 하다가 등을 떠밀려서 몇 장을 찍고, 저녁에 잠을 잘 숙소까지 다시 낙타를 타고 갔다.


해가 진 이후부터는 공기의 색이 계속 바뀌었다. 바람에는 좀 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사막에서 밤 중에 길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사막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곳이다. 또한 나는 낙타가 왜 이렇게 온순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는데, 아마 오랜 시간 가축화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음속으로 결론 내렸다. 낙타는 속눈썹이 정말 길다. 트림도 자주 한다. 묘하게 싫증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걸으라고 하면 잘 걷고, 앉으라고 하면 또 잘 앉는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하루종일 탄 낙타에서 내려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는데, 낙타가 트림을 발사해서 주춤 뒤로 물러섰다. 숙소에서는 저녁 음식을 먹었다. 마찬가지로, 타진과 쿠스쿠스 같은 모로코 음식과 더불어서 비빔면 같은 라면도 주었다. 이 라면은 사람들에게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밥을 먹고는 잠을 자기 전까지의 자유 시간이었다. 나는 파리에서 화장품 공병으로 소분해서 가져온 위스키를 품 속에서 꺼내서 숙소 밖으로 갔다. 숙소의 불빛에서 멀어질수록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혼자 그렇게 사막을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있었다. 미리 다운받아 왔던 별자리 앱으로 별들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북두칠성, 레오자리, 쌍둥이자리, 화성, 게자리, 드라코...

그 날 본 별들

별자리 앱에서 눈을 떼고 둘러보니 내 주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저 멀리 불빛만 하나 둘 일렁였다. 고요하고 차분한 바람이 불었다. 파리에서 챙겨 온 작은 위스키 병을 품 안에서 꺼냈다. 차갑게 식은 고운 모래에 엉덩이를 데고 앉아서 그렇게 계속 위스키 한 입을 마시고, 담배 한 모금을 피었다. 그때 마신 싸구려 위스키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감각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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