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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story Jan 20. 2024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건 처음이라

새해가 이렇게 요란하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었던가? 

우리 가족은 어떤 기념일 같은 것들을 그렇게 잘 챙기는 편은 아니었다. 

선물을 주고받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티를 준비하거나, 집을 꾸미거나, 하는 수준은 아닌 그냥 저녁을 먹고 생일 때에 케이크를 먹는 정도였다. 새해, 크리스마스, 명절 등 무언가 가족끼리 이벤트를 하거나 거하게 준비를 해서 하는 일은 없었다. 


미국에서 지낼 때에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래도'아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경험'을 하는 개념으로서 즐겼으며, 이후 자취를 시작하고선 미국에 혼자 살면서 기념일을 특별히 챙기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아내와 처음 맞이하는 새해는 너무도 새로웠다. 


정말 할게 많구나

결혼 후 처음 연말이 다가올 때에 아내는 내게 "우리 연말을 어떻게 준비할까?"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동안의 내가 살아온 환경을 말하며 딱히 연말에 무언가 준비해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고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되려 물어보았다. 우리가 결혼 후 맞이하는 첫 연말이었기에 아내는 제대로 준비하고 싶어 했다. 


우선, 러시아에서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이다. 러시아 정교회에 따른 크리스마스이며 사실 크리스마스보다 새해, 즉 1월 1일을 더 크게 기념하기도 한다. 해서 러시아에서는 12월 25일부터 약 2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12월 31일엔 모든 가족이 모여 러시아 음식을 직접 준비한다. 우리는 31일 전날, 동대문에 있는 러시아마켓에 가서 장을 보았고 31일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마자 여러 러시아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러시아 새해 음식 올리비예 샐러드와 fur coat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특히 요리라곤 라면과 샌드위치 정도가 전부였던 내게 재료를 직접 준비하는 일은 너무나도 새롭고 어려운 일이었다. 

< 대표적인 러시아 올리비예 샐러드 >


< Fur Coat 이름의 러시아 음식 >

이외에도 여러 음식들과 샴페인을 준비하여 테이블을 세팅하고 정장과 드레스를 입었다. 집 안에서였지만 항상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새해를 준비한다고 한다. 평소에 거의 입을 일이 없던, 옷장에 숨어있던 정장을 오랜만에 꺼내 입고 테이블에 앉았다. 


이렇게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내게 매우 낯설었다.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를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더욱 특이한 점은 새해를 직접 맞이하는 저녁이기에 식사를 밤 11시쯤에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매년 새해 00시 00분이 되면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새해맞이 연설이 시작되어 모두 함께 푸틴의 연설을 본다고 했다. 한국에 있던 우리는 유튜브를 통해 푸틴의 연설을 볼 준비를 하고 천천히 식사를 하며 새해맞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러시아의 땅은 너무 넓어 시차가 다양해서 우리나라처럼 라이브 연설을 할 수는 없다. 러시아의 새해 연설은, 푸틴이어서가 아니라 나라의 리더가 연설하는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전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 크램린궁을 배경으로 새해 연설을 하는 푸틴의 모습 >

그리고 새해 희망을 종이에 적은 후, 태우고 그 잔해를 샴페인 안에 넣어 샴페인을 마시는 전통을 소개해주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 성대하게 부부로서의 첫 새해를 맞이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귀찮다는 티를 너무 많이 내서 (본의 아니게) 그런지 아내는 그 이후 우리가 직접 준비하자 라는 말을 잘하지는 않는다. 다른 나라 사람인 남편과 처음 새해를 맞이하면서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준비한 아내에게 내가 제대로 호응해주지 못한 모습을 뒤늦게 깨달으면서 아내에게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결혼 3년 차에 접어드는 겨울, 아내와 함께 러시아에 가서 직접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차가운 러시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국과 다를 바 없는, 혹은 그 이상의 연말 분위기와 함께 엄청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 러시아의 모습을 보며 '아 그래서 아내가 우리의 처음 새해맞이 때에 엄청 준비를 했었구나'라는 것을 한 번에 깨닫게 되었다. 

< 휘황찬란한 모스크바의 연말 모습. 크렘린궁 앞에 있는 붉은 광장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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