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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illery Story- 아벨라워 증류소

스페이사이드의 아늑한 증류소

by 위스키내비 Mar 27. 2025
‘해리 포터’ 의 해그리드 오두막이 생각나는 비지터 센터‘해리 포터’ 의 해그리드 오두막이 생각나는 비지터 센터

스페이 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단아한 증류소가 눈에 띕니다. 암회색의 돌 벽과 빨간 문으로 장식된 ‘아벨라워’ 증류소입니다. 스페이사이드의 아벨라워 마을의 아벨라워 증류소,이름도 외우기 쉽죠.

아벨라워 12년, 16년, 18년아벨라워 12년, 16년, 18년

아벨라워는 페르노리카 소속 증류소로서, 대기업 소속 증류소로는 드물게 풀 레인지 라인업을 갖춘 증류소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디아지오나 페르노리카의 증류소 중 nas부터 12년, 그리고 18년까지 풀 라인업을 갖춘 증류소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셰리 캐스크로요. 디아지오는 탈리스커, 쿨일라, 카듀가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고,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는 글렌피딕과 발베니 풀 라인업을 갖추고 있죠. 스코틀랜드에 증류소가 100곳이 넘어가는데, 오피셜 제품으로 풀 레인지 제품을 선보이는 증류소는 많지 않습니다.

키세스 초콜릿을 닯은 증류소키세스 초콜릿을 닯은 증류소

아벨라워는 셰리를 잘 뽑기로 유명했던, 소위 말하는 셰리 명가였던 증류소입니다. 생산하는 스피릿도 셰리 캐스크에 잘 맞는 묵직한 스피릿을 생산합니다. 짧은 발효 시간, 적은 환류를 가지는 짧은 넥의 증류기 등으로 만든 이런 스피릿은 장기 숙성에 유리한데, 아벨라워가 바로 이런 케이스죠.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셰리를 입문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그렇고요) 한때는 제주 특산품으로 불리면서 95달러, 13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아벨라워 아부나흐’ 를 집어 오곤 했죠. 이른바 모두의 첫사랑 같은 위스키랄까요.

브런치 글 이미지 4

그런데, 아벨라워 아부나흐는 사실 가면 갈수록 평이 하락하는 위스키입니다. 지금은 100만원을 호가하는 맥캘란 10cs와 호각을 겨뤘다는 아부나흐지만, 지금의 위상은 조금 다르죠. 배치 30번대 이후로 계속 외는 ‘아부나흐 맛탱이 갔다’ 라는  공염불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NAS(논 에이지 스테이트먼트) 에 대해 말해볼까요.

이분 아닙니다이분 아닙니다

사람들은 논 에이지 스테이트먼트, 즉 년수 미표기 제품에 대해 상당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품질에 대한 의심이죠. 대다수의 증류소들이 제일 하위 라인업을 NAS로 구성하고 있고, 실제로 가격이 가장 저렴한 경우가 많기도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숙성년수가 적혀 있지 않으면 저숙성임을 의심하고, 또 품질을 의심하게 되죠.

그러나, 사실 이는 숙성년수라는 숫자에 사로잡힌 결과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숙성년수가 아닌, 캐스크이기 때문입니다. 저품질의 캐스크에서 20년 동안 숙성한 위스키보다, 좋은 캐스크에서 10년 동안 숙성한 위스키가 품질적으로는 더욱 우수합니다. 이건 그레인 위스키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는데, 우리가 헤이그 클럽 등의 위스키를 먹고 실망하지만, 독립병입에서 출시된, 제대로 된 캐스크로 리래킹해 숙성한 그레인 원액은 상상 이상으로 좋은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만 그래도 얘들은 너무 비싸요. 왼쪽부터 15년 300£, 17년 1000£, 24년 5000£…암만 그래도 얘들은 너무 비싸요. 왼쪽부터 15년 300£, 17년 1000£, 24년 5000£…

이게 아벨라워 아부나흐를 비롯한 위스키들이 NAS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위스키이기 때문에, NAS 이지만 오히려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고품질의 캐스크를 사용한 것이죠. NAS 위스키를 내놓는 글렌그란트 등도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벨라워 아부나흐는 시장에 이미 완전히 진입했다고 판단해서인지, 캐스크의 사용을 좀 조절하는 듯하긴 하지만요. 오르는 캐스크 가격에 비해 아부나흐가 거의 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캐스크의 품질을 조절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맛있게 마셨던 부나 12cs맛있게 마셨던 부나 12cs

그럼 왜 대부분의 CS 위스키들은 NAS 로 출시될까요? 이는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판매자 입장에선 ‘카니발리제이션’이 우려되는 것이죠.  CS위스키를 발매하는 대부분의 위스키들은 저숙성CS 제품과 일반 12년 엔트리급 제품의 파이를 빼앗거나, 동일선상에서 비교되어 일반 12가 평가절하될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합니다.

글렌드로낙과 하이랜드 파크, 벤리악, 아벨라워 등은 ‘배치’ 로 매년 생산분을 구분하는 동시에, NAS 제품으로 출시해 기존 12년과의 포지션을 다르게 설정하고 있죠. 이를 생각해보면, 연수 표기된  CS를 출시하는 글렌알라키와 부나하벤은 약간의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고객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8

이렇게 CS 위스키를 출시하는 것은 비록 기존 라인업의 시장을 침범하기는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위스키 증류소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알리고자 CS 위스키를 출시합니다. 최근 아벨라워가 새로 출시한 ‘아부나흐 알바’ 등을 보면, 아벨라워가 기존의 셰리 위스키만을 다루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버번캐스크 또한 활용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셰리캐스크 위스키의 명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버번 캐스크까지 활용하는 아벨라워 증류소. 셰리와 버번 모두에서 가성비 좋은 CS를 발매하는, 입문자의 친구 같은 증류소로 남아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셰리 명가’ 였던 증류소들처럼, 과거의 셰리캐스크 위스키들이 고평가되며 하입을 맞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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