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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 Jul 02. 2024

당신의 아이는 불사조예요

불사조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봐주세요

올해 초,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가 전학을 했다.


전학이라 해봤자 분교에서 본교로 가는,

전교생 15명인 '작은 학교'에서 

전교생 58명인 '규모가 좀 더 큰 작은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초등을 마무리하는 6학년에 하는 전학이라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유대관계를 쌓아온 아이들 틈에

  6학년 때 전학을 간다고요?

  어휴.. 반대예요. 기존의 아이들 틈에 흡수되기 힘들 거예요"

이런 식의 주변 우려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학을 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큰 아이가 다니는 학급에는

남학생인인 내 아이와 여학생 2명인 3인체제였는데

여학생 한 명이 전학을 가는 바람에 

남 1명, 여 1명인 2인체제가 되었다.


둘만 남겨진 아이들은 이내 절친이 된 것 같았으나

여자 아이는 은근 동성이 그리웠나 보다.


상담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아이가 동성을 몹시 그리워하고,

집에서도 맏이인데 학교에서조차 가장 높은 학년을 대표하는 상황을

아주 부담스러워한다'는 결과가 나와 전학권고를 받은 것이다.


아들 녀석은 갑작스레 제 학년에 홀로 남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아들에게 조심스레 전학을 권했다.


어머님, 아이들은 선배학년을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한데 OO이가 현 학교에 남는 경우 혼자 최고학년이 될 텐데
그럼 동생들하고만 놀게 됩니다.
그렇게되면 아이는 성숙해지기보다 어려지기 마련이에요.

또한 한 학년에 1명만 있는 경우,
낮은 학년과 무조건 합반을 해야 하기에
학업적인 면에서도 결손이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 권한도 없는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게 정말 조심스럽지만
OO이를 아끼는 담임으로서 전학을... 권해봅니다.




멍... 했다.

이 작고 행복한 시골학교에서 초등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마지막 학년을 남겨두고 전학이라니...


남편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도통 결론이 나지 않았고

이번엔 교육 계통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책육아를 하는 지인은

'평화로운 시골학교에서 책 원없이 많이 읽히며 초등을 마무리하라'고 말했고


중학교 선생님인 지인은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서 받는 정서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지막 학년인 게 조금 걸리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큰 학교로 가서

 큰 무리에 적응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 말하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지인은

'이런저런 말 듣지 말고 당사자인 아이한테 물어보라.

1학년때 전학을 가든 6학년 때 전학을 가든 상황은 알 수가 없다.

1학년때 전학을 가도 왕따를 당할 수 있고

6학년 때 전학을 가도 충분히 잘 어울릴 수 있다.

전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니 당사자인 아이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전학 가고 싶다고 했다가

아빠와 이야기 나누고 나면 전학 가기 싫다가 했다가 

갑작스런 상황에 본인도 갈팡질팡이었다.


'아이의 본심은 무엇일까...' 마음이 무거워질 때쯤

한 지인의 말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주변에서 다들 조언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다들 우려만 많이 늘어놓으셨더라고요..


 저는 상황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를 우려깊게 바라보면 필시  안좋은 상황이 일어날 거예요.

 시선을 바꿔보세요.


 님의 아이는 불사조예요.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에 빠져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는 사람.

  

 

 아이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봐주세요.

 그렇담 아이가 전학을 가고 안가고를 떠나

 어디에 있든 잘하는 아이가 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가 고초를 덜 겪을 수 있도록 그렇게 백방을 알아봤으면서

정작 아이가 가진 본연의 힘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너는 어디 가서든 네 방식대로 잘할 아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결국 동생들이 아닌 동갑내기들과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말했고

마침내 큰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이를 향해 

새로운 학교생활은 어떤지, 친구들은 괜찮은지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그저 '좋았어, 괜찮았어, 친구도 사귀었어'라는 단답형의 말만 들어놓아

내 속을 미어터지게 만들었다. 킁.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아이는 친구들을 대동하고 집에 오더니 친구들을 집에 재우기까지 하였다.


아들은 평소 '낮은 도' 톤으로 말하는데  저녁내내 아들의 목소리는 '높은 라'까지 달했고

흡사 확성기를 댄 것 마냥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지난 3개월의 묵은 체증이 한방에 씻기는 장면이었다.

"불사조 아들아~ 엄마가 참 고맙다~

 불사조 친구들아~ 이모야가 참 감사하다.

 너희들은 어디가서든 너희 방식대로 멋지게 살아남을 녀석들이야.

 언제까지나 너희들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게"


세상의 모든 불사조 아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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