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양이섬 공모전에서 탈락한 딸에게 우리가 해준 일

엄마, 나도 상장 받아보고 싶어’라는 한마디에, 우리 가족이 움직였다

by 감격발전소

어느 날, 딸아이 담임선생님께 문자가 도착했다.


어머니! OO이를 위한 대회인 것 같아요!
학교로 우편이 왔네요!


문자에 첨부된 이미지를 열어보니, '고양이섬 축제' 그림·웹툰 공모전 안내문이었다. 놀랍게도 우리 가족 살고 있는 통영에 정말 ‘고양이섬’이라는 곳이 있다. 정식 이름은 '용호도'지만, 몇 해 전 그 섬에 '고양이 학교'가 생긴 이후로 사람들은 이곳을 자연스럽게 '고양이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8월 8일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자 동시에 ‘한국 섬의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통영시는 이 두 날을 겹쳐, 세계 최초로 ‘고양이섬 축제’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고양이가 가득한 섬에서,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축제라니. 기발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났다.


“OO이는 그림도 잘 그리지만, 보는 사람의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기발한 이야기를 써줄 것 같아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공책이며 벽보며, 시간만 나면 고양이 그림으로 가득 채우는 딸아이를 잘 아는 선생님이기에, 이 공모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으셨나 보다.


퇴근 후 나는 딸아이에게 공모전 소식을 전했고, 딸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바로 스토리를 짜고 웹툰 8컷을 그려냈다.


주인공은 고양이섬에서 실제로 만난 고양이로 이름은 '바다'. 구조되어 섬에서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만을 사랑해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작품을 다 보자마자 남편도 감동의 물결을 타더니, "기분이다! 오늘 내가 치킨 쏜다!"를 외쳤다. 평소에도 불금이면 무조건 치맥이 국룰인 남편인지라 ‘아이구, 또 좋은 구실 하나 얻었구먼’ 싶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호들갑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소소한 기쁨을 크게 부풀려 축하하는 그 모습이 고마웠다.




그리고 드디어 발표날. 우리는 딸아이의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선 확인하자마자 선생님께 감사+자랑 문자 보내야지~’ ‘시상식 날엔 회사 휴가 써야지!’ 하며 나름 스케줄도 짜뒀다.


그런데 오후 3시가 넘어가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5분 뒤 개별 통보가 시작됩니다"라는 답변. 그러나 '축하합니다'는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


퇴근이 가까워질 무렵,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혹시 지금까지 연락이 없으면 탈락인 건가요...?"

“네. 개별 통보는 모두 마쳤습니다.” “…혹시 OO이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없습니다. 총 200여 명 접수에 40명만 선정됐어요.”


"그렇군요. 저희 가족 시선에서는 무조건 대상감이었는데... 좋은 행사 기획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남편과 통화하며 우리는 딸아이의 마음을 걱정했다. 그러더니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상장 하나 만들어오면 좋겠어.”


사실 나는 평소에도 지인들 생일이나 이벤트 때 ‘기발한 상장’을 직접 만들어주는 ‘상장 남발러’다. 그런데 그날따라 머리가 멍했다. 퇴근 시간도 다가오고, 나도 나름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딸아이 마음을 어루만져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챗GPT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은 ‘도전상’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더 좋은 이름이 없냐고 물었다.


역시나 이 친구, 공감을 참 잘한다.


‘너무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네요’라며 한참을 위로해주더니 그럴싸한 상 이름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마음 울림상, 눈물버튼상, 가족감동특별상, 냥이마법상…


그중에서도 ‘마음 울림상’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챗GPT에게 상장 문구까지 부탁하고, 급히 디자인해서 인쇄까지 마친 뒤 나는 상장을 품고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왔어!”라는 말과 함께 딸아이를 마주했지만, 차마 “공모전 안됐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어영부영 말을 돌리던 찰나, 딸아이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메시지를 보고는 말했다. “엄마, 나 안됐나 봐…” 그리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남편은 결심하듯 상장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OO아, 상이 다가 아니야.
엄마 아빠가 너에게 스페셜 상을 준비했어!
짜잔~

이거 받고 우리 치킨 먹으러 갈까?”


하아… 얼마전 그렇게나 다정하게 들렸던 ‘치킨 먹자’가 그날은 왜 그렇게 철없게 들리는지. 결국 딸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상 타고 싶었어! 나도 칭찬받고 싶었어! 왜 난 항상 참가상만 받아?”


나는 안간힘을 다해 말했다. “그건 진짜 네 작품이잖아. 직접 만든 스토리, 실제로 만난 고양이의 이야기… 그게 더 진짜야.”


하지만 아이는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상 받고 싶다”고만 반복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딸아이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해주기로 했다. ‘아, 너는 정말 상장을 받고 싶었구나.’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칭찬받고 싶었구나.’ ‘웹툰이 아니라 한 장짜리 그림을 그렸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치킨으로 배를 채우고, 다이소에서 소소한 쇼핑을 한 후에야 딸아이의 마음은 조금씩 풀렸다.


다음 날 아침, 딸아이의 책상 위에는 가지런히 세워진 ‘마음 울림상’이 놓여 있었다.



“딸아, 엄마는 네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어. 예쁜 고양이 그림이 아니라, 네가 만난 고양이의 진심을 담은 이야기였으니까. 이제 엄마는 너를 ‘냥진심’이라고 부를게. 언제나 사랑해.”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날 우리 가족은 마음에 ‘울림’ 하나씩을 새겼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