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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냐옹 Jun 03. 2023

크로바레코드 21

21. 딸기 맛,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H


다리 아래, 돗자리를 펼쳐놓고, 헌 옷가지며, 추억 돋는 장난감, 지금은 살 수 없는 음반들까지 정말 온갖 것들을 판다. 골동품도 있고, 어디서 들고 나왔는지 모를 오래된 고서들도 있다. 볼 것도 많고, 사람도 많고, 먹거리도 많아서, 시간 가는지 모르겠다. 


제이는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들고나온 마론인형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딸애가 가지고 놀던 거라는데, 상태가 엄청 깨끗하다. 결국 제이가 지갑을 열었다. 제이도 인형을 좋아하는구나. 노래 말고는 모르는 외골수인줄 알았는데, 


나는, 음, 이 하늘거리는 연분홍 원피스가 마음에 드는데, 제이한테 입히면, 요정처럼 보일 것 같다. 곁에 선 제이의 사이즈도 이쯤 될 것 같고.

“여자친구에게 사주게요?”

네. 근데 왜 이렇게 온몸이 간지럽지?

“하니, 저 원피스 너무 소녀 취향인데?”

그러니까 너한테 어울려. 

“아가씨한테는 딱인데요? 체격도 그렇고. 피부도 그렇고. 이건, 까무잡잡한 사람이 입으면 더 까매보이거든. 아가씨처럼 하얀 사람이 입어야 해.”

나도 모르게 지갑이 열렸다. 생각보다 비쌌지만, 그래도, 내 눈이 좋아할 거야. 


뚝섬 매점에 들려, 컵라면을 샀다. 핫바도 사고, 둘이 나눠 먹어야지. 강물이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라면을 먹는다. 오물오물 먹는 제이의 입이 너무 예쁘다. 

“다음에 입고 나와.”

“웅, 너무 사람 많은 데는 안 갈 거지?”

왜,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 자랑하고 싶은데!

“응, 한적한 데만 갈게.”

그런 데도 뭐 나쁘지 않으니까. 내 안에 늑대가 좋아해. 그런 델.

“알았어!”

하아, 그날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벌써 보고 싶은데.

한참 꽁냥대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매직이다. 이 녀석 내가 쉬는 날인 건 어찌 알고. 


  “나 쉬는 거 어찌 알고 전화했냐?”

뭐? 면접. 그건 하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어. 그래서 왜? 갑자기 속이 불편해진다. 이 좋은 날을 꼭 망쳐놔야겠냐? 어째서 그녀는 이토록 우릴 방해하는 건데. 난, 그 이름조차 싫다.

“제이, 안나가 널 만나서 사과하고 싶대.”

의외로 제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착한 제이. 넌 그 애에게 용서라는 선물을 주려는 구나. 그 애의 마음에 짐을 덜어주려고. 널 다시 희생하겠다는 거야. 

“나도 듣고 싶어. 안나의 사과.”

“그럼, 만날까? 마지막으로?”

“응.”


매직이에게 말을 전했다. 

"카페 R 앞에서 보자고 해. 대로변에 있으니까, 금방 찾을 거야."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끌기는 싫다. 길에서 만나서, 길에서 헤어졌으면 좋겠다. 가볍고, 산뜻하게 이별했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처럼.


제이가 아이스크림을 사온다.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봐, 종종거리며 뛰어온다. 안나를 기다리는 동안 달콤하게 먹어야지. 음? 저 차 방금 신호를 위반했는데? 어? 너무 과속인데? 불안한 마음에 제이를 향해 달린다. 

해맑게 뛰어오는 제이는 인도를 넘어 내달리는 차를 보지 못한다. 안돼! 몸이 붕 떠올랐다. 딸기랑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든 제이도 함께. 그녀와 함께라면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설사, 우리가 죽는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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