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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Jun 14. 2022

엄마의 사진

- 사진을 보냈습니다 -

엄마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전화를 끊은 지 몇 분 되지 않은 후였다. 그렇게 달달한 통화는 아니었고 '밥은 먹었니?' '잘 지내니?'와 같은 일상적인 대화였다. 2분 남짓 이어지던 통화는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더 진행되지 못했고, 눈치 빠른 엄마는 '그래 잘 지내~'라며 먼저 전화를 끊었다.


'엄마 보고 싶을까 봐서 보낸다'

갑자기 사진을 보내는 엄마. '보고 싶다'라는 달달한 말을 주고받을 만큼 애교가 넘치는 아들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말인가, 보고 싶을까 봐서 사진을 보낸다니. 가끔 엄마는 이런 이상한 말장난을 치는 것 같다. 아마 많이 심심하고 외로우신가 보다.


'너는 내가 보고 싶다, 아니 보고 싶어야 한다'라고 들리는 엄마의 저 메시지는 내가 얼마나 연락을 안 했는가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다. 일상에 지쳐 간단한 메시지 하나 보내지 못하는 이 불효한 자식의 마음조차 이해하는 엄마는 '엄마 보고 싶지 않니?'와 같은 존재 확인에 대한 갈망을 배제한 체 나를 배려한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닌, 사랑을 받아도 안 받아도 그만인 타인 중심적인 사랑, 다시 말하면 완전한 사랑을 의미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가 아닌 '너는 나를 사랑한다'와 같은 확신은 화자가 타인을 온전히 사랑하기에 완성될 수 있는 마음이다. '온전한 사랑을 다 주었을 때, 그 사랑을 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아니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만이야, 그만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가 사랑의 완성인 것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 너의 마음도 나와 같아야 한다'와 같은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상처 입어도 상대방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저버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수록 사랑이라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엄마한테 전화 한 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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