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없이 나아가려면

약속의 땅을 향한 용기: 여호수아

by Shin란트로

드디어! 40년 광야 생활이 끝나고 약속의 땅에 입성합니다! 여호수아서는 정복 전쟁, 땅 분배,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이야기예요. 모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끈 여호수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정말 언제 읽어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죠!

그런데... 읽다 보면 "이거 액션 블록버스터야?" 하는 부분들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성벽이 소리로 무너지고, 해가 멈추고, 전쟁에서 모든 생명을 멸절시키라는 명령까지. 오늘은 여호수아서의 가장 뜨거운 질문들을 함께 파헤쳐 봐요!


1. 여리고 성, 소리만 질러서 무너졌다고? 이거 물리적으로 가능해요?

여호수아 6장,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 장면 중 하나죠. 이스라엘 군대가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고, 마지막 날 나팔을 불고 함성을 지르니까 성벽이 와르르 무너진 거예요. 정말 영화 같은 장면이죠!


소리만으로 성벽이 무너질까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해요.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두꺼운 성벽이 무너질 리 없죠.

그런데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요:


공명 현상 이론이라는 건데요, 나팔 소리와 함성이 특정 주파수로 공명을 일으켜 성벽을 무너뜨렸을 수 있다고 해요. 마치 오페라 가수가 특정 음으로 유리잔을 깨뜨리는 것처럼요.


지진 이론도 있어요. 하나님이 정확한 타이밍에 지진을 일으켜 성벽을 무너뜨렸다는 설명이에요. 실제로 여리고는 요단 지구대 근처라 지진이 잦은 지역이거든요.


하지만 성경은 이걸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건 100%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강조하죠.

왜 이렇게 기이한 방법이어야 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스라엘이 최첨단 무기나 뛰어난 전략으로 여리고를 점령했다면? "우리가 잘해서 이긴 거야!"라고 자랑했겠죠.


하지만 7일 동안 성 주위를 빙빙 돌고 소리를 지르라고? 이건 전략도 아니고 상식에도 안 맞아요. 여리고 사람들은 "저 사람들 미쳤나?"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 방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 전쟁을 이기게 하셨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줬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저 순종했을 뿐이고, 승리는 100% 하나님 것이었던 거죠.


고고학적 증거들도 볼까요?

영국 고고학자 존 가스탕(John Garstang, 1876~1956)캐슬린 케년(Kathlean Kenyon, 1906~1978)이 여리고를 발굴했어요.

두꺼운 이중 성벽의 흔적 발견

성벽이 바깥쪽으로 무너진 흔적 (보통은 안쪽으로 무너지는데!)

화재 흔적과 곡식 저장고 (순식간에 파괴됐다는 증거)

연대 추정은 학자들마다 달라요. 당시의 최신 기술로 측정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번복되기를 거치며 여호수아 시대와 일치한다고 봐요.


그때 여리고 성이 지금 나에겐 어떤 의미일까요?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순종하라고 하세요.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고 생각되는 일도 있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 역사하실 수 있고, 우리가 말도 안 되게 순종할 때,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거예요!


2. 아간의 아들들까지 돌로 쳤다고요? 아버지 죄로 자식 안 죽인다면서요?

아간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에요. 아간이 여리고 전쟁에서 금은과 외투를 몰래 가졌다가 들통났죠. 그 결과 아간뿐 아니라 그의 아들들, 딸들, 소, 양, 나귀까지 다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쳐 죽이고 불살랐어요(수 7:24-25).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명기 24:16)


가만, 완전 모순 아니에요?


아니에요! 맥락을 보면 이해가 돼요.


먼저, 신명기 24:16은 무슨 뜻일까요?

이건 사법적 원칙이에요. 이스라엘 법정에서 아버지가 도둑질했다고 아들을 벌하면 안 된다는 거죠. 개인 책임의 원칙이에요.


에스겔 18장 20절도 같은 원리예요: "범죄한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럼 아간의 경우는요?

여호수아 7장 24절을 자세히 보면: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히브리어 본문과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몇 가지 가능성이 있어요:

1) 아들들도 공범이었을 가능성

아간이 금덩이와 은과 외투를 장막 안 땅속에 숨겼어요(수 7:21). 좁은 장막에서 이걸 가족 몰래 숨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가족들이 알았다면, 침묵 = 공범이죠. 실제로 아간이 자백할 때 "내가... 탐내어 취하였나이다"(수 7:20-21)라고 했지만, 가족들이 만류하지 않았다는 건 암묵적 동의였을 수 있어요.


2) 증인으로 데려갔을 가능성

일부 학자들은 가족들이 증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고, 실제로 돌에 맞아 죽은 건 아간만일 수 있다고 주장해요.

2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를"(단수)이 아간만을 가리킬 수도 있어요.


3) 고대 공동체적 책임 개념

고대 근동 문화에서 가족은 하나의 단위였어요. 아간의 죄는 단지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렸어요.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36명이 죽고 말았죠.

그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전체 진영에 있었고(수 7:1),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멸망할 수 있었어요.


아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며 숨기는 죄, 그게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죠. 또 가족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경고예요.


3. 해와 달이 멈췄다고요? 증명할 수 있어요?

기브온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해와 달아 멈춰 서라"고 명령하자, 해가 종일토록 중천에 머물러 있었다는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구절 중 하나예요.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나니 (수 10:12-13)


"지구가 멈췄다고? 그럼 모든 게 다 날아갔겠네요!"

맞아요. 만약 지구 자전이 갑자기 멈췄다면, 시속 1,670km로 회전하던 게 급정지하니까 우린 모두 안드로메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을 거예요. 또 쓰나미, 지진, 초대형 재앙이 일어났겠죠.


그럼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문자 그대로 기적 하나님이 물리 법칙을 초월해서 지구의 자전을 멈추셨다는 견해예요. 동시에 관성 법칙도 정지시켜 재앙이 안 일어나게 하셨다는 거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이 정도 못 하시겠어요?"


2) 상대적 관점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가 멈춤) 어떤 학자들은 지구가 멈춘 게 아니라 태양과 달의 움직임이 초자연적으로 조정됐다고 봐요.


3) 시적 표현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는 뜻이라는 해석이에요.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하루가 이틀처럼 느껴졌다는 거죠.

하지만 13절에 "이 일이... 야살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라며 역사적 사실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비유는 아닌 것 같아요.


4) 대기 현상 (빛의 굴절) 하나님이 특별한 대기 현상을 일으켜 낮이 연장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이론이에요. 극지방의 백야(白夜) 현상처럼요.


5) 부분적 멈춤 지구 전체가 아니라 그 지역의 하늘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견해예요.


"NASA가 지구 자전 시간을 계산해서 하루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으나, NASA나 다른 공신력 있는 과학 기관에서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증명했다는 보고는 없어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거나 일종의 도시 전설 같아요.


그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솔직히, 이건 믿음의 영역이에요.

성경은 우리에게 역사적, 과학적 기록이 아닌 영적인 진리를 전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멈춘 이 기적은 우리의 이성을 넘어설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세상의 물리적인 법칙까지도 다스리실 수 있다믿음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수 10:14)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누가 하셨느냐, 왜 하셨느냐예요.

누가?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방법이 자연법칙을 초월한 것일 뿐이죠. 자연법칙도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우리에겐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님에겐 쌉가능이겠죠!


4. 도피성? 살인자 보호소?

여호수아 20장에 도피성 제도가 나와요. 죄를 지은 사람이 피할 수 있도록 6개의 성을 지정하라니, 현대 법치주의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특이한 제도죠.


그럼 도피성은 살인자도 무조건 보호해 주나요?


아니에요! 고의적 살인자는 보호 안 돼요.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한 거예요. 도피성은 과실치사를 저지른 사람을 위한 거예요.


민수기 35장 22-25절을 보면

미워함이 없이 우발적으로

해하려 한 것이 아니었는데

예를 들어 도끼질하다가 도끼날이 빠져서 옆 사람을 죽인 경우처럼요.


왜 이런 제도가 필요했을까요?

고대 근동에는 복수 제도(피의 보복자, goel)가 있었어요. 누군가 죽으면,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이 복수할 권리와 의무가 있었죠.

문제는, 사고였든 고의였든 일단 죽이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거예요.


도피성은 정의와 자비를 조화시킨 시스템이었어요:


1) 즉각적 보호 사고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도피성으로 도망가면, 일단 안전해요.


2) 공정한 재판 도피성에 도착하면 재판을 받아요(수 20:4-6). 장로들 앞에서 사건을 설명하고, 정말 사고였는지 확인받는 거죠.


3) 제한적 자유 무죄로 판명되면 도피성 안에서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성 밖으로 나가면? 복수자가 죽여도 죄가 안 돼요.


4) 최종 석방 대제사장이 죽으면 자유의 몸이 돼요! (민 35:28) 이때부터는 집으로 돌아가도 복수자가 건드릴 수 없어요.


3,500년 전 시스템이 현대 사법 제도에 비교해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니, 놀랍지 않나요?

무죄 추정의 원칙 (재판 전까지 보호)

공정한 재판 (증거와 심리)

비례적 처벌 (고의성에 따라 다름)

회복적 정의 (복수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


그래서 6개 도피성은 전략적으로 고르게 배치됐어요.

요단 동편: 베셀, 라못, 골란
요단 서편: 게데스, 세겜, 헤브론


어디서든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어요. 그리고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항상 잘 정비해야 했대요(신 19:3). 아마 표지판도 세워놨을 거예요. "도피성 이쪽 →" 이렇게 말이죠.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도피성은 죄인들이 피하여 생명을 얻는 장소였어요. 그럼 지금 우리에게 도피성은 무슨 의미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예요!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롬 6:23)

그리스도께로 도피하면 생명과 안식을 얻을 수 있어요 (히 6:18)

예수님 안에서 심판을 피할 수 있어요 (롬 8:1)


5. 제비 뽑기? 이거 운 아니에요?

여호수아 14-21장을 보면 땅 분배를 제비 뽑기로 해요.


"제비 뽑아서 땅을 나눈다고? 이게 무슨 공정한 방법이야?"

현대인들은 제비 뽑기를 우연이나 도박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완전히 달랐어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 16장 33절)

이스라엘 백성은 제비 뽑기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라고 믿었어요. 우연이 아니라 신적 섭리였죠.


왜 제비 뽑기를 사용했을까요?

1) 인간의 욕심 제거 만약 사람이 직접 땅을 선택했다면? 싸움이 났겠죠! "왜 유다는 좋은 땅 받고 우린 이딴 데야?"

제비 뽑기는 아무도 불평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이건 하나님이 정하신 거야!"


2) 편파성 배제(공정성) 모든 지파가 동등한 기회를 가졌어요. 정치적 힘이나 인구수와 상관없이요.


3) 하나님의 주권 인정 "이 땅은 우리가 정복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거야"라는 고백이었어요.


실제로 어떻게 했을까요?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고대 근동의 제비 뽑기는

돌이나 나무 조각에 이름을 써서 항아리에 넣고 뽑기

우림과 둠밈 (대제사장의 판결 도구)

작은 막대기나 화살에 표시해서 뽑기

등 이었대요.

하지만 완전히 랜덤은 아니었어요!

여호수아 17장 14-18절을 보면, 요셉 자손(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우리는 인구가 많은데 땅이 적어요!"라고 불평하니까, 여호수아가 "그럼 산지를 개척하세요"라고 해요.

즉, 제비로 대략적인 위치를 정하되, 구체적인 경계와 크기는 각 지파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 조정했던 거예요.


신약에서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 제비로 뽑아서 맛디아가 선택됐어요(사도행전 1장 26절).


하지만 성령이 오신 후(행 2장)에는 제비 뽑기가 안 나와요! 왜냐하면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저녁 뭐 먹지?"를 못 정하겠으면 동전 던져도 돼요.

"누가 설거지 할까?"를 못 정하겠으면 가위바위보 해도 되고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제비뽑기로 하면 안 돼요!

"어느 회사에 취직할까?", "누구와 결혼할까?", "어떤 집을 살까?"를 제비뽑기로 정하면 안 되죠!

지금은 성경 말씀, 성령의 인도, 이성과 지혜, 공동체의 분별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어요.

중요한 결정은 신중하게, 사소한 결정은 편하게!


6. 전쟁에서 싸그리 다 죽이라고요? 하나님이 너무 잔인해요!

자, 이제 여호수아서의 가장 어려운 질문이에요.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들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숨 있는 자는 다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여호수아 10장 40절)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소와 소,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여호수아 6:21)


이건... 대량 학살 아닌가요?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명백히 전쟁 범죄예요. 여자, 어린이, 동물까지 모두 죽이는 것은 제네바 협약을 완전히 위반한 거죠.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헤렘'(devotion to destruction 전멸 명령),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 역사적 맥락: 가나안의 죄악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의 극심한 죄악 때문이에요.

창세기 15장 16절: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나님은 400년 이상 참으셨어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죠.

가나안의 죄악이 뭐였을까요?

레위기 18장과 20장을 보면:

아이를 불에 태워 몰렉에게 바침 (인신제사)

성전 매춘과 음란 (종교 의식으로!)

수간(짐승과의 성관계)

근친상간, 동성애 등 온갖 성적 타락

폭력과 불의

이건 단순한 "다른 문화"가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는 악이었어요.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이스라엘편을 무조건 들어서 남의 나라 땅을 뺏어준 게 아니라(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여요),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백성들을 심판하신 거였어요(신 12:31).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나중에 나오겠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도 그 정의에 어긋나면 심판하신답니다.


2) 영적 전염병 방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악습에 물들까 봐 걱정하셨어요.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사기가 그 결과를 보여줘요.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타락

인신제사까지 드림 (왕하 16:3, 21:6)

결국 바벨론 포로로 가게 되지요!


3) 심판의 도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였어요. 마치 의사가 암 조직을 제거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완전히 썩은 사회를 제거하셨던 거예요.

중요한 건,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너희도 더럽히면 이 땅이 너희를 토하여 내리라"(레위기 18장 28절)

실제로 이스라엘도 나중에 같은 죄를 지었을 때 바벨론에 멸망당했죠.


그렇다면 정말 다 죽였을까요?

실은 아니에요!

여리고 성이 멸절됐지만 라합과 그 가족은 살았어요(수 6:25)

기브온 사람들도 속임수로 살아남았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셨어요(수 9장)


조건이 있었어요.

항복하고 여호와를 섬기면 살 수 있었어요!

어떤 성읍을 치러 나아갈 때에 그 성읍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만일 그 성읍이...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신명기 20장 10-11절)

그러니까 가나안 족속들도 선택권이 있었던 거죠.

① 항복하고 여호와를 섬긴다

② 떠나간다

③ 싸운다 (결말은 멸절)

대부분이 3번을 선택한 거죠.


4) 과장법 가능성

"다 죽였다"는 표현이 고대 근동 전쟁 문서의 관용적 과장법일 수 있어요.

실제로 정복했다던 지역에 여전히 원주민들이 살고 있어요(여호수아 15-19장).

그리고 사사기에는 "유다가 헤브론을 점령하지 못했고..."라고 쓰여있고요.

"완전 멸절"은 군사적 승리를 의미하는 고대 표현이었을 수 있어요.


어찌 되었건, 이 헤렘 명령구약 시대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는 특별하고 한정적인 상황에서 주어졌던 거예요. 이걸 오늘날 전쟁에 적용할 수는 없어요!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마 5:44), 신약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니까요(엡 6:12).

예수님 이후 복음 전파 방식과는 분명히 다름을 이해해야 해요.


여호수아서 여행 어떠셨나요? 성벽이 무너지고, 해가 멈추고... 액션 넘치는 신나는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전쟁을 치러내야 하는 정말 두려운 발걸음들을 기록해 놓은 책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세요.

400여 년 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 그 약속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키신 하나님(수 21:45).

여호수아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거 같아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나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순종하라고 하실 때 따를 수 있나요?

숨기고 싶은 죄를 고백하고 정리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나요?


이 질문들 앞에 지금 당장 대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불편해도, 계속해서 씨름하고, 다시 그 질문 앞에 서는 게 신앙이니까요.

여호수아의 마지막 선언으로 이번 여행을 마칠게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이번 주도 여호와를 섬기는 멋진 한 주 되세요!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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