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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Dec 08. 2023

찻잔

나의 물건들과 이야기 나누기 - 사적私的인, 지극히 사적私的인 대화 

(평소 말투를 그대로 사용한 말 글로서 비문이 많습니다. 대화를 완벽한 문어체로 하지 않으니까요. 이해해 주세요.)


나의 사랑스러운 찻잔.

얼마전부터 내곁의 물건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너는 이미 알고 있었니? 소파에 누우면 정면 벽에 보이는 시계와 하는 이야기를 찻잔 너도 다 듣고 있었지? 내 곁에 있었으니까 말이야. 이젠 찻잔 너랑 많은 이야기를 하고싶어. 너희들 중엔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넘는 시간을 나와 함께 한 찻잔이 있지. 모두들 귀를 쫑긋세우고 있는거야? 누굴 먼저 부를까?


생각의 벽장문을 열자마자 폴짝 튀어나오는 너 때문에 깜짝 놀랐다. 아휴, 귀여워라, <미녀와 야수> 찻잔이잖아! 그래 찻잔을 생각하면 너희들이 제일 먼저 떠올라. 사실은 너희들이 나의 글쓰기 기획 <이별하는 중입니다.>의 마중물이었어. 내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물건들이 많은데 말 한번 건네보지도 못한 채 어느날 그냥 헤어지기엔 너무 서운하잖아. 우리 헤어지기 전에 서로 말 몇 마디라도 나눠봐야지.

우리 헤어지는 건가요? 언제요?

글쎄, 언제일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우리에게도 마지막 날은 있겠지.

그런 이야기는 너무 슬퍼요.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잖아요.

그래. 지금은 아직은 아닐거야. 너희들은 예쁜 모습으로 즐겁게 노래부르며 춤을 추거라. 너희들의 그런 모습이 나를 참 즐겁게 한단다.

이제 다른 찻잔을 만나봐야겠어.


늘 내곁을 지켜주는 듬직한 머그잔이 앞에서 빤히 올려다보고있네.


고맙다 나의 듬직한 머그잔아. 너는 나를 가장 오랜 시간동안 지켜주었지. 삶의 갈래길에서 갈등할 때마다 너는 내게 결정할 시간을 붙들어 주었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마다 네가 담은 커피의 짙은 향으로 나를 진정시켜 주었어.

사랑을 잃고 마음이 시립고 시려서 꽁꽁 얼었을 때 네가 품은 뜨거운 커피로 나를 녹여주었어. 고마워.

아니에요. 당신을 위로한 것은 내가 아니고 내가 담고있던 커피였어요. 나는 다만 커피를 담아줬을 뿐이에요.

그렇기도 하지. 그러나 너는 내게 필요한 커피를 담고 내곁에 머물러 있었잖아. 나는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너를 손으로 잡는 순간부터도 뛰던 가슴이 진정됐고, 가슴 속 깊이에서부터 온기가 퍼지기 시작했어. 

나는 당신이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가다듬고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 늘 당신곁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 고마워. 그런 네 마음은 나도 다 알고 있단다. 그렇지만 커피말고 다른 차를 마실 때는 그 차를 담아주는 찻잔이 따로 필요했어. 내가 너를 제쳐두고 다른 찻잔을 고를 때는 네가 좀 서운했었겠구나.

아니에요. 당신이 가끔 마시는 오미자를 담기엔 내가 너무 투박하죠.

맞아. 오미자의 고운 색깔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흰색, 향이 솔솔 올라오는 넓은 찻잔이 좋더라구.


나는 일년에 20kg의 생 오미자로 청을 담아. 한더위에 땀을 식혀주는 고마운 오미자 음료. 그런데 차디찬 음료보다는 뜨거운 오미자차의 향이 더 짙거든.

본차이나의 완벽한 흰색 찻잔에 담긴 오미자는 미각 이전에 시각으로, 후각으로 먼저 만나지. 고혹적인 붉은 색을 그대로 보여주는 찻잔아, 정말 고마워. 네가 담고있는 오미자차를 마시며 나는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곤 하지.

나는 당신이 오미자 차를 마실 때마다 당신의 부드러운 표정을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래? 내 표정이 부드러웠다고?

예. 신맛에도 찡그리지 않고 쓴 맛에도 태연히 마시더라고요.

아, 잠깐. 그건 쓴 맛이 아니라 쌉싸롬한 맛이야. 쓰다고 거부할 수 없는 맛. 씁쓸하다고 찡그릴 수 없는 맛. 너그러이 수용해줘야할 쌉싸롬한 맛이지.  오미자의 맛은 그렇게 쓴 것만은 아니야. 우리 인생과 똑같은 맛이란다. 신맛과 쓴맛이 달콤함과 조화를 이루는 맛.

오미자가 얼마나 많이 맛의 변화를 부리는지 넌 잘 모를거야. 그런데 사실은 오미자 맛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마시는 내가 변덕스러운 거지. 어떤 땐 달콤 새콤쌉쌀하고, 어느 날엔 단맛은 날아가고 시큼씁쓸하기만 하거든. 

아, 그렇군요. 쌉싸롬한 맛은 받아들여야 하는군요. 그건 그렇고 내가 한가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당신은 차를 마신 후에 빈 찻잔을 왜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앉아있는 거에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내 안을 넋놓고 바라볼 때가 많더군요. 왜 그럴까 궁금했어요.

하하, 그게 궁금했구나. 나는 빈 찻잔에 가득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는거야.

비었잖아요? 빈 잔에 무엇이 담겼다구요? 차를 담지않은 빈잔은 쓸모없는 거 아니에요?

어머나, 빈잔이 쓸모없다니, 그건 잘못 생각한 거야. <노자>는 속이 비어있는 빈 그릇,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에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있다고 했어. 흙으로 만든 그릇의 비어있는 속이 쓸모있다고. 그릇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릇에 공간이 있어서라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 것, 무無가 그 쓰임을 뒷받침한다는 말이지. 네가 비어있을 때 차를 담을 수 있거든. 그러니 이제 빈잔이 쓸모없다는 말은 하지마.

찻잔에 차만 담는 것은 아니야. 빈 찻잔, 다 마신 찻 잔 속에 우리 삶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 차를 다 마시고도 선뜻 일어서지 못하고 빈 찻잔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찻잔 한가득 꽉꽉 눌러서 채워놓은 인생을 살펴보느라고 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오래 앉아있는 거란다.

당신은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아무 것도 없는 빈 찻잔에 인생이 가득 담겨있다니.

그래.  “비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나를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진다.

아무것도 없는 걸까, 텅 비어있는 걸까, 없고 비어있고 그저 하얀색일 뿐, 그런건가? 공空과 허虛, 무無, 그리고 백白, 이런 것의 의미를 캐느라고 빈 찻잔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거지. 

우리 빈 찻잔 이야기는 그만 하자. 이렇게 마무리할게. 빈 찻잔은 삶의 여백이다. 여백은 자유로운 창조다.


다음엔 너, 빅토리안 스타일 찻잔, 참 멋지구나. 금빛이 화려하네. 잘못 관리해서 컵 한 개는 이가 빠졌어. 그래도 아직 다섯 개가 남아있으니까 괜찮아.

30대 나이 때는 너같은 빅토리안 스타일이 갖고싶었어. 참 가난했었거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돈이 없었고, 생각의 깊이도 얕았고, 자연히 가시적인 것들에 눈이 돌아갔었지. 너처럼 고급진 찻잔에 그때는 흔하지도 않았던 얼그레이 티를 마시면 내 인생이 참 우아해보일 것 같았어. 사람들은 젊어서는 모던 스타일을 좋아하고 나이 많아지면 화려한 꽃무늬나 금색 칠한 것들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더라. 난 아니었어.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에 역부족이었던 젊은 시절엔 장미무늬 화려한 영국 찻잔도 갖고싶었고, 금색칠을 많이 한 너같은 찻잔도 갖고싶었었지. 

맞아요. 당신을 만난지도 벌써 30년이 훨씬 넘었군요. 당신은 나를 조심해서 다루고 귀하게 여겨 주었어요.

그럼 귀하고말고! 내 형편에 맞지도 않는 너를 가진 우월감에 어깨가 으쓱했었지. 참 내, 찻잔 하나로 빅토리안 여왕 행세를 하다니... 이제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던, 허영심만 가득하던 시절이었어. 살짝 부끄러워지네.타인의 허영심을 경멸하던 내가 왜 나자신에게는 관대했었을까? 그러던 시절도 한 때였지. 곧 현실의 나를 직시하고 정신을 차렸단다.

어머나, 젊은 당신을 안 만났으면 나는 지금 여기에 없을 뻔 했네요.

그래. 가계부를 꼼꼼히 쓰던 시절에 어떻게 금박의 럭셔리한 찻잔세트를 살 생각을 했었는지, 그건 정말 허영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 


나이 50이 가까워지니까 모던 스타일이 좋아지더라. 아무 장식없는 단조로운 찻잔이 손에 잡히더라. 손에 든 찻잔보다는 찻잔을 든 내 손이, 내가 나 자체로서도 품위있게 은은히 빛날 수 있었거든. 가시적인 것이 무의미해졌어. 중년이 되어서야 겨우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 철들다? 하하하.

한창 본차이나가 유행할 때 흙으로 구운 도자기 찻잔을 샀지. 엄마의 사기그릇이 생각나는 질감이야. 

그땐 미장원에도 안가고 살았단다. 머리카락을 가꾸기보다는 머리 속을 튼실하게 채우는 일에 시간을 투자했지. 머리카락을 뒤집어 쓴 머리 속을 잘 가꾸려고 노력하며 살았지.

하하하, 요즘처럼 영어를 남발하자면 hair가 아닌 brain에 힘을 줬다는 거군요. ㅎㅎㅎ

나의 50대, 시쳇말로 '쉰세대'라고 하던가? 그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는 다시 20대의 '신세대'로 돌아간 듯했어. 지적 욕구가 솟구쳐올라 책과 씨름하며 밤을 밝히는 날이 많아졌었지. 아, 물론 지식을 충족시켜주는 인문서적에만 몰입했던 것은 아니야. 소설책도 엄청 많이 읽었잖아. 소설을 통해 인생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지. 소설에 맛들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어. 학교 도서실, 그곳에서 30년대 한국 소설, 이광수, 세계문학전집에 푹 빠졌었지. 그 시간을 영어 수학에 투자했다면 나는 지금쯤 댜른 모습의 내가 되어있을거야. 

자식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안에서 하는 대화 주제도 다양해졌어. 식사가 끝난 식탁에서 차를 마시며 연구주제를 토론할 때 싱크대앞으로 슬며시 물러나는 내모습은 정말 싫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싶었어. 사회학을 전공하는 아들이 읽는 책을 어깨넘어로 보다가 직접 읽게되었지. 새로운 세계로 한 발짝 내딛는 설렘이 있었단다.  


꼬마 찻잔이 나를 빠꼼히 처다보고 있네. 그래, 요즘은 네가 나를 잘 못만났지.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나를 좀 이해해다오.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수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 그럴 때도 되었지! 

에스프레소에 얽힌 이야기 너도 알고 있지? 머리 염색도 안하고 다니니까 난 완전히 할머니티가 줄줄 나는 진짜 할머니로 보이는 거야.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카운터에 있는 청년이 내게 뭐라고 하는지 알아?

"할머니 그건 아주 쓰고 쬐끔 나오는 건데요."

내 행색으로 봐서는 에스프레소를 시켜먹을 사람이 아닌 게지. 한 번이 아니야. 에스프레소를 시킬 때마다 여기저기서 여러 번 들은 설명이란다. 아휴, 내가 생긴 꼴은 이래도 에스프레소가 뭔지는 알고, 가끔 마시고 싶어서 찾는 거라구.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진한 에스프레소를 잘 마셨었는데, 이젠 카페인이 무서워졌어. 늙어 활동량이 줄어들고보니 수면시간도 줄었지.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아. 

아메리카노 커피는 에스프레소 1에 물 5의 비율로 만든다고 하는구나. 생각해보니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는 것과 아메리카노 한 컵을 마시는 것은 똑같지 않나? 입맛이 다를 뿐이지 몸속으로 들어가는 카페인양은 똑같은 것 아닌가. 물을 탔다고해서 카페인이 없어지는 건 아닐텐데 말이야. 

글쎄요, 아들에게 물어보세요.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이 어떻게 다른지. 

그래야겠어. 

몸안에 들어가는 양은 같은데 짙은 것과 옅은 것이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는지 많이 궁금해요. 꼭 알아보세요.

OK. 잠깐! 소금도 그러네. 짜다고 물타서 먹으면 맛은 알맞게 되지만 염분은 그대로 먹는 것 아닌가.

맞아요! 참 궁금한 것이 많아요. 


그러고보니 우리집에 찻잔이 참 많다. 

점점 더 나이가 들면서 이것저것 다 처분하겠지만 아마도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을 찻잔은 바로 너희들이란다.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 기억하니? 

그럼요, 그럼요, 생각나구말구요. 아... 그런데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네요. 만난 장소는 슈탄베르크의 벼룩시장에서 만났는데요. 

그래, 나도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어. 23년 전 쯤일거야. 새천년이 왔다고 흥분해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벼룩시장의 여러 물건들 중에서 너를 집어들며 이 찻잔은 우리가 늙어서 커피를 못마시게 돼도 다른 차를 따라 마시면 바로 식지 않고 한참동안 따뜻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 수제품의 투박한 느낌이 멋스러워 보였단다. 

생각나요. 당신은 물건을 이것저것 고르지도 않고 나를 덥썩 집어들었어요. 한눈에 반한 거에요?

응, 투박한 네가 마음에 쏙 들었어. 흙으로 빚은 느낌이 참 좋았어.

뮌헨 공항 근처에 살 때 우리는 가끔 슈탄베르크 호수에 갔었지. 물가를 거닐며 T.S. 엘리옷의 <황무지> 구절들을 읊기도 하고. 

그이는 <황무지>를 노트에 다 베껴썼고 줄줄 외웠단다. 그걸 외우던  시절엔 먼 훗날 독일 뮌헨 외곽에 있는 슈탄베르크 호수에서 영국 시인 T.S. 엘리옷을 만날 거라는 생각은 꿈도 못 꾸었었는데... 많은 부분은 다 잊었지만 "4월은 잔인한 달"은 기억에 각인되어 해마다 4월이 돌아오면 몇 번씩은 읊조리는 구절로 남아있구나. 우린 슈탄베르크 호숫가를 자주 거닐었고, 어느 토요일 벼룩시장에서 너를 만난거야. 

내 마음은 아직도 너를 의지하고 있는데, 조금 더 세월이 흐른 뒤에는 늙은 손이 너를 쥐기 힘들게 되겠지. 그래도 너는 내 의식이 있을 때까지 내곁에 있을 것이다. 나를 잘 지켜다오. 

여기 찻잔 다 당신을 떠나도 저를 곁에 남겨주신다면 저는 정말 기뻐요. 오래도록 곁에 있을게요.

그래. 그런데 '오래도록'이라는 시간은 얼마만큼일까? 기준이 없는 알 수 없는 시간이지. 

글쎄요, 그냥 오래오래요.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사라지고, 너는 어딘가로 옮겨져 잊혀지는 때가 있겠지.

그때는 그때고요, 지금부터 그런 생각으로 쓸쓸해하진 마세요. 지난 번에 마신 대추 생강차를 끓이세요. 당신도 나도 따끈해질 차를 끓이세요.

알았어. 방금 생강편과 대추를 듬뿍 넣은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놨어. 우리는 잊혀져도 <황무지>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거야. 해마다 4월이면 사람들은 제각각의 해석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을 읊겠지.

아, 생강 대추차가 어울리는 찻잔은 너 말고도 또 있단다. 오늘은 너와 함께 마시고, 다음엔 뚜껑있는 찻잔에 담아 마실게. 


한때는 녹차를 즐겨 마셨었지. 너에겐 대추차를 담아도 잘 어울려. 뚜껑을 덮어서 잠시 두면 대추맛이 더 깊어지거든. 손잡이가 없는 찻잔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 두 손으로 소중하게 보듬으며 들어올리지. 차의 따뜻한 온도가 마음을 녹이는 게 참 좋아. 

너무 오래돼서 또렷이 생각나진 않지만, 너는 선물로 받은 거야.

생각 안나세요? 친척 ㅇㅇ가 가져온 거잖아요?

아, 맞다, 그래.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있었어. 이천 도자기라고 했었지. 유백색 백자 색감이 부드러워. 백자 색깔을 평범한 모바일 폰 사진으로 표현하기엔 적합치 않구나. 테이블 보 색깔도 작용을 하니까 더 어려워.  넌 약간 청회색을 띤 흰색이네. 설백이라 할 지, 회백이라 할 지 잘 모르겠다. 

당신은 어떤 백자색을 좋아하나요?

난 유백색을 좋아해.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백색. 사옹원 관요에서 구워낸 달항아리의 유백색이 정말 좋아. 정감어린 색이지.

백자라면 아주 하얀 색이 더 백자 기분이 나지 않나요? 

겨울에 하얀 눈이 쌓였을 때 톡쏘는 느낌의 눈부신 흰색, 설백색은 너무 차갑고 냉정한 느낌이라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렇군요. 당신이 좋아하는 유백색은 나이든 사람이나 쓰는 말이지요. 요즘엔 그런 말 잘 안써요.

그래, 아이보리색, 밀크색이라고 하지. 

조선 백자 색깔도 처음 빚었을 때로부터 조금씩 변해왔단다. 설백에서 회백으로, 그리고 유백으로.

자, 이제 다른 찻잔과도 인사를 나눠야겠다.


오래 기다렸지? 너는 홍차를 담아 마시기에 좋단다. 

왜요? 바닥에 그려진 꽃이 홍차향과 다른 꽃이라 좀 불편하지 않나요?

아니, 괜찮아. 너처럼 넓적한 찻잔은 향기를 맡기 좋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면적이 더 넓으니까 말이야. 향기를 더 많이 풍기잖아. 

당신은 언젠가부터 모던스타일이 좋아졌다고 했잖아요? 나는 금박이 둘려진 고전풍인데요.

금박이 있다고해서 모두 다 화려한 빅토리안 스타일은 아니야. 너의 금박은 품위있고 우아함을 더해주는 걸. 아주 여성적이야.

그럼 아주 투박한 남자손에는 잘 안어울리겠네요?

으음- 그러네. 우습다. 남자들이 차를 마실 때는 안 어울릴 것 같기도 해. 

여자들끼리 모임에 사용하면 되죠.

여자들이 모여서 너처럼 우아한 찻잔을 손에 들고 거친 수다를 떨면 안 어울리겠지? 빈수레 굴러가는 요란한 소리와 너는 전혀 안 어울리거든.

당신은 찻잔과 대화의 어울림까지 생각하며 사나요?

꼭 그런것만은 아니야. 네가 함께 하는 티타임의 대화는 좀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넌 너와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에게 보내야겠다. 부엌에서 해방되면 정갈한 테이블 보를 깔고 향기로운 차가 담긴 너를 손에 들며 클라식 음악에 심취되는 여자, 빈 종이를 펼쳐놓고 손글씨로 글을 쓰는 아날로그 감성의 여자, 그런 사람에게 너를 보내야겠어. 너에게 담겨있는 차향기를 풍부하게 기록하는 여자에게.


영국 웨지우드 본차이나 찻잔과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선물받은 찻잔세트. 우리집에 네 친구들이 몇 더 있잖아. 매해 생일 때 몇가지 생일선물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데 난 너를 3년 연속 선택해서 같은 것이 3세트나 되었어.

왜 똑같은 것을 3번 선택했느냐고? 나름 생각이 있었지. 삼남매에게 하나씩 나눠주려고 그랬거든.

그런데 왜 안 나눠주고 아직 가지고 있나요?

애들이 안가져간대. 그 애들은 머그 컵 하나면 다 되니까 말이야.

지금은 아이들 뒷바라지에 여유가 없어서 그럴 거에요. 밥도 제 시간에 못 먹는다잖아요?

맞아. 이렇게 펼쳐놓고 편안하게 차를 마실 여유도 없고, 사용한 다음에 설겆이하기도 싫고 그렇겠지.

그런데 난 이 찻잔세트를 삼남매에게 보낼거야. 너한테 얽힌 스토리와 함께.

예, 그러세요. 난 당신의 마음을 알겠어요. 삼남매들도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 그 이야기를 간직하는 의미로 나를 삼남매에게 나눠주세요.

너를 생일 선물로 받게 된 것은 그이가 ㅇㅇ항공사 밀리언 마일러이기 때문이지. 너는 그 항공사 퍼스트 클라스에서 서빙할 때 사용하는 찻잔이잖아. 밀리언 마일러에게는 생일선물을 주는데 와인, 와인쿨러, 찻잔세트, 이런 것들 중에서 하나 골라서 받는거야. 그동안 와인도 많이 받았고, 와인쿨러도 여러 개 받아서 여기저기 나눠줬고, 그리고 너를 3번 받았지.

대단하군요. 밀리언 마일러라니!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탄 거에요?

놀랍니? 실제로는 완 밀리언을 넘어 아마도 투 밀리언.... 그리고 그 항공사 한군데 뿐이 아니야. 

예, 알아요. 아마도 항공사 승무원보다 더 많이 비행기를 탔을거에요.

모르는 사람들은 부러워하기도 하고, 잘 아는 사람들은 딱하다고 하기도 해. 삼남매도 그이가 몸 아끼지 않고 날아다니며 벌어서 저희들 뒷바라지 한 것을 다 알고 있어. 자식에게 보답을 바라는 부모는 없지만, 고마워하는 마음은 서로의 사랑을 더욱 굳게 한단다.

옛날 보부상처럼 돌아다니며 일한 거야. 실물이 서류로 바뀌었고, 이동 도구가 비행기로 바뀌었을 뿐이지, 필요한 곳마다 쫓아다니는 것은 다 똑같지 뭐야. 물건을 들고 팔러 다닌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IT의 발달로 화상으로 만날 수 있으니 쫓아다니는 일은 줄어들었어. 

그이와 악수를 한 사람들 중에 몇몇은 그의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힌 것을 의아해 한단다. 평생 몸노동은 안하고 산 사람의 손에 왜 굳은 살이 박히느냐고. 젊어서부터 들고 다니던 여행용 트렁크 때문일거야. 이번 여름엔 어깨 회전근개 파열 봉합수술을 했잖아. 몸노동을 않고 산 사람 어깨가 왜 그렇게 됐겠니? 순간순간이지만 무거운 여행용 트렁크를 들었다 놨다하는 일, 그것이 반복되면서 어깨가 그리 됐겠지. 그렇게 40년 넘은 세월을 보냈단다.

그렇군요. 책상에 앉아 머리만 쓰는 엘리트 사무원, 비행기만 타고 다니는 고급 비지니스 맨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었군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다 그렇게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너를 삼남매에게 기념으로 주려고 하는 거야. 값은 어떻든 아버지의 어깨가, 아버지의 손이 상처를 입으면서 얻은 전리품같은 것으로.

괜히 눈물 나려고 하네요. 

그래? 뭔 눈물까지... 그런 의미 말고도 넌 가치있는 찻잔이잖아. 웨지우드 본 차이나는 명품이니까말이야.

지금 본 차이나 아닌게 어딨어요, 다 본차이나죠.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처음 유럽에 갔을 때 옛 궁전이나 성에 '차이나China'방이 있는 거야. 중국풍으로 장식한 방인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까 온통 도자기로 벽을 뒤덮었더라. 그때 알았어. 도자기를 '차이나'라고 한다는 것을. 유럽의 흙은 중국 도자기같은그릇을 빚기에 어울리지 않았어. 많은 그릇을 중국에서 수입해 사용했거든. 그런 이유로 도자기를 '차이나'라고 부르게 된 거야. 그러던 중 영국에서 동물의 뼈를 갈아 섞은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었지. 얇고 강도가 센 본 차이나가 탄생했어. 하나 더 얘기할 게. 유럽 골동품상 진열장을 구경하면 중국풍 도자기들이 많아. 난 당연히 중국의 옛 도자기로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중국것이 맞기는 해도 문양은 중국풍이 아닌거야. 영국에서 중국에 도자기를 주문할 때 자기네들 취향에 맞는 도안을 보내고 그대로 해주기를 요구했대. 그러니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이기는 해도 문양은 영국식인 것이지. 나중엔 그런 스타일이 중국사람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중국 도자기의 양식이 됐다고 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


힘들구나. 차 한잔 해야겠다. 다음엔 누구랑 이야기를 할까? 책? 음반? 식물? 아니, 술잔?




왜, 그냥 손을 탁 놓지 못하는 걸까요? 나눔을 하면서도 물욕을 버리진 못하는 건지... 

아, 미리 계획하고 사진이라도 멋지게 찍을 걸. 그냥은 내줄 수 없어서 급히 사진을 남깁니다. 미처 사진도 찍지 못하고 지인의 집으로 이사간 찻잔, 마음속으로 그 모습을 그려보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주는 건 아깝지 않은데 떠나보내는 건 영 서운하네요.

손때묻은 물건들과 헤어지며 함께 한 세월을 돌아봅니다. 세월!


사용한 커피필터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북아트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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