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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29. 2024

에드가 드가 <다림질하는 여인>

오래 전 유럽 여행을 처음 갔을 때 식당 테이블에 덮인 면 식탁보가 참 좋아보였다. 풀을 빳빳하게 먹여 깔끔한 맛을 더해도 좋고, 풀기가 없는 식탁보는 그런대로 부드러워서 좋았다. 귀국하여 우리집에도 면 식탁보와 냎킨을 마련하여 손님이 오실 때 사용했다. 


처음 파리 여행을 갔을 때 국내 전시회에 흔치않았던 파스텔 그림들을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났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하는 소녀들 그림은 환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의 이름앞에서 발레하는 소녀를 먼저 떠올린다. 카페나 레스토랑 벽에 걸린 드가의 그림들도 거의 발레하는 장면이다.  드가는 다양한 발레 무용수, 경주마, 여성 누드, 노동하는 여성들의 모습으로 세탁부와 다림질하는 여성 그리고 모자 만드는 여성을 테마로 그렸다. 정적인 누드화를 제외하면 모두 움직임을 순간 포착한 장면들이다. 스냅사진의 한 컷같은 그림을 유화와 파스텔로 그렸다.


에드가 드가를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한다. 파리에서 열린 인상파 전시회 여덟 번 중에 일곱 번(1874~1886)이나 참여한 작가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인상주의 스타일은 어떤 것인가? 빛의 변화, 개방적인 구성, 눈에 띄는 붓자국을 특징으로 꼽지 않는가. 인상파들은 전시 살롱과 교육 아카데미에서 선호하는 웅장한 역사적 우화적인 장면을 벗어나 주변 도시 생활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드가 역시 인상주의 스타일을 선호했으나 즉흥적인 구성, 빠른 붓놀림과 야외 그림을 거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신중하게 그림을 계획하면서 수차례 예비 드로잉을 했고, 모델이 정해진 위치에서 포즈를 취하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야외 풍경화의 관행을 경멸했기 때문에 다른 인상파들과 차별화된다. 그 자신은 사실주의 화가, 독립파, 현실파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모네나 르누아르와는 달리 색상 효과보다 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래의 그림들 '다림질하는 여인'의 팔 윤곽선에서 이러한 강조점을 볼 수 있다. 

드가는 1873년부터 1895년까지 세탁소 시리즈에서 27명의 다림질과 세탁부 여성을 제작했다. 당시 노동계급 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다림질하는 여성'이나 '세탁부' 그림은 여인을 예쁘게 그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작업에 중점을 둔다. 그녀들은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익명의 하층민들이다. 일종의 장르 페인팅(Genre painting 풍속화)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가 드가 <다림질하는 여성들 Repasseuses>. 1884-1886. 캔버스에 유채. 76 x 81 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첫눈에 거친 캔버스가 눈에 띈다. 젯소(gesso)로 애벌처리하지 않고 캔버스 위에 직접 칠을 해 거칠게 보인다. 그림은 유화인데 이 방법으로 파스텔 효과를 낸다. 뿐만 아니라 벽에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느낌도 준다. 지저분하고 거친 회반죽으로 칠한 벽 사이로 습기가 스며드는, 우중충하고 텅 빈 방에서 두 여자들이 매일의 노동을 하고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굴뚝있는 대형 난로가 있다. 다리미를 가열하는 데 필요하다. 머리를 숙이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오른쪽 여성은 온몸의 무게를 다리미에 얹어 열심히 일하고, 왼쪽 여성은 하품을 하며 병을 들고 있다. 그녀의 지저분한 반팔 블라우스는 잘 발달된 팔 근육을 드러낸다. 일하는 여성의 뒷모습은 하품하는 여성의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져있다. 두 여성의 병치를 통해 작업의 육체적 노력과 반복성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일과 휴식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 사람은 하품을 하고 다른 사람은 다리미에 무겁게 기대고 있는 '다림질하는 여성' 시리즈는 거의 동일한 구성의 네 가지 변형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이 그림은 시리즈의 세 번째 변형이다. 그림의 구성은 다리미판이 제시하는 대각선에 따라 달라지며, 수직 와인병과 굴뚝으로 양분된다. 파란색, 적갈색, 녹색 및 황토색이 전경과 여성의 옷에 나타나 색채 균형을 이룬다.  다른 그림과 달리 화면 오른쪽 위에 화가의 싸인이 있다.


에드가 드가 <다림질하는 여성들 Laundry Girls Ironing> c.1875-1876 시작, c.1882-1886 재작업. 캔버스에 유채. 81.9 x 75.5cm. 노턴 사이먼 아트 재단,  파사데나 캘리포니아, 미국.


위의 그림과 같은 시리즈이다. 다리미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여성과 하품을 하고 목을 마사지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 여성이 있다. 그림 하단 정중앙에 있는 저 동글동글한 것들은 무엇일까? 요즘 사람들이 첫눈에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는 힘들 것이다. 빳빳하게 풀먹여 다린 커프스cuffs이다. 멋지고 바삭바삭한 커프스를 만들기 위해 힘들게 다림질하는 일은 고된 노동이다. 


세탁소는 프랑스 예술가의 주제로 인식되어 있었다.  세탁부와 다림질하는 여성을 주제로 삼은 그림이 많다.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 1699-1779)과 그뢰즈(Jean-Baptiste Greuze, 1725-1805)는 이미 18세기에 세탁부 그림을 그렸다.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의 세탁부 그림이 있고, 프랑수아 본빈(François Bonvin, 1817-1887)의 다림질하는 여인이 있다. 


에드가 드가 <세탁부 Laundress> 1873. 캔버스에 유채. 25x19cm. 

노턴 사이먼 뮤제움, 파사데나 캘리포니아, 미국.


무쇠난로의 검붉은 쇠기둥이 강렬하게 화면을 가른다. 그것을 배경으로 다림질하는 여인의 흰셔츠와 잔뜩 힘을 준 팔뚝이 더 도드라진다. 다림질하는 물건은 테이블보거나 침대 시트일 것이다. 누군가 누리는 정갈함의 호사가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다리미를 달구는 난로의 열기와 힘든 노동으로 얼굴은 홍조를 띤 모습이다. 유럽의 레스토랑에서 인상깊었던 정갈한 흰색 테이블보를 멋지게만 보았을 뿐, 그것이 테이블을 덮기까지의 노동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그림 속 여인의 붉은 뺨처럼 내 마음이 부끄러움에 빨개진다.


에드가 드가 <우타가와 세탁부 Utagawa laundress > 1886. 캔버스에 유채. 65×67 cm. 

레딩 공립 박물관, 펜실베니아, 미국


1880년대의 다림질 그림과는 매우 다른 대각선 구도가 강렬하다. 위로 기울어진 작업대의 급격한 자르기가 강한 대각선 구도이다. 위에서 바라본 구도로 인물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머리도 빨래에 가려져 모델의 익명성을 연출한다. 

굽은 양팔이 만든 타원형의 형태는 그림의 강렬한 구성형태를 보여준다.  옷을 칠한 오렌지 색도 강한 느낌을 준다.  그림은 드가가 초기의 세세한 작품에서 벗어나   대담하고 회화적인 후기 스타일로 옮겨가는 모습이.


에드가 드가 < 다림질하는 여인 The Ironing woman > 1869. 종이에  목탄, 분필, 파스텔. 74x61cm. 

오르세미술관, 파리, 프랑스


목탄, 크레용, 파스텔 스케치로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성'에 대한 최초의 그림(1869)이다. 비평가들은 드가의 '세탁부' '다림질하는 여성' 주제가 에일 졸라(Émile Zola, 1840-1902)의 소설 <목로주점(L'Assommoir, 1877)>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졸라는 드가의 작품이 소설 <목로주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드가는 1869년에 '다림질하는 여인' 그림을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했고(위의 그림), 세탁부가 주인공인 졸라의 <목로주점>은 1877년에 출간되었다. 드가의 세탁부 그림은 이 한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니 서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될 것같다.(개인적인 생각이다.)


여성의 포즈는 한 손은 다리미 위에, 다른 한 손은(팔의 위치가 불확실함) 천을 잡고 어색한데, 얼굴은 작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그림 밖으로 대각선 방향을 올려다보고 있다. 다른 그림들이 다림질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에 반해 이 그림의 구도는 정적인 구성이다. 대상은 실제 세탁소 여성이 아닌 드가의 정규 모델 중 한 명인 엠마 도비니(Emma Dobigny/Marie Emma Thuilleux, 1851-1925)이다. 엠마 도비니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드가의 모델이었다. 


에드가 드가 <세탁부 실루엣 laundress-silhouette> 1873. 캔버스에 유채. 54.3 x 39.4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미국


이 그림은 세 가지 버전 중(아래에 두 가지 그림 포함)에 첫 번째 그림이다.

여자의 모습은 역광을 받아 실루엣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다림질하고 있는 옷은 마치 드가가 다리미의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정지시키려는 것처럼 인상주의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리 위에는 셔츠가 걸려 있고, 창문에서 계속해서 하얀 빛이 벽과 테이블 위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 시대의 다른 '세탁부'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도 창문 옆에서 힘들고 고독한 작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특징으로 한다.

실루엣은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인물을 크게 그려 마치 비좁은 공간 속에 있는 듯하다. 검정색과 회색 음영을 사용하여 세탁부의 실루엣을 만들어 바구니에 담긴 리넨의 밝은 색상과 대조를 이룬다. 드가의 세심한 관찰과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스커트 주름, 앞치마의 주름, 신체 자세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왼쪽; c. 1892-95. 캔버스에 유채. 80 x 63.5 cm. 워커 아트 갤러리, 리버풀, 영국.

오른쪽;  1876시작, 1877완성. 캔버스에 유채. 81.3x66cm. 내셔널갤러리 어브 아트, 워싱턴, 미국


왼쪽 그림은 드가가 1870년대 초에 시작한 다림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세탁실 그림은 그의 발레리나 시리즈와 유사하다. 두 주제 모두에서 드가는 여성의 정확한 동작을 연구한 점이 같다. 

다림질에 열중하고 있는 여성의 탄탄한 몸은 성격까지도 매우 강한 느낌을 준다. 단순하고 강한 느낌의 이 그림에 드가는 그림의 미적 효과를 강조했다. 블라우스의 로즈 레드와 그린색 세탁물의 조합으로 색상의 효과를 본다. 작업용 테이블을 다리미판으로 대치하고 배경의 세부사항을 단순화했다. 얼굴 특징은 보이지 않고, 창문과 벽과 걸어놓은 세탁물을 일련의 수직 크림색 줄무늬로 추상화했다. 다림질하고 있는 밝은 녹색과 노란색 드레스는 캔버스를 가로질러 밝은 대각선으로 단순한 그림의 지루함을 깨뜨린다.

오른쪽 그림은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세부 사항을 묘사했다. 벽에 걸린 세탁물,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림질 도구들, 다리고 있는 셔츠의 형태가 왼쪽 그림과 달리 자세하다. 


전문 다림질 담당자는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작업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달궈진 다리미의 열기와 옷의 축축한 습기 때문에 세탁소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덥고 습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결핵과 기관지염 같은 호흡기 질병에 시달렸다. 최저임금을 받는 그들은 겨우 식비와 집세를 감당할 뿐이었다. 

다리미의 무게는 약 3kg 정도였다. 다리미질할 때의 물리적 압력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다림질하는 여성'의 굽은 등 곡선과 팽팽한 팔의 선을 보면  화가는 다림질 작업에 대한 노동의 강도를 충분히 이해한 것 같다.


에드가 드가의 "다림질하는 여인"은 장르화(풍속화)에 대한 드가의 인상주의적 접근 방식이다. 친밀감과 즉각성을 모두 갖춘 공통된 장면을 표현하며, 그것이 창작된 특정한 역사적 맥락을 초월하여 더 넓은 인간 경험을 이야기한다.


에드가 드가 Edgar Degas <다림질하는 여인 Woman Ironing > ca.1869. 캔버스에 유채. 92.5 X 73.5 cm.

노이에 피나코텍, 뮌헨, 독일. (2022.05.31 노이에 피나코텍에서)


27개의 세탁소 시리즈중에서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2개 작품과 이 작품은 직접 감상했다. 이 그림은 1869년에 제작된 세탁부와 다림질 시리즈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미완성 작품으로 드가가 사망할 당시 그의 작업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전경 캔버스의 아래쪽 1/3 전체는 흰색의 고상한 무늬가 있는 천이 넓게 펼쳐져 있다. 배경에 걸려있는 세탁물들은 거칠게 칠해져 그림의 미완성 상태를 실감나게 한다. 드가는 양쪽 팔의 다양한 위치를 실험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하지는 못했다. 오른손은 다리미를 잡고, 왼팔은 수직으로 늘어져 있고, 손은 숨겨져 있다. 다림질하는 엠마(모델)는 그림의 중심에 완전히 초점을 맞추어 칠해져있다. 그녀는 처리해야할 옷과 다리미에 집중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다리미에 자신의 무게를 실어 누르거나, 잠시 허리를 펴고 쉬거나, 그런 자세와는 전혀 다른 정면 응시 장면이다. 

이 그림 이후로 수없이 많은 다림질 장면을 그렸으면서도 이것은 왜 완성하지 않았을까? 미완성작품을 감상하며 모델의 왼팔을 옷감 위로 올려놔보고, 다리미를 여기저기로 움직여보기도 한다. 아래로 늘어진 왼팔을 그림 앞쪽에 얹으면 아마도 허리를 좀 굽혀야하는 자세가 될테고,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다림질 작업중이라면 다리미가 옷감의 주름에 따른 방향으로 머리를 둬야할 것이다. 이 그림을 만난 것은 그림의 완성을 그려보는 재미있는 관람이었다.



같은 방에 걸려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방적공 그림이다. 고흐 역시 노동하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다. 

1883년부터 1885년까지 부모와 함께 뉘넌Nuenen의 목사관에 머무는 동안 방적공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 당시 뉘넌에는 400여명의 방적공들이 살았다고 한다.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 전시실이니 드가와 고흐가 한 방에 있다. '인상파' 분류외에 '노동자 계급' 주제로 드가와 고흐 작품을 동류항으로 묶어본다.



150년 전만 해도 세탁과 다림질하는 일은 노동계급 여성에게 낮은 지위의 직업이었다. 당시 가장 힘들고 급여도 낮았기 때문에 일부 세탁소에서는 성노동을 통해 수입을 보충해야 했다. 여성 노동, 그러한 노동의 고된 노력, 사회 계층을 강조하는 혁명적인 이 시리즈는 비평가들로부터 현대성의 전형으로 호평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세탁소와 다림질 그림 외에 또다른 그의 주제를 보자. 그는 발레 무용수 주제에 관해  1,500개의 작품을 제작했다전통적인 아름다운 초상화가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을 다루는 연구였다뒤틀린 자세와 무용수의 신체성과 규율을 탐구했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장면을 바라보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등 독특한 구성 기법을 개발했다. 발레 시리즈 또한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다. 

드가는 위대한 화가들 중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화가이다. 

그는 여성혐오자로 알려져 있었고, 일부에서는 드가의 예술에서 여성혐오가 명백히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그의 주제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주요 주제이다. 그는 매춘부라 할지라도 결코 경멸하지 않았다. 르누아르나 당대 다른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서처럼 단순히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평에 매달리지 않았다. 드가는 현대 도시 생활의 거칠고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 완전히 다른 주제, 즉 파리 세탁부의 노동에 매료되었다. 그의 시대에 수만 명의 여성이 수행한 소외된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이 노동계급 여성들은 대부분의 파리지앵들의 옷과 린넨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거리에 열려 있는 상점에서 일하거나 무거운 옷 바구니를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띠었다. 화가로서 그는 70대까지도 여전히 혁신을 거듭하는 동시대 사람들 중 단연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었다.




한 여름이 오기 전까지 입을 옷을 다림질했다. 겨우내 접은 상태로 눌려있던 옷을 세탁기에서 행굼으로 적시고, 빨래줄에 널어 3시간 정도 두었더니 물스프레이 없이 다림질하기 좋았다. 린넨은 굳이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구깃구깃한 자연스러운 멋이 더 좋기도 하다. 그 '자연스러움'을 핑계로 남편의 드레스셔츠보다는 덜 공을 들여 다린다. 

린넨셔츠 몇장과 면 원피스를 다려놓고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천기저귀를 빨아 말려 수북히 개어놓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었다. 다림질도 그렇다. 이젠 정장을 자주 입지 않는 남편이지만 회사에 출근하던 시절엔 한꺼번에 정확히 7개의 셔츠와 바지 3개를 다려서 걸어놨다. 그 시절엔 토요일도 근무했고 일요일엔 교회에 양복을 입고 다녔으니까. 

여름이면 이불 호청을 풀먹여서 다렸다. 보송보송하고 매끄럽고 시원한 목면 호청을 덮을 때의 기분이란!

다림질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었다. 단순노동이 주는 힐링을 아는가?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다림질에만 집중하여 구깃구깃하던 섬유가 반듯하게 펴지는 과정, 팔소매 양쪽앞섶 뒷판을 차레대로 다리며 완성되면 다림판 옆의 옷걸이에 걸어두고, 그 반복되는 행위가 시간이 지나면 옷걸이에 가득한 깨끗한 옷들이 주는 '아주 부자가 된 느낌'이 좋다.

린넨셔츠 대여섯 벌을 다려놓으면 한동안 유용하게 입을 수 있다. 다림질이 필요없는 옷들이 더 많으니 이 셔츠들은 아주 햇빛이 뜨거운 날이나 몸가리개로 입는다. 사각사각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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