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Feb 15. 2024

샤갈의 커플들

네덜란드의 전총리(1977-1982) 부부(Eugenie and Dries van Agt)가 자택에서 동반 안락사했다는 뉴스에 눈길이 멈췄다. 지난 2월5일, 93년의 인생여정을 마치고 함께 손을 잡고 미지의 하늘나라로 떠난 부부는 70년을 함께 했다. 70년 동고동락의 시간을 함께, 생의 마지막 순간도 함께. 사람들이 ‘안락사’의 선택권 논쟁을 벌이는 동안 커플이 찰떡같이 붙어있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들춰봤다. 


https://musees-rouen-normandie.fr/fr/oeuvres/le-monstre-de-notre-dame 

<노트르담의 유령 Le monstre de Notre-Dame>,  1953. 캔버스에 유채, 파리 개인소장.


1923년 모국인 러시아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 후 샤갈은 두 개의 가장 큰 기념물인 에펠탑과 노트르담을 통해 상징되는 수도를 자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파리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자신의 상상력을 결합했습니다. 달빛에 물든 파리는 짙푸른 색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노트르담 위에 샤갈그림에 늘 등장하는 꼭 끌어안은 연인이 둥둥 떠있군요.

하늘을 떠다니는 연인은 사랑의 기쁨과 행복함을 상징합니다.  1915년 벨라와 결혼한 뒤 샤갈의 작품은 러시아 혁명의 혼란한 사회상도 잊은 듯 행복의 감정이 가득했지요. 현실세계의 구속을 모두 떨치고 사랑과 행복을 나타냅니다. 공중을 걷거나 떠다니는 사람들은 초기부터 샤갈의 작품에 등장했습니다. 

유대어로 ‘공중에 뜬다’는 것이 ‘구걸’을 의미하는데, 처음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가난하고 고달픈 자신의 삶, 그리고 유대인의 처지를 공중에 떠있는 사람으로 빗대어 형상화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하늘을 떠다니는 연인은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노트르담 위에 둥둥 떠있는 연인은 제목이 유령이라고 일러줍니다. 유령이라도 전혀 공포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사랑이 깊은 연인들의 끌어안음 때문인가봅니다.

노트르담의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요?  벨라와 샤갈처럼 노트르담 위에서 서로 꼭 끌어안은 채 유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판 아흐트 총리부부는 지금 우주의 어느 공간을 유영하고 있을까요?


https://artblart.files.wordpress.com/2015/01/coppia-sopra-st-paul-web.jpg 

<생 폴 위의 부부 Le couple au-dessus de Saint Paul>, 1968. 캔버스에 유화, 146 X 130 Cm,  파리 개인소장.

샤갈의 작품에 나타나는 색은 주로 빨강과 파랑입니다.

파랑은 샤갈이 추구하던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며 유대인으로서 신을 경배하는 종교적인 숭배의 색이죠. 

러시아시기의 초기 작품에서 주로 사용하던 빨강색은 샤갈이 프랑스에 살면서 고향 러시아를 그리워하거나 유대인 형제애를 나타내는 색으로 사용했습니다. 위의 <생 폴 위의 부부>는 서로 끌어안고 있는 행복한 모습입니다만(1968년 작품으로 프랑스가 무대, 파랑색) 그 바닥엔 고향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깔고 있지요(빨강색).   


<흐린 햇빛 마을 Village au soleil sombre> 1950, 캔버스에 유화, 파리 개인소장.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태양은 크고 붉게 떠 있습니다.

그 붉은 빛이 함정이라고나 할까요?  한 낮에는 태양의 색깔을 볼 수가 없지요. 아마도 마악 해가 지려고 내려가기 직전인 듯 합니다. 신랑 신부의 앞에선 사람은 그림 속 동물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군요. “얘들아, 저리 비켜, 신랑신부가 저녁 산책을 나왔단다.”

그런데 어쩜 이 여인은 죽은 벨라인지도 모르죠. 하얀 드레스의 신부에게서 혼이 분리됨을 상징으로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샤갈은 이 그림을 그린 2년 후 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을 합니다. 

날씨는 흐리기도 하지만 햇빛은 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세월에도 흐린 날의 잿빛과 밝은 날의 햇빛은 늘 있지요. 



https://www.artsy.net/artwork/marc-chagall-la-joie 

<환희La Joie> 1980,  석판화, 이미지 크기 94.6cm x 62.2cm. 니스 국립 샤갈 성서미술관


화면 중앙에 있는 부부는 작품의 제목에서 언급된 기쁨을 구현합니다남자와 여자는 서로 기대어 그림 왼쪽 배경에 있는 에펠탑의 형태와 같이 서있지요서로 얽힌 그들의 몸은 이미지의 기념비가 되어 세느강과 발밑의 작은 풍경 위로 우뚝 솟아 있네요. 그림 상단에 있는 인물과 하단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시각적으로 서로 보완할 뿐만 아니라 중앙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듭니다배경의 파스텔 블루와 민트 그린은 여자 붉은 드레스와 대조를 이루며 시선을 그림의 중앙으로 집중시킵니다파리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재구성하여 도시와 인간을 연결시킵니다. 샤갈 작품의 특징이죠.



https://www.mutualart.com/Artwork/-Couple-dans-les-Mimosas---1967--lithogr/E868623655E6508C 

<미모사 속의 부부 Couple dans les mimosas> 1967. 석판화 73x52cm. 파리. 개인소장


부부는 가장 사적이고 열정적인 존재가 아닐까요밝은 달이 아래 도시를 비추는 프랑스 해안입니다샤갈과 샤를 솔리에(Charles Sorlier) 공동으로 제작한 니스와 코트다쥐르(Nice and the Côte d'Azur) 라는 제목의 석판화 12점 세트에 속한 그림으로  그림의 배경이 프랑스 해안이라는 것을   있지요.

도시는 자홍색과 보라색의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밤의 에너지로 북적입니다도시와  사이의 신비로운 공간에서 사랑에 빠진 부부가 지그시 껴안고 서로를 바라봅니다부부를 둘러싸고 있는 다채로운  이미지는 둘의 열정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시각적인 은유입니다.   꽃들은 후광 역할을 하며  커플 육체적정서적 결합을 상징합니다샤갈의 뛰어난 색채와 형상적 묘사는 우리를  장면의 낭만과 열정 속으로 초대합니다초대에 응하고 우리도 사랑에 빠져볼까요?



https://www.mutualart.com/Artwork/Couple-et-Poisson--from-Nice-and-the-Cot/1221A586A5E05EE5 

<커플과 물고기 Couple et poisson> 1967.  석판화 73x52cm. 파리 개인소장


니스 해변의 낭만적인 장면입니다주로 파란색과 녹색으로 구성된 이미지는 눈을 편안하게 합니다. 샤갈의 커플을 주제로 한 작품은  연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사랑의 본질을 능숙하게 보여줍니다커플이 그림을 지배합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부부의 세계로 이끕니다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진 듯한 남자의 품에 안겨 사랑을 듬뿍 받는 느낌입니작품의 아래 여백에서 부부에게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물고기부터 중간 왼쪽부분 공중에  있는  사람까지전체 이미지는 부부를 중심으로 순환합니다. 주변 이미지들에 눈길을 주다가도 결국은 부부에게로 다시 시선이 옮겨지는 순환이지요.  같은 빨간색이나 노란색의  가지 톤으로 묘사된 작품 편안함과 따뜻함의 감정적 특성을 표현합니다. 



https://www.mutualart.com/Artwork/Fiances-dans-le-ciel-de-Nice--Nice-et-la/05981D516426CA3B 

<니스 하늘의 약혼자 Fiances dans le eiel de nice> 1967. 석판화. 73x52cm. 개인소장. 


밝고 유쾌한  작품의 색상은 빨간색녹색파란색주황색노란색 톤의 넓은 영역에 대담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림 앞쪽에 있는  인물입니다. 흰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여자와 약혼자가 포옹을 하고 지중해 위에 떠 있습니다.  위에는  가족과 다산을 상징하는 녹색 새가 날아갑니다화사하고 싱그러운 꽃들이 두 사람을 축복하며 춤을 추는듯 합니다. 꽃들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요?   사람은 주변의 호화로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하며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함께 즐기고 있군요 아름다운 색채와 표현력으로 가득한  작품은 샤갈의 섬세하고 낭만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중해의 그림에 꽃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전 이태리의 제노아에서 몬테카를르, 니스, 칸느의 해변도로를 자동차로 여행했는데, 그 때가 2월이었는데도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지중해, 비취색 바다, 화려한 꽃! 샤갈이 지중해를 자신의 작품으로 옮겨놨습니다.

미국 망명에서 돌아 온 샤갈은 1950년대에 프랑스 남부 방스에 정착하여 사망할 때까지 지중해에서 작업을 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지중해는 그에게 삶의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는 자연의 더 없는 배경이 되었고 지중해를 통해 그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화려한 색깔 속에 하늘을 유영하는 연인들은 마냥 행복해보입니다.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도 자연의 혜택 속에서 행복했을 겁니다. 샤갈의 그림속 연인들, 하늘 위에 떠있거나 땅에 서있거나 정말 찰떡같이 붙어있군요.


샤갈은 러시아의 비테프스크에서 출생한 유대인 프랑스 화가입니다.

알프 마리팀 미술관장 장 미셸 포레이Jean Michel Foray는 러시아와 프랑스 두 문화권에 속한 샤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상, 서양의 지배적인 문화와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모색하는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그것은 서양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그곳의 문화적 특징을 받아들이되, 원래 자신이 속했던 곳의 문화를 여전히 존속시키기 위해 서양의 지배적인 문화코드들을 이용하고 전복하는 방법이었다.”


샤갈은 현대성을 구현하면서도 고향 비테프스크의 토속적인 문화를 잊지않고 자신의 그림에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그림 속엔 고향마을을 상징하는 둥근지붕, 가축 그런 것들이 등장하지요.

그의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의 출발점으로 평가되지만 샤갈은 동시대의 어떤 미술사조에도 몸담지 않은 가장 독창적이고 신비스러운 작품세계를 구현했습니다. 야수파의 강렬한 색채와 입체파의 새로운 공간개념에 영향을 받았고, 러시아의 민속적 주제와 유대인의 성서에서 영감을 얻어 낭만적이고 순수한 표현을 발전시켰습니다.

샤갈의 위대성은 20세기 세계 화단을 풍미했던 입체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아방가르드 미술의 흐름을 두루 소화해내되 이 모두를 넘어선 독창적 작품 세계를 이룩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샤갈의 생애에는 인종 박해, 이념 분쟁,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세계사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결코 그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환상적 세계처럼 화려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던 생애, 하지만 그 생을 버텨냈기에 자신만의 독창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나아가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공감을 일으키고 짙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샤갈은 그의 작품에 다채로운 색깔을 다 쏟다부었지요. 화려합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또 우울의 파란색이 작품 곳곳에 배경으로 깔려있습니다. 인생도 그런 색깔들의 혼합입니다. 화사한 색깔과 우울한 색깔이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까요.

70년을 해로한 93세의 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참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옆지기와 48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손잡고 갈 천운(?)이 우리에게도 있을지... 

매거진의 이전글 윌리엄 헨리 피스크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