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처음으로 조리 있게 거짓말을 했던 날,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몸집도 작고, 말도 배움도 첫째에 비해 느린 어수룩한 아이가, 어느덧 앞뒤가 맞는 거짓말을 꾸며 낼 만큼 자랐구나 싶은 애잔함도 함께였다. 생각은 속으로 삼키고, 거짓말을 꼭 집어 따끔하게 얘기해 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뭐든 곧이곧대로 인 첫째와 달리, 둘째는 눈치가 빠르고,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첫째는 엄마의 폭풍 같은 야단과 잔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둘째는 얼른 우산을 펼치거나 집 안으로 쏙 피해 폭풍우를 피한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니 첫째는 불만이 쌓여 엄마는 자기만 야단치고 동생에게는 관대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눈치껏 숙여 상황을 모면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얼른 꼬리 내리는 둘째는 확실히 덜 혼내게 된다. 자녀를 둘 이상 키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첫째와 둘째의 확연한 차이가 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맥락에서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과 성향 차이가 거짓말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첫째는 혼날지언정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인 내가 미처 모르는 사실까지 먼저 털어놓아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아이다. 그에 비해 둘째는 별 것 아닌 일에도 거짓말로 문제 상황을 피하려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습관이 되기 전에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제어장치를 정도는 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벼르다가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사건 자체는 별 것 아니었다. 온라인 과외 수업의 숙제를 선생님께는 받아썼다고 말하고 책에 동그라미만 해두는 일이 반복되었다. 숙제를 하지 않았던 오늘, 숙제 노트가 없어져서 숙제를 할 수 없었다는 아이의 말을 선생님은 눈감아 주셨겠지만 엄마인 나는 넘길 수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둘이 걸으며 슬그머니 숙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아, 노트에 적어야 하는 숙제를 왜 동그라미만 하는 거야? 선생님이 다 적었냐고 물어보실 때 적었다고 대답하잖아. 그래, 물론 동그라미는 했지. 그런데 동그라미는 숙제 노트에 적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 엄마가 보니까 오늘 숙제에도 동그라미 해 뒀던데? 그럼 숙제를 몰랐던 건 아니지? 그럼 거짓말인데. 거짓말 나쁜 줄 알면서 왜 하는 거야?”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눈물을 보이는 둘째는 울음이 터졌다.
“엄마도 어릴 때 거짓말하다가 외할머니한테 엄청 혼난 적 있거든.”
세상 제일 좋은 외할머니한테 혼났다는 얘기에 아들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왜? 엄마 무슨 거짓말했는데?
아마 지금 둘째랑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외출하면서 수학 문제지를 숙제로 내주고 나가셨는데 그 문제지는 2년 전 오빠가 받아보던 학습지였다. 오빠가 띄엄띄엄 푸는 바람에 새것이다 시피 한 문제지는 결국 내 차지가 되었는데, 하필 그 날 풀어야 할 장은 오빠가 이미 풀어놓은 부분이었다. 지우개로 지웠지만 답을 썼던 흔적은 그대로 보였고, 나는 푸는 둥 마는 둥 오빠 답을 베껴 적었다. 나중에 문제지를 검사하신 엄마는 그중 제일 어려웠던 마지막 문제를 풀어보게 하셨고, 결국 풀이 없이 답만 베껴 썼던 나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아들아, 엄마가 거짓말해보니까 말이야. 거짓말하다 들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혼나. 그냥 숙제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 더라니까. 좀 혼나기는 하겠지만, 거짓말이 드러나서 오늘처럼 민망할 필요도 없고, 거짓말을 숨기느라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 필요도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어른들 눈에는 다 보인다? 특히 엄마 눈에는 네가 하는 거짓말이 완전 다 보여.”
눈물은 간데없고, 엄마는 어떻게 거짓말을 알 수 있는지만 거듭 묻는 아들 녀석. 그래서 아이다.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나오지가 않았다. 대신, 살아보니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더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를 야단쳐야 하나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론은 화를 내고 야단치는 것이 거짓말을 멈추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거짓말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경험으로 깨달았고, 우리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아마 아이는 다시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드러나 당황스러운 순간을 거듭 맞닥 들이게 될 것이고, 거짓말을 감추느라 진땀 흘리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자라, 모르고 속고 알고도 모른 척 속아 주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솔직함이 최선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