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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Jan 09. 2021

거짓말도 보여요

  둘째가 처음으로 조리 있게 거짓말을 했던 날,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몸집도 작고, 말도 배움도 첫째에 비해 느린 어수룩한 아이가, 어느덧 앞뒤가 맞는 거짓말을 꾸며 낼 만큼 자랐구나 싶은 애잔함도 함께였다. 생각은 속으로 삼키고, 거짓말을 꼭 집어 따끔하게 얘기해 주었던 것은 물론이다.    



  뭐든 곧이곧대로 인 첫째와 달리, 둘째는 눈치가 빠르고,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래서 첫째는 엄마의 폭풍 같은 야단과 잔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둘째는 얼른 우산을 펼치거나 집 안으로 쏙 피해 폭풍우를 피한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니 첫째는 불만이 쌓여 엄마는 자기만 야단치고 동생에게는 관대하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첫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눈치껏 숙여 상황을 모면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얼른 꼬리 내리는 둘째는 확실히 덜 혼내게 된다. 자녀를 둘 이상 키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첫째와 둘째의 확연한 차이가 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드러난다. 



  같은 맥락에서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과 성향 차이가 거짓말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첫째는 혼날지언정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인 내가 미처 모르는 사실까지 먼저 털어놓아야 마음이 후련해지는 아이다. 그에 비해 둘째는 별 것 아닌 일에도 거짓말로 문제 상황을 피하려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습관이 되기 전에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제어장치를 정도는 심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벼르다가 잡은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사건 자체는 별 것 아니었다. 온라인 과외 수업의 숙제를 선생님께는 받아썼다고 말하고 책에 동그라미만 해두는 일이 반복되었다. 숙제를 하지 않았던 오늘, 숙제 노트가 없어져서 숙제를 할 수 없었다는 아이의 말을 선생님은 눈감아 주셨겠지만 엄마인 나는 넘길 수 없었다.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는 길, 둘이 걸으며 슬그머니 숙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아, 노트에 적어야 하는 숙제를 왜 동그라미만 하는 거야? 선생님이 다 적었냐고 물어보실 때 적었다고 대답하잖아. 그래, 물론 동그라미는 했지. 그런데 동그라미는 숙제 노트에 적는 거랑은 다른 거잖아. 엄마가 보니까 오늘 숙제에도 동그라미 해 뒀던데? 그럼 숙제를 몰랐던 건 아니지? 그럼 거짓말인데. 거짓말 나쁜 줄 알면서 왜 하는 거야?”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순간에 눈물을 보이는 둘째는 울음이 터졌다. 

 


  “엄마도 어릴 때 거짓말하다가 외할머니한테 엄청 혼난 적 있거든.”



  세상 제일 좋은 외할머니한테 혼났다는 얘기에 아들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왜? 엄마 무슨 거짓말했는데?



  아마 지금 둘째랑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외출하면서 수학 문제지를 숙제로 내주고  나가셨는데 그 문제지는 2년 전 오빠가 받아보던 학습지였다. 오빠가 띄엄띄엄 푸는 바람에 새것이다 시피 한 문제지는 결국 내 차지가 되었는데, 하필 그 날 풀어야 할 장은 오빠가 이미 풀어놓은 부분이었다. 지우개로 지웠지만 답을 썼던 흔적은 그대로 보였고, 나는 푸는 둥 마는 둥 오빠 답을 베껴 적었다. 나중에 문제지를 검사하신 엄마는 그중 제일 어려웠던 마지막 문제를 풀어보게 하셨고, 결국 풀이 없이 답만 베껴 썼던 나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났다. 



  “아들아, 엄마가 거짓말해보니까 말이야. 거짓말하다 들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혼나. 그냥 숙제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 더라니까. 좀 혼나기는 하겠지만, 거짓말이 드러나서 오늘처럼 민망할 필요도 없고, 거짓말을 숨기느라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 필요도 없으니 말이야.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어른들 눈에는 다 보인다? 특히 엄마 눈에는 네가 하는 거짓말이 완전 다 보여.”



  눈물은 간데없고, 엄마는 어떻게 거짓말을 알 수 있는지만 거듭 묻는 아들 녀석. 그래서 아이다.



  나는 여전히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나오지가 않았다. 대신, 살아보니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더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를 야단쳐야 하나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론은 화를 내고 야단치는 것이 거짓말을 멈추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거짓말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경험으로 깨달았고, 우리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아마 아이는 다시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드러나 당황스러운 순간을 거듭 맞닥 들이게 될 것이고, 거짓말을 감추느라 진땀 흘리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자라, 모르고 속고 알고도 모른 척 속아 주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솔직함이 최선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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