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11시 59분 50초. 카운트다운을 시작해. 10부터 거꾸로 세기 시작해 숫자가 줄어들수록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 3,2,1. Happy new year! 동영상에 담긴 한 해의 시작은 매번 같은 모습이구나. 아들아, 1월 1일은 새해의 첫날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한 해의 시작이 1월 1일은 아닌 것 같아. 학생들에게 1년은 3월에 시작해서 2월에 끝난다고 하는 게 더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어. 새로운 학년을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시점에 맞추어서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너는 2학년이 되어 처음 등교하는 오늘, 2021년의 진짜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네.
손잡고 학교 가는 길, 여태 씩씩하던 네가 긴장하는 게 눈에 보여. 네 머릿속은 지금 무슨 생각으로 가득하려나.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 무서우면 어쩌지? 축구할 시간은 주실까? 모르면 다시 물어보면 되고, 옆자리 친구를 따라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찬 네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아. 엄마에게도 너와 같은 두근거림으로 맞이한 열두 번의 3월이 있었거든.
사실 엄마는 낯선 얼굴로 가득 차 있는 교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야. 새로움에 대한 기대보다 적응할 걱정이 더 컸던 지난 학창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겠지. 학년이 올라가고 키가 자라도 어색함으로 가득한 3월의 교실은 익숙해지지가 않더라니까.
작은 등을 다 덮는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서는 아들아. 그런데, 정말 괜찮을 거야. 오늘은 낯선 모든 것들이 우리 선생님, 우리 교실, 우리 반 친구들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거든. 내일 교실을 들어서는 너는 이미 선생님의 얼굴과 네 자리를 알고 있을 테고 가방을 걸어야 할 곳과 사물함도 금세 찾을 수 있을 거야. 기억이 안 나는 것 같지만 다시 보면 옆자리 친구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걸. 어디 보자, 다음 주 화요일. 화요일이 되면 지금의 긴장과 서먹함은 사라지고 없을 거야. 왜 화요일이냐고? 주말 이틀을 쉬고 등교하는 월요일은 약간 어색하게 마련이거든. 그러니, 화요일. 엄마랑 내기해도 좋아.
너한테는 말 안 했는데 말이야. 사실은 엄마도 긴장돼. 새 교과서와 공책에 이름을 쓰고, 운동화와 실내화를 닦으면서 네가 어떤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 1년을 보내게 될까 궁금하고 떨렸어. 아직 어리고 서툴게만 보이는 네가 혼자서 잘할 수 있을까. 미로 같은 학교에서 교실은 잘 찾아갈 수 있을는지, 준비물이 없거나 미처 챙기지 못한 숙제가 있으면 당황해 울지는 않을는지. 너에게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 이만큼 몰려왔어. 그런데 엄마만큼 나이를 먹으면 알게 되는 것도 있단다.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거지. 신나는 날이 있으면 속상한 날도 있을 거고, 선생님께 칭찬받는 날도, 꾸중 듣고 우는 날도 있을 거야. 마음이 잘 맞는 좋은 친구가 있으면 장난꾸러기나 거짓말쟁이 친구도 만나게 될 테고. 분명한 건 그 모든 하루하루가 쌓여 너의 마음이 쑥 자라게 될 거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은 사라지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
이제 엄마가 해야 할 일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너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거겠지? 엄마 아빠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계에서 네가 보낼 하루와 많은 경험들을 공유하는 유일한 방법일 테고. 맛있는 급식 메뉴, 씩씩하게 발표하고 받은 칭찬, 친구랑 다퉈서 속상한 마음, 달리다 넘어져서 피가 났지만 울지 않고 일어난 이야기까지 모두. 이제 엄마는 네 세상을 마음으로 동행할 거야.
엄마는 달력이 없어도 3월이 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겨울 추위가 잦아들고 움츠렸던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면 달리기를 시작해 볼까, 놓은 지 오래인 영어 책을 다시 펴볼까 싶어 지거든. 그때가 어김없이 2월 말 즈음이야. 어쩌면 몸이 먼저 봄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물론 네가 학교에 가면 몇 시간이나마 혼자만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도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어 지는 이유이기도 하지. 섭섭해하지는 마. 엄마로서의 하루도 좋지만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이른 봄(필명)으로서의 시간도 꼭 필요한 법이니까.
각자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또 반갑게 만나자꾸나. 너의 새로운 시작을 온 마음으로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