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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29. 2020

돈,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민감한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사실 저는 돈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돈돈 한다고 더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다고 뾰족한 해결방법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싫었거든요. 물론 나이가 들면서 돈과 경제 공부에 소홀해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재에 어둡고, 아끼는 것보다 쓰는 것을 잘하는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과소비를 하거나 명품과 고가의 물건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형편도 아니고요.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던 20대 초반에는 명품을 사기도 했어요. 다들 들고 다니는 루이뷔통 가방이며 샤넬 로고가 박힌 화장품도 좋아했고요. 지금은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 하나를 1년 내내 사용하고 있지만 간혹 눈이 가는 신상백이 예뻐 보이기는 할지언정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극적인 변화의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거운 가방과 거추장스러운 옷이며 장신구가 필요 없었고 보여줄 사람은 아이들 들고 갈 곳은 유치원 픽업인데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기간이 길었어요. 또 비싼 가방이며 신발을 사고 그 만족감이 채 며칠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았어요. 물질이 줄 수 있는 만족은 찰나고, 그것은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비싸고 화려한 물건들이 나를 대변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면을 채우지 않으면 그 공허는 벌킨백으로도 메꿀 수 없다고 결론짓게 되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경제상황에 맞춘 합리화일지도 몰라요.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면 천만 원이 훨씬 넘는 가방이 사고 싶어 질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런데 집은 넓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어지르지 않는, 내 물건으로 채워진 방을 갖고 싶거든요. 굳이 산책을 가거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을 사고, 장을 볼 때 이번 달 카드 값과 집안 행사에 필요한 금액을 고민하며 주저하고 싶지 않아요. 유난히 행사와 생일이 몰려있는 5월을 위해 돈을 모으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전복이며 한우 등심을 마음껏 사는 그런 날이 올까요? 그렇지요, 명품백이 필요하지 않다고 돈 욕심이 끝날 수야 있나요. 저의 돈에 대한 욕망과 소비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은 제 소관입니다만, 같은 고민거리를 마주한 아이들에게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걸까요.            



  그러던 오늘, 언제가 올 거라고 생각만 했던 날이 진짜 오고야 말았습니다. zoom 수업을 마친 딸이 풀이 죽어 울상이 되었습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들을 때는 몰랐는데, 장기자랑을 하느라 컴퓨터 화면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오늘, 반 친구들의 집을 보게 되었나 봅니다. 집이 100평은 되어 보이는 아이, 호텔 같은 곳에 사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많더래요. 우리도 그런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우린 차도 없는데 벤츠나 bmw를 사면 안 되겠냐고 불평을 합니다.      



  꼭 나누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 표정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비싸서가 아니라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주지 않았던 인형이며 레고 세트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내야 하니까요.      

“딸아, 너는 오늘이었구나. 엄마도 그 날이 생각나. 놀러 갔던 친구네 집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 눈이 휘둥그레졌던 그 날 말이야. 그 아이 방은 우리 집 거실보다도 넓었고, 어머니가 주부였지만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가 따로 있었어. 하긴 그러고 보니 매일 학교로 픽업 오는 운전기사 아저씨도 계셨네. 놀라움인지 부러움인지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묘한 기분으로 집에 오는 길이 굉장히 멀었던 것 같아. 아마 마음이 복잡해서 그랬을 거야.     



  부러운 건 당연한 거야. 괜찮아. 그런데 억울하다거나 속상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는 다른 출발선 위에 서 있다는 걸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행복해지는 게 너무 힘들거든. 출발선이 다른데 같이 뛰면 어떻게 하냐고? 불공평하다고? 걱정 마. 인생이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뛰는 게 아니거든. 각자의 행복을 찾아,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니까 출발선이 어디라도 상관없단다.      



  딸아. 엄마는 너를 100평 집에 살게 해 줄 수 없고, 몇 억짜리 차도 태워줄 수 없지만 그게 미안하지는 않아.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할 것이고, 네가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너의 꿈을 향해 가는 모든 길을 응원하고 지원할 거야. 엄마의 최선을 다해서 말이야. 혹 엄마의 최선이 네게 부족하다 느껴지고 속상한 순간이 올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엄마는 이해해. 그래도 우리의 출발선을 받아들이고, 네 삶의 방향과 속도를 찾아야 한다는 건 잊지 않기를 바라. 엄마의 위안을 위해서가 아니고, 너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해줬어요. 다행히 한참 생각하던 아이는 기분이 좋아졌다고,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웃어줍니다. 그리고 덧붙였어요. 그래도 넓은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자기도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보태겠답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던 있었습니다. 제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전부였고요. 다만 아이에게 한 말이 거짓 포장이나 위로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과 비교하면서 불행해지지 않으며, 나에게 맞는 방향과 속도로 걸으며 행복을 찾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요. 오늘 나의 말이 설사 현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엄마로서 나의 최선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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