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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31. 2020

둘째야, 너도잘할수 있어

  우리는 태어나면서 가족 안에서 출생 순서에 따른 특별한 위치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딸 아들이라는 성별에 따른 별칭 외에도 첫째, 둘째, 막내라는 또 다른 타이틀로 불립니다.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 유형을 구분한 아들러의 주장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아이 둘을 키워보니 경험적인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를 낳고 키울 때는 당연히 그 아이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어요. 육아책자가 알려주는 월령에 맞춰 이유식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적정 시기와 아이의 관심에 따라 명작 동화며 자연관찰, 과학전집까지 구비해 주었어요. 그런 과정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 평가하기는 힘들겠지요. 아이의 성격은 저의 양육 방식과 아이의 기질 같은 변인들이 섞여 복합적으로 형성되었을 테니까요. 큰 딸은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이 말도 일찍 하고, 글도 수월하게 익혔어요. 이해가 빠르고 승부욕과 책임감이 강하지만 상당히 예민합니다.      



  반면, 둘째 아들을 키우는 것은 모든 면에서 달랐어요. 일단 꽃무늬 가득한 누나의 옷을 물려 입은 것은 물론이고, 이유식도 느낌대로 대충 해 먹였어요. 정신이 없기도 했고, 특정 음식을 두어 달 일찍 먹거나 늦게 접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돌이 되기 전에 이미 후라이드 치킨을 영접했으니 먹거리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이나 장난감 역시 연령이나 취향과는 무관하게 모든 종류에 한꺼번에 노출된 것은 물론입니다.     


 

  때로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살 터울인 첫째도 아직 아기였기 때문에 신생아인 둘째의 울음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고, 낮잠이며 놀이도 첫째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부족했거든요. 오죽하면 엄마들이 둘째는 발로 키우고, 셋째는 눈빛으로 키운다는 말을 할까요. 그건 둘째, 셋째의 육아가 쉬워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아이들에게 닿는 손길과 관심이 첫째에 비해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첫째에 비해 둘째 아들은 많은 둘째들이 그렇듯 모든 면에 둥글둥글하고 사교적입니다. 그렇지만 말도 느리고, 한글도 7세 중반이 되어서야 떼는 바람에 아빠를 걱정 시키키도 했어요. 저는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배울 것들이야 별 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이었습니다. 누나와 남동생의 조합인 데다 느린 남자 아이다 보니 당연히 어떤 것도 누나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하다못해 몸을 쓰는 줄넘기까지 누나와 비슷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요. 어느새 아들은 “나는 잘 못하잖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이때쯤 되니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르다는 엄마 아빠의 설명은 아이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동생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일삼는 큰 아이의 태도도 문제였고요.     


  변화의 계기는 생각지 못한 데서 찾아왔습니다. 해외 체류 중이다 보니 입맛에 맞는 피아노 학원을 고르기가 힘들어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께 큰 아이 1시간에 둘째 30분 레슨을 부탁드렸고, 둘 다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거라 동일한 책으로 진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 두 달은 언제나 그랬듯이 큰 아이가 둘째보다 앞서가는 듯했어요. 그런데 큰 아이는 숙제만 끝나면 피아노를 쳐다보지도 않는데 둘째는 틈만 나면 피아노 앞에 가 앉고, 제가 치던 악보를 기웃거립니다. 진도가 슬슬 벌어지더니 나중에는 레슨 시간도 역전되어 둘째가 훨씬 오래 수업을 받게 됩니다. 큰 아이가 보기에도 둘째의 실력이 월등히 빨리 느는 것이 보였나 봐요. 네가 나보다 잘하는 게 있을 리 없다는 뉘앙스를 담은 질투가 폭발하는 시기를 지나 인정의 단계를 맞게 됩니다. 몇 달에 걸친 그 과정에서 아들은 자신감을 얻었어요. 피아노를 잘 친다는 칭찬에 더해 누나보다 더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한 무기가 된 것이 확실합니다. 큰 아이의 태도도 변했어요. 그래, 너는 피아노를 잘 치고 나는 바이올린을 잘해와 같은 말을 통해 동생을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피아노 외의 부분에서는 여전합니다만.      



  아이의 성격 형성에 출생 순서에 따른 영향까지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큰 아이는 동생이 생기면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나뉘는데서 오는 상실감을 느끼게 되고, 동생은 태생부터 경쟁의 위치에 놓였으니 애교나 배려와 같은 무기를 장착할 수밖에요. 여기에 아이들의 태생적 기질과 재능, 학습의 결과들이 더해지면 부모가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너무 많아집니다.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지만 성별도 성격도 장점도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참 쉽지 않아요. 한 아이에게는 득이 되는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른 아이에게는 독이 되기도 하고, 또 부모의 다른 대응을 아이들은 차별이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거기다 아이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을 중재하면서 둘 모두에게 바람직한 결론을 지어주는 것도 어렵습니다. 둘째의 자신감은 피아노를 동시에 가르치면서 운 좋게 한 고비 넘긴 듯하지만, 문제는 다시 찾아오겠지요. 육아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지만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엄마의 대처가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쯤은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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