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른봄 Jan 07. 2021

엄마도 칭찬이 필요해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몇 년간 통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밤중에도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고, 이유 없이 우는 아이를 안고 불빛 없는 거실을 서성여야 했다. 남편이 있고, 급할 땐 엄마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으니 몸이 힘들고 체력이 바닥나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나를 잃어가며 찾아오는 우울감은 해결 방법을 알지만 해결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에게는 하루 종일 내가 필요했다.      



  둘째가 두 돌이 되기 전,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할 것 같은 딸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안타까움 어린 조언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대학 캠퍼스는 낯설었지만 설레었다. 아이들을 두고 혼자 나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발걸음을 뗀다는 자체가 나를 들뜨게 했다.      

사람들 앞에 숱하게 서야 하는 일을 몇 년씩 했음에도 첫 학기 첫 번째 발표를 앞두고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원서를 번역하고, 간결하면서 빈틈없는 발표 자료를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고,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레이저 포인터를 꽉 쥔 채로 발표를 마쳤다. 교수님께 받은 칭찬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두고두고 그 날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된 이후 4-5년 동안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육아와 가사란 그런 것이다. 나는 실무자이면서 관리자여야 하므로 직접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나, 그 수준과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나였다. 타인의 시선이라면 아이들이 있지만, 아이들은 무한한 웃음과 사랑을 담아 언제나 A+만을 주는 존재들이니 평가자로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남에게 내 능력을 평가받는 과정은 불편하고 긴장되지만 평가를 통한 인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정 욕은 심리적 욕구로 생리적 욕구에 우선할 수 없지만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에 심리적인 욕구까지 채워졌을 때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진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엄마로서의 삶은 생리적 욕구만 충족시키고 살기에도 너무 바쁘고 힘든 일이었다.      



  아마 그 발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선택했고, 학문적 성취와는 무관한 깨달음을 얻었다. 교수님은 논문 지도 과정에서 나에게 언제나 잘하고 있다,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단 한 번도 이건 별로다, 이렇게 해서 되겠냐는 투의 지적을 하지 않으셨다.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몇 년씩 엄마로만 살면서 감 떨어진 내가 진짜 잘하기만 했을 리 없다. 교수님은 칭찬을 통해 내가 스스로를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계속 부채질하셨다고 생각한다. A는 이런이런 부분이 좋고, B도 저러저러하게 잘했다 C도 나쁘지는 않지만 D나 E 같은 방법도 있으니 시도해 봐라. 지도 교수님이 주로 하신 말씀의 패턴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말이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에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논문은 석사 학위와 별개로 내가 얼마나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육아기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것은 채워지지 않는 타인의 인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자기 합리화를 시켜보아도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믿음과 확신은 외부로부터 올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아이는 오늘도 묻는다. 엄마 이 그림 어때, 잘 그렸지? 엄마 나 받아쓰기 다 맞았어, 잘했지? 아이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재워주지 않아도 스스로 잠을 청한 지 오래다.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식욕과 수면욕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엄마가 해주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아이의 심리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와 친구와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의 능력과 수준을 인정받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더 성장해 갈 것이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부모가 먼저 아이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엄마, 나 수학 잘해?라고 묻는 아이에게 잘 하긴, 자꾸 실수하잖아. 그리고 잘하는 아이들 엄청 많아 라고 대답하지 말자. 그럼, 잘하고 있지, 분수는 굉장히 어려운 개념인데 잘 이해했고, 어려운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훌륭한 자세야. 그런데 계산 실수가 자꾸 생기면 아까우니까 천천히 풀면 좋을 것 같아라고 대답해주는 건 어떨까. 

이전 09화 나도 아이랍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