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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Dec 11. 2020

당신 마음을 위한 루테인은 챙기셨나요?

  저의 나안 시력은 대략 0.4-0.5 정도입니다. 세상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데 교정 없이 일상생활은 가능한 정도라 안경 없이 살고 있어요. 가끔 렌즈를 사용했던 곳은 극장, 아끼는 가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보고 싶은 콘서트장 정도가 전부였어요. 대학 졸업 후 칠판을 보며 강의를 듣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는데 저의 20대가 얼마나 비학구적 시간으로 채워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근시로 인한 애매한 시력과 렌즈 사용의 귀찮음을 극복할 의지가 결여된 게으름의 콜라보는 장장 15년을 버텨냈습니다. 더러운 세상 무엇을 그렇게 또렷하고 완벽하게 보려느냐 하는 냉소적인 핑계는 후에 그럴싸하게 덧붙여 본 것이고요. 


     

  시력 저하는 성장의 일환이라더니 정말이지 직장인이 된 후부터는 시력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알고 보면 노화의 시작이었던 셈인데 그 시절엔 나빠지지도 않는 시력 따위가 안중에 있었을 리 없죠. 스물대여섯, 서른두셋은 신체적 노화를 실감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변화를 느꼈다 한들 그것을 나이와 연관 지어 신경 쓰기에는 너무 푸릇한 때잖아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아니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좀 더 오래전부터 종종 김이 서린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이고는 했어요. 계속 그랬다면 바로 검사를 받았을 텐데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나타나는 증상이니 또 그냥 살게 되더라고요. 치명적이지 않은 일상의 문제들이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처럼요. 노안이 오려나, 루테인을 먹어볼까, 설마 백내장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아직 그런 나이는 아니잖아 정도의 가벼운 염려가 따라붙기는 했지만요.



  미뤄 두었던 두 아이의 시력검사도 한꺼번에 해치울 겸 셋이 나란히 안과에 들렀습니다. 엉덩이만 붙였다 옆으로 옮기기를 몇 번, 병원에 일렬로 구비된 기기를 모두 동원하여 검사를 받고, 나이가 지긋한 의사의 진료까지 마치고 받은 진단명은 근시입니다. 다행히 허무했어요. 안경을 끼면 증상이 덜하겠냐는 질문에 필요 없다는 대답은 건조하고 무성의했는데 그의 태도에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따로 할 것은 없으니 6개월에 한 번씩 검진만 받으라는 처방은 흘려듣기로 했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루테인을 주문합니다. 아스타잔틴이 들어 있어야 더 효과가 있다니 해당 성분 포함 여부를 꼼꼼히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의사는 근시로 진단했지만 저는 제 상태를 노안의 전조증상이라 확신하고 노안 예방을 위한 루테인 종류를 검색, 비교, 결제하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끝내 버립니다. 루테인을 먹는다고 예방이 되겠어, 에이 영양제 먹어서 해가 될 건 없잖아 라는 다분히 비전문가적 태도로요. 이튿날 문 밖에는 루테인 몇 통이 해도 뜨기 전부터 저를 기다립니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영양제를 먹습니다. 연령과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넘어가는 사람이라면 두세 가지는 기본으로 챙기는 듯싶어요. 영양제에 관심이 많거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목록은 훨씬 길어질 테고요. 잠옷 바람으로 택배를 뜯어 루테인 한 알을 삼키며 생각합니다. 장 건강을 위한 유산균은 필수, 눈을 위한 루테인, 뇌 건강을 위한 오메가 3, 골다공증 예방을 위한 칼슘과 비타민 D 등등. 흔하게 듣는 영양제 종류는 아직 한참 더 나열할 수 있어요. 그것들을 다 챙겨 먹으면 정말 아프지 않고, 나이 들지 않을 수 있으려나요.      



  영양제 한 움큼을 삼키며 매일을 시작하는 우리, 마음의 노화를 늦추기 위해서 또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하고 있나요. 마음이 설레서 가만 앉아 있기 힘든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어요. 호기심이 줄어 궁금한 것이 없어지고, 세상만사 원래 그런 거라며 냉소를 띄는 일이 잦아집니다. 주말이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고, 뭘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맛있고 신나지 않아요. 때로는 감당 못할 스트레스에 딱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마음도 나이 들고 지칩니다. 아플 때도 있고요.      



  나라는 존재는 결국 몸과 마음의 합(合) 일 텐데 건강을 위한 노력과 에너지를 몸에만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둘 모두 건강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요. 몸과 마음의 노화도 적절히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더 편안한 모습으로 늙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몸이 아픈 것도 싫지만 마음만 먼저 시들어 무엇에도 감응하지 못하는 시큰둥한 할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너무 늦기 전에 마음을 위한 영양제를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렇지만 ‘눈에는 루테인’ 같은 정답이 없으니 내 마음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될 것들을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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