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온이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지난 열흘은 날씨가 너무 추웠지요. 저는 남들 다 하는 운전을 못해 뚜벅이 생활을 하는 중인데요. 매서운 바람이야 옷을 겹겹이 입고, 목도리와 장갑까지 무장하면 어느 정도 견딜 만한데, 날씨가 추우니 아쉬운 점이 있어요. 바로, 걸으면서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아이들과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걸어 다닐 일이 많지 않았어요. 시골에 내려와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라는 새로운 일과가 생겼습니다. 혼자 유유자적하게 걸으면서 음악을 듣고,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라도 하고 싶은데 날씨가 너무 추우니 주머니에서 손을 꺼낼 수가 없어요. 장갑을 꼈는데도 손끝으로 스미는 바람이 따갑습니다. 장갑을 벗고 전화를 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지만 바람 소리에 무슨 말을 하는지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어요. 참, 귀도리도 하고 있네요. 캡틴 아메리카가 크게 그려진 아들 것이지만 귀가 너무 시려 부끄러움도 잊었습니다.
오늘, 드디어 기온이 확 올랐습니다. 조심조심 디뎌야 했던 응달에 쌓인 눈이 녹아 흐릅니다. 혼자 걷는 오후,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너무 오랜만에 듣는 친구 목소리는 살짝 낯설었어요. 모두 카톡으로 인사며 소식을 전하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이지만 목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따뜻함은 변함없습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생일을 맞은 날, 모르는 한국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딸아이와 대화 끝에 마음이 상해 잔소리를 퍼붓고 있던 중이었지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몇 년 만에 통화하는 대학 친구였습니다.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생일을 축하해주었어요. 한 1,20분 동안 얼마나 신나게 수다를 떨었는지 모릅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딸아이가 엄마는 친구랑 전화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 하고 묻습니다. 카톡으로 주고받았다면 절대, 전혀 전해지지 못했을 느낌이 분명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전화하는 사람이다. 해외에서 핸드폰을 두어 번 바꾸고, 귀국해 한국 핸드폰을 다시 만들면서 남아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어요. 사실 카톡에는 아는 사람 모두가 리스트업 되어 있으니 특별히 전화번호를 다시 알리고 받는 과정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전화번호 없이도 불편함이 없었고요. 달리 말하면 전화통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생각해보니 지난 1주일 동안 통화한 사람들 중 혈연관계를 제외한 사람은 아이들 학원 선생님이 전부인 것 같네요. 그 외 지인들과 주고받은 연락은 100%가 카톡 메시지입니다. 그마저도 바빠지면 뜸하고요.
안부를 묻고, 고민과 걱정을 나누고, 축하의 마음을 전하지만 문자(文子)로는 우리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물결 표시며 웃는 표시를 달고, 온갖 이모티콘을 첨부해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이나 흥분 같은 격앙된 감정을 전부 전달할 수는 없지요. 부지런히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지만, 우리는 문자로 전해오는 반감된 희로애락만을 공유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오가는 친구들의 카톡을 살아있니 정도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안부 카톡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것일까요.
카톡의 편리함을 요긴하게 이용하되, 가까운 사람들과 가끔씩은 통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네가 생각났다, 보고 싶다 간지럽게 말하지 않아도 가볍게 흥분된 목소리로 모두 전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보다 더 따뜻할 내일 오후, 한가한 시간이 저와 딱 맞아떨어질 친구는 누구일지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