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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봄 Jan 11. 2021

나이트 죽돌이는 아무나 되나

  90년대 후반은 HOT와 젝스키스의 팬덤이 양분화되었던 시기다. 교실 안에서 같은 가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절친이 되기도 하고, 반대의 이유로 물리적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응답하라 1997>에서 두 팬덤이 맞붙었던 장면은 결코 허구가 아니었다.      



  당시 음악방송 장면이나 연말 시상식 화면을 보면 세상에 가수가 두 팀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같은 색 우비와 풍선을 들고 좋아하는 가수를 온몸으로 응원하는 그녀들의 뜨거움은 대단했다. 그러나 가요계에는 내가 좋아한 전람회도, 더 이상 한국에서 만날 수 없는 유승준도, 탤런트만큼이나 잘생겼던 김원준도 있었다. 두 거대한 팬덤 사이에 가려져 있었을 뿐.     



  나는 전람회를 좋아했다. 두 사람의 목소리, 가사, 멜로디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들이 명문대 학생들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공부도 음악도 모두 잘 해낸 듯한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더 그럴듯한 사람인 것 같은 유치한 우월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노래만 들었지, 라디오 공개방송을 찾아가거나 콘서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스케치북(당시에는 어떤 방송이었는지 모르겠다)이나 수요음악회에 전람회가 출연하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다렸던 기억이 전부다. 물론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HOT의 팬이었던 친구들은 부모님 몰래 서울행을 감행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꼭 거리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당시에도 나는 궁금했다. 앨범 발매일이면 레코드 가게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고, 앞자리에 앉기 위해 공연장 앞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우리 오빠들을 욕하는 사람과는 어떤 맞짱도 불사하는 그녀들의 열성은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관심과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만나면 누구든지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친 듯이 사랑하고, 밤새워 춤을 추고, 누가 뭐래도 끝을 보고야 마는 그런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만사에 미적지근한 것은 아직 그 상대를 찾지 못했을 뿐, 때를 만나면 무섭게 빠져들어 하얗게 불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누구나 나이트에 출근도장을 찍고, 나이트 죽돌이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일에도 미칠 수 있다. 포커스가 맞춰진 한 대상에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전부 쏟아부어 한 시절을 보낸 사람은 후에 다른 대상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반면 나는 공부도, 사랑도, 취미 생활도 그저 그런 온도로 밖에 끓이지 못했다.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슬프고, 그냥저냥 열심히 일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감정을 주고받는 나는 무엇에도 미칠 수 없었다. 특정한 타입의 사람이 더 성공한다거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제와 내가 갖지 못한 특성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일찍 알았더라면, 열정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과 기다림으로 시간을 흘려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이로드롭과 같은 짜릿함은 없지만 대관람차를 타고 편안히 둘러보는 것도 놀이공원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문득 그 시절, HOT와 젝스키스에 열렬히 환호하던 그녀들은 또 무엇에 미쳐서 살았는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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