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사직의 다섯 얼굴

당신의 ‘조용한 사직’은 어떤 유형인가요

by 테오

소명, 일터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 제1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image.png 출처: Gemini로 저자 제작



“저 친구는 왜 항상 칼퇴하는 거야?”
“00 매니저님, 회의 때 아무 말도 안 하던데, 무슨 일 있어요?”
“요즘 왜 그렇게 의욕이 없어 보이세요?”


직장에서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비슷합니다.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유는 사람마다 전혀 다릅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조용한 사직이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일과 조직으로부터 조용히 물러나는 존재론적 현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 합니다. 조용한 사직에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그 사람을 움직이는 상처와 체념과 거리두기의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같은 침묵, 왜 이유는 다를까


2018년 봄, 저는 H그룹 인사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구매본부 협력사 교육 업무에서 시작해서, 직원 교육과 연수원 수립 업무까지 담당하다가, 그룹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대체로 설렘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인사실에서의 첫발은 제게 다른 종류의 긴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룹 내 모든 계열사의 조직문화 진단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 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제 앞에는 10년 동안 누적된 20만 명의 응답 데이터가 놓였습니다. 방대한 숫자와 생생한 텍스트가 뒤섞인 그 자료들을 다양한 도구와 방법론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이 작업은 직장을 옮긴 지금까지도 제 연구의 핵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흥미로운 패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직에서 마음이 떠난 이른바 ‘이탈’ 상태의 직원들이 보이는 모습이 결코 단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데이터상으로는 같은 범주로 묶여 있었지만, 그들의 실제 반응 형태는 놀라울 만큼 달랐습니다


. 누군가는 칼같이 정시 퇴근만 고수했고, 누군가는 회의에 참석하되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회사의 가치와 내 가치가 맞지 않는다”고 직접적으로 적어 낸 사람도 있었고, 승진이나 교육 기회에 아예 무관심해진 사람도 있었으며, 동료와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단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컨대, 직원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업무에서 마음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 현상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박사 과정에서 이 주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날의 데이터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용한 사직은 결코 하나의 표정이 아닙니다. 제 연구에 따르면, 그것은 적어도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1]


image.png 출처: Gemini로 저자 제작



다섯 얼굴


현장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선행연구를 종합해 제 연구에서는 조용한 사직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 이 유형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한 사람 안에서 겹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주된 양상을 구분해 보면, 그 사람이 왜 조용히 물러나고 있는지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첫 번째 얼굴은 '시간 경계형'입니다.

정해진 근무 시간 내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고, 추가적인 시간 외 노동이나 연장 근로를 거부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9 to 5’ 원칙을 강하게 지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과 삶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집니다. 이 유형에게 “오늘만 조금 더 남아줄 수 있을까요?”라는 말은 협조 요청이 아니라 경계 침범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단지 워라밸을 중시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경계 설정과 시간 경계형 조용한 사직은 같지 않습니다. 핵심적인 차이는 행동이 아니라 동기에 있습니다.


건강한 경계 설정은 삶의 여러 영역을 균형 있게 지키려는 선택입니다. 반면 시간 경계형 조용한 사직은 일 자체에 더 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입니다. 같은 퇴근이라도, 한쪽은 건강한 조절이고 다른 한쪽은 심리적 철수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얼굴은 '형식적 참여형'입니다.

회의와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만, 정서적으로나 인지적으로는 이미 한 발 물러난 상태입니다. 자리에 앉아 있고, 고개를 끄덕이고, 필요한 대답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몰입은 없습니다. 이 유형은 조직 안에서 가장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되 기여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됩니다. 말은 남아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얼굴은 '가치 분리형'입니다.

조직의 비전과 방향에 공감하지 못하고, 일을 단지 생계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직업을 ‘의미의 장’이 아니라 ‘거래의 장’으로 경험합니다. “월급만큼만 일하겠다”는 말은 종종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정의를 다시 내린 결과입니다. 그 말의 이면에는 “이 조직이 추구하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는 깊은 괴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효재 목사님은 「일과사랑」에서 직장생활이 고달픈 이유 가운데 하나를, 자신이 하는 일에서 신앙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데서 찾습니다. [2] 일이 부르심이 아니라 소모로 느껴질 때, 사람은 가장 먼저 마음을 철수시킵니다. 가치 분리형의 중심에는 바로 이 ‘의미의 단절’이 놓여 있습니다.


네 번째 얼굴은 '성장 포기형'입니다.

역량 개발, 승진, 새로운 도전과 같은 성장 기회를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유형입니다. 이 유형을 단순히 의욕이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오히려 한때 누구보다 열심히 해보려 했던 사람이 반복된 좌절 끝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더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 문장이 성장 포기형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Herzberg(1968)의 동기-위생 이론에 따르면, 성취감과 인정, 성장 기회와 같은 요소는 내재적 동기를 움직이는 핵심 요인입니다 [3]. 조직이 이런 요소를 제공하지 못하면, 사람은 일에서 의미를 잃고 점차 몰입을 거둡니다. 성장이 멈추는 순간, 기대도 함께 멈춥니다.


다섯 번째 얼굴은 '관계 최소화형'입니다.

동료, 상사, 고객과의 관계를 최소한의 업무 수준으로만 유지하려는 유형입니다. 이들은 불필요한 상호작용을 피합니다. 때로는 감정 노동으로 인한 피로 때문이고, 때로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방어 전략이기도 합니다. 점심 제안을 반복해서 거절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팀 회식에 늘 빠지고, 메신저 대화도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쉽게 ‘비사교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계에 투자할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특히 원격근무 환경에서는 이런 양상이 더 뚜렷해지기 쉽습니다. [4] 관계가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는, 관계를 줄이는 일이 더 자연스럽고 더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조용한 사직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디에 가까우신가요? 아래와 같이 조금 더 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image.png 출처: 저자 작성

간단한 자가진단도 가능합니다.

최근의 당신이 아래 문장 가운데 어디에 가장 가까운지 잠시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정해진 시간 이상은 절대 쓰고 싶지 않다.”

“회의에 앉아는 있지만, 사실 아무 생각도 없다.”

“이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다.”

“배워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하나만 해당될 수도 있고, 여러 개가 동시에 겹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형을 맞히는 일이 아닙니다. 진단을 통해 지금 내 마음이 어떤 방식으로 일터에서 멀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1]. 한 사람 안에서 여러 유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경계형으로 시작한 사람이 점차 형식적 참여형으로 이동하고, 결국 가치 분리형으로 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가치 분리를 먼저 경험한 사람이 관계 최소화와 성장 포기로 확산되기도 합니다.


조용한 사직은 단일한 사건이 아닙니다. 개인, 조직, 사회 차원에서 발생하는 여러 압력이 겹치며 나타나는 복합적 현상입니다 [1]. 그래서 겉으로 같은 행동을 보인다고 해서, 같은 처방을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칼퇴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이유로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조직은 사람을 오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더 깊이 침묵하게 됩니다.




숫자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


조직문화 진단 데이터를 다루며 제게는 한 가지 습관이 생겼습니다. 바로 무미건조한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가령, 5점 만점에 2.1점을 기록한 부서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데이터의 언어로는 그저 ‘문제 부서’일 뿐이지만, 현실의 언어로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두려운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텍스트 감성 분석을 돌려보면 “소통 부재”, “일방적 지시”, “성과만 강조”, “인정 없음”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쏟아집니다. 화면에 뜬 그 단어 하나하나가 제게는 누군가의 깊은 한숨이자, 지친 퇴근길의 무거운 침묵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숫자와 텍스트를 헤집다 보니, 비로소 앞서 언급한 이탈의 ‘다섯 가지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6시 정각에 컴퓨터를 끄고 일어나는 사람에게 정시 퇴근은 단순한 워라밸이 아니라, 소진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패일지 모릅니다. 회의에서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의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체념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딱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냉소 이면에는 ‘조직이 나를 대하는 수준에만 맞추겠다’는 상처 입은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또한, 교육이나 연수를 신청하지 않는 것은 배움이 싫어서가 아니라 ‘배워봤자 이 조직에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이미 뼈저리게 학습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매번 점심을 혼자 먹는 사람 역시 단지 내향적인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조직 내 관계 유지에 쏟을 심리적 에너지가 이미 완전히 고갈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는 이처럼 각기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이탈 위험군’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무심히 묶어버립니다. 그러나 개인의 핵심 가치와 조직 문화 사이의 틈새가 벌어질수록 직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이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Verquer 등(2003)의 연구 결과처럼, 조직과 개인의 엇갈림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5].


결국 숫자를 읽는다는 것은 그 너머의 사람을 읽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같은 침묵과 같은 점수 안에도 저마다의 완전히 다른 고단한 이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세속 직업’은 정말 고달픈 것인가


이효재 목사님은 「일과사랑」 제2장에서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 그리고 왜 직장생활을 쉽게 고달픈 것으로 느끼는지를 신학적으로 성찰합니다 [2]. 많은 그리스도인이 직장생활을 피곤한 것,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조용한 사직의 다섯 가지 유형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이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그는 먼저 마음부터 물립니다.


시간 경계형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줄 이유가 없다.”


형식적 참여형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까지 줄 필요는 없다.”


가치 분리형은 더 직접적입니다.

“이 조직의 가치와 내 삶의 가치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성장 포기형은 체념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관계 최소화형은 관계의 끈부터 느슨하게 풀어버립니다.

“이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다섯 유형은 달라 보이지만,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모두 ‘의미의 상실’이라는 한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일터가 더 이상 부르심의 장소로 느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떠나기 시작합니다.


이효재 목사님이 말하듯,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생명이 함께 살아가고 번성하는 자리이며, 일터 역시 그 질서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2] 그렇다면 조용한 사직은 단순한 태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자리에서 부르심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상태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게을러졌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더 이상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할 언어를 잃었다는 데 있습니다.





회복은 진단에서 시작된다


이제 다시 당신에게 질문을 돌려보겠습니다. 당신의 조용한 사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정해진 시간만 지키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멀리 떠나 있으신가요?

조직의 가치와 내 가치가 다르다고 느끼시나요?

더 배우고 성장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과 연결될 기운 자체가 남아 있지 않으신가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겹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멀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일입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먼저 묻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이 질문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조용한 사직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조용한 사직은 어떤 얼굴인가. 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이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퇴근길이나 내일 출근길에, 또는 기도하는 시간에, 이 질문을 조용히 품어보시면 어떨까요?


image.png 출처: Gemini로 저자 제작


다음 글에서는 ‘팬데믹이 바꾼 것, 세대가 바꾼 것’이라는 주제로, 조용한 사직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이토록 빠르게 확산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왜 지금,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회적 맥락을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References

[1] Kim, K. T. (2025). 조용한 사직과 소명 상실: 조직이론과 기독교 소명 개념의 통합적 고찰. 신앙과 학문, 30(3), 5-38. Table 2 참조. (원자료: Dutta et al., 2024; Moisoglou et al., 2025; Anand et al., 2023; Raza et al., 2023; Serenko, 2023)

[2] 이효재. (2024). 일과 사랑.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제2장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참조.

[3] Herzberg, F. (1968). One more time: How do you motivate employees? Harvard Business Review, 46(1), 53-62.

[4] Shirmohammadi, M., Au, W. C., & Beigi, M. (2022). Remote work and work-life balance: Lessons learned from the COVID-19 pandemic and suggestions for HRD practitioners. Human Resource Development International, 25(2), 163-181.

[5] Verquer, M. L., Beehr, T. A., & Wagner, S. H. (2003). A meta-analysis of relations between person-organization fit and work attitudes.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63(3), 473-489.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월요병은 게으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