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바꾼 것, 세대가 바꾼 것

조용한 사직은 어디에서 왔는가

by 테오

소명, 일터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

제1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image.png 출처: Gemini로 생성


내일부터 재택근무입니다.

2020년 3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어제까지 매일 출근하던 사무실 대신,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화상회의 화면 속 동료들의 얼굴은 어딘가 어색했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H사 인사실에 몸담고 있던 저는 그룹 전체의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을 설계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이 여전하던 2021년, S사로 새롭게 둥지를 옮겼습니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단하게 다져야 할 시기의 한가운데에 팬데믹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화상회의로 매일 얼굴을 마주했지만, 그것을 온전한 '만남'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투과한 연결은 늘 어딘가 2%가 부족했습니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며 나누던 짧은 안부.

점심시간에 발맞춰 걸으며 털어놓던 고민.

회의실 문을 나서며 말없이 주고받던 격려의 눈빛.


그 사소하고도 소중한 것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팬데믹은 단순히 출근하는 방식만을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로소 우리에게 '우리가 왜 함께 모여 일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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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저는 조용한 사직에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간 경계형, 형식적 참여형, 가치 분리형, 성장 포기형, 관계 최소화형.


여기에 오늘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겠습니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조용한 사직은 왜 이렇게 빠르게 확산된 것일까요?"


연구를 하다 보니, 조용한 사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온 사회적 변화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연구를 통해 정리한 조용한 사직의 확산 배경 여섯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팬데믹이 남긴 충격과 균열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히 일하는 장소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업무 과중이 심해졌습니다. 화상 회의는 늘어났고, '항상 접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졌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사라졌지만 집이 곧 사무실이 되면서 일을 끝내는 시점은 모호해졌습니다.


동시에 조직의 대응은 구성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과정에서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분석합니다 [2]. 심리적 계약이란 명시된 계약서에는 없지만, "내가 헌신하면 조직도 나를 돌봐주겠지"라고 서로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믿음입니다 [3].


팬데믹은 이 굳건했던 믿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구조조정과 무급휴직이 이어지는 위기 속에서 조직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내세웠고, 구성원들은 자신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도구처럼 취급된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누적되면서 사람들은 일과 삶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했습니다 [4]. 미국의 '대퇴직(Great Resignation)' 현상이나 한국의 '워라밸' 열풍 모두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기를 통과해 왔습니다. S사에서 People Data Scientist로서 조직문화를 데이터로 분석하며 흥미로운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우리 팀 분위기가 좋다"는 응답이 높았던 조직들이, 팬데믹 이후 오히려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굳어진 것 같았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카메라를 끄고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업무 외적인 대화는 메말랐고, "요즘 어때요?"라고 다정하게 묻는 질문도 사라졌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 안부를 먼저 건네지 못했습니다. 연결이 희미해지니, 일에 대한 헌신도 함께 옅어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세대와 직업관의 교체입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직업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갤럽(Gallup)의 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직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자기 가치의 표현'으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5]. 이들에게 일은 돈을 버는 도구를 넘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 가치관이 조직의 낡은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합니다.


"이 일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아."

"여기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어."


이런 판단이 서는 순간, 이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심리적으로 이탈합니다. 하지만 당장 퇴사할 수 없는 경제적 현실 앞에서 이들이 선택한 타협점이 바로 '조용한 사직'입니다.


H그룹과 S사 그룹의 조직문화 진단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저 또한 이 거대한 파도를 체감했습니다. 젊은 구성원들의 응답에서는 '성장 기회'와 '일의 의미'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컸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내미는 카드는 여전히 '안정적 급여'와 '복리후생'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대와 현실의 아득한 간극이 조용한 이탈을 가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과 사랑」의 저자 이효재 목사님은 현대 직장인들의 상황을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파이어(FIRE)족'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일을 '돈 버는 수단' 이상의 가치로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것입니다 [6].


최대한 빨리 돈을 벌어 은퇴하겠다는 꿈, 주식과 코인으로 '한 방'을 노리는 마음. 그 이면에는 사실 아주 근본적인 결핍과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저 역시 이 무거운 질문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세속 직업'에는 신앙적, 영적 의미가 없다고 여겨왔습니다 [6]. 하지만 과연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그 깊은 이야기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세 번째, AI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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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과 생성형 AI의 등장은 일터의 불확실성을 극도로 높였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 자동화될지 모른다는 불안.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감.

어제까지 익숙했던 도구가 오늘 쓸모없어지는 아찔한 속도감.


이 모든 기술적 충격은 구성원의 인지적 소진(Burnout)과 심리적 거리 두기를 부추깁니다 [7]. 저 역시 데이터 분석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AI 시대를 일터 한복판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를 업무에 어떻게 적용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프로젝트 하나를 마칠 때마다 경이로움과 서늘한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이 기술이 더 고도화되면, 내가 하는 분석 업무도 결국 대체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술의 발전 앞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일의 본질적인 의미를 갉아먹고, 결국 일터로부터의 심리적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네 번째 배경은 신자유주의적 경영 패러다임의 한계입니다.


효율과 생산성만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경영 방식은 사람을 경제적 도구로 전락시킵니다. 구성원을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라 부르는 순간, 사람은 이윤 창출을 위한 투입물로 환원됩니다.


연구자 피터 플레밍(Peter Fleming)은 이러한 패러다임이 구성원의 소명 의식을 메마르게 하고 심리적 이탈을 유발한다고 지적합니다 [8]. 인간을 그저 '비용'이나 '자원'으로 취급하는 조직에서 고결한 소명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익 극대화가 유일한 목적인 곳에서, "나는 왜 여기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배부른 사치처럼 취급받습니다.


「일터신앙」의 저자 이효재 목사님은 프롤로그에서 바로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일하는가?" [9]


목사님이 한 교회 청년 수양회에서 "직장에서 일하기 싫은 사람 손들어 보라"라고 했을 때,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한 청년이 농담처럼 던진 말은 우리의 뼈를 때립니다. "목사님, 일 안 하고 매일 놀고만 싶어요."


어쩌면 이것이 우리 모두의 솔직한 민낯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효재 목사님은 우리가 일터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일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 하고, 일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사고의 프레임을 완전히 뒤집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성과표만 바라보는 조직에서 개인의 힘만으로 이 프레임을 바꾸기란 벅찬 일입니다. 개인의 영적 분투에 더해, 조직의 구조적인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비교의 함정과 무너진 경계입니다.


스마트폰 속 소셜 미디어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비교의 늪'을 제공합니다.

인스타그램에는 발리에서 여유롭게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가 넘쳐나고, 유튜브에는 퇴사 후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는 브이로그가 쏟아집니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빛나게 사는데, 내 현실은 왜 이럴까?"


화면 속 화려한 타인과 초라한 나 사이의 간극은 직무 만족도를 매일 조금씩 갉아먹습니다 [10]. 물론 SNS에 전시된 모습이 고도로 편집된 삶의 파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매일 그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다 보면 내 일상이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여기에 일과 삶의 경계마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퇴근 후에도 울리는 메신저, 주말 저녁을 파고드는 업무 지시. '언제든 연결될 수 있다'는 기술의 편리함이 일상을 옭아매는 '구속'으로 변질되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의 벽을 높게 쌓아 올립니다 [11].


그 단단한 벽의 이름이 바로 조용한 사직입니다.


받은 만큼, 정해진 시간 내에서만 일하겠다는 '시간 경계형' 조용한 사직은 사실 번아웃의 위협에서 내 영혼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입니다. '9 to 5'를 칼같이 지키는 것은 결코 게으름이 아닙니다. 허물어진 내 삶의 경계선을 기필코 다시 세우려는 방어막인 것입니다.


「일과 사랑」에서 이효재 목사님은 타락한 일터의 현실을 성경적 관점으로 명쾌하게 짚어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일터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자라는 곳, 얼굴에 땀을 흘리고 뼈 빠지게 수고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고단한 곳으로 변질되었습니다 [6].


현대인의 일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숨 막히는 성과 압박, 끝없는 불안, 무너진 워라밸 등 에덴 동쪽의 일터는 본질적으로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힘듦이 그저 의미 없이 소모되는 고통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에서 내보내신 후에도 여전히 땅을 갈며 살라고 명하신 것은, 형벌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를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6].


노동이 저주가 아니라 은혜라는 이 놀라운 역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시리즈를 써 내려가는 진짜 이유입니다







여섯 가지 흐름이 만나는 자리


정리해 보겠습니다.

조용한 사직이 번져나간 궤적을 따라가면, 결국 여섯 가지 거대한 사회적 흐름과 마주치게 됩니다.


팬데믹이 끊어낸 심리적 계약.

새로운 세대와의 가치 충돌.

AI와 디지털 전환이 몰고 온 직업 불안정성.

효율만 좇는 경영이 앗아간 소명 의식.

소셜 미디어가 매일 증폭시키는 상대적 박탈감.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피어난 자기 방어.


이 여섯 가지는 결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얽매고 증폭시키며 거대한 파도가 되었습니다. 조용한 사직을 단순히 '요즘 사람들의 태도 문제'나 '개인의 게으름'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판 자체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조직문화를 데이터로 분석하면서, 저는 구성원 경험과 조직의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득한 괴리를 숱한 숫자로 확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건조한 숫자들 뒤에는 언제나, 상처받고 흔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번아웃의 벼랑 끝에 선 사람.

조직과 가치관이 엇갈려 방황하는 사람.

기술의 해일 앞에서 쓸모를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사람.

무너진 경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


데이터는 우리에게 '어디가 아픈지' 현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데이터만으로는 그 아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습니다. 숫자 너머에는 늘 사람의 이야기가 있고, 그 무수한 이야기들의 밑바닥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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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했습니다. 팬데믹, 세대, 기술, 경영, 미디어가 바뀌었고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하는 이유'도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터신앙」에서 이효재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에서 기쁨을 누리려면 일하는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9]


변한 것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조용한 사직의 가장 깊은 뿌리를 찾아갑니다. 이것이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명'의 문제라는 것,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퇴근길에 한 가지만 생각해 보시겠어요?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렇게 변한 가운데, 나는 여전히 같은 이유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유를 잃어버린 채 관성으로 출근하고 있는가?"




References

[1] Kim, K. T. (2025). Quiet Quitting and the Loss of Calling: An Integrative Study of Organizational Theory and the Christian Theology of Vocation. Doctoral Dissertation, Yonsei University. (Table 1: 조용한 사직의 확산 배경)

[2] Shirmohammadi, M. et al. (2022). Remote work and work-life balance: Lessons learned from the COVID-19 pandemic.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3] Rousseau, D. M. (1989). Psychological and implied contracts in organizations. Employee Responsibilities and Rights Journal, 2(2).

[4] Patel, P. C. et al. (2025). Quiet quitting: A comprehensive assessment of a viral concept.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5] Gallup (2022).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2 Report.

[6] 이효재 (2024). 일과 사랑: 일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신학.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7] Susskind, R. & Susskind, D. (2015). The future of the professions: How technology will transform the work of human experts. Oxford University Press.

[8] Fleming, P. (2009). Authenticity and the cultural politics of work: New forms of informal control. Oxford University Press.

[9] 이효재. 일터신앙: 소명, 사랑, 기도 그리고 인내. 도서출판 TOBIA.

[10] Huang, J. (2024). Social media comparison and quiet quitting. (Kim, 2025 논문 내 인용)

[11] Kreiner, G. E. (2006). Consequences of work-home segmentation or integration: A person-environment fit perspective. Journal of Organizational Behavior,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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