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아니라 소명의 문제다

by 테오

소명, 일터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

제1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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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던 어느 저녁, 이 질문이 불현듯 찾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그룹의 인사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인사제도를 설계하고, 조직문화 진단 데이터를 분석하고, 전략 방향을 도출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저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그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보고서 작성.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

솔루션에만 몰두해 있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왜'가 사라지고 '어떻게'만 남아 있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은 알고 있었지만,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흐릿해져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오래도록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질문이 저를 박사과정으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지난 세 편에 걸쳐, 저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1편에서는 조용한 사직이 게으름이 아니라 존재론적 현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편에서는 조용한 사직에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3편에서는 팬데믹, 세대 변화, 디지털 전환, 경영 패러다임의 한계, 소셜 미디어, 일과 삶의 경계 붕괴라는 여섯 가지 사회적 배경을 짚었습니다.


이제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사직의 가장 깊은 뿌리는 무엇인가요?"


오늘은 1부의 마지막 편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조용한 사직에 대한 기존의 설명들은 대부분 심리적이거나 행동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직무 소진, 리더십 문제, 보상 불공정성,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이런 요인들이 조용한 사직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1]


물론 이 설명들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접근들은 '어떤 조건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잃어가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는 닿지 못합니다.


조용한 사직은 단순히 직무에 불만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는 조직에 남아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이미 떠난 상태입니다.


최소한의 직무만 수행하고, 추가적인 노력이나 헌신을 회피합니다 [2].

그리고 이 현상은 점진적이고 누적적으로 진행됩니다 [3].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조용한 사직이 단순한 태만이나 냉소주의와 다른 점은, 그 뿌리에 '일의 의미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기존 연구들도 이 점을 인정하지만, 왜 의미가 상실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를 보여왔습니다.


제 논문의 핵심 주장은 바로 이것입니다.


조용한 사직의 근본 원인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명 상실'이라는 존재론적 현상이라는 것.

일의 의미와 소명의식의 약화가 심리적 이탈과 행동적 위축의 가장 깊은 뿌리라는 것입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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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잃어버린 일터


그렇다면 '일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조직심리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왔습니다.

직업(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입니다. [6]


일을 '직업'으로 보는 사람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일하는 것을 말하고,

'경력'으로 보는 사람은 승진과 성취를 위해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소명'으로 보는 사람은 일 자체에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일이 더 큰 선(善)에 기여한다고 느끼며,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일을 소명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직무 만족도와 삶의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6]. 반대로, 소명의식이 낮을수록 직무 몰입과 조직 물입이 유의미하게 낮아졌습니다 [7].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같은 조건, 같은 환경에서도 일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몰입과 이탈이 갈린다는 뜻입니다.


조용한 사직이 특정 세대나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저는 People Data Scientist로 일하면서, 조직문화 데이터, 리더십 데이터를 포함하여 사람과 관련된 데이터를 수년간 분석해 왔습니다. 수만 건의 설문 응답과 면담 데이터를 들여다보면서, 기억에 남는 하나의 패턴이 있습니다.


조직에 대한, 또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낮은 구성원들의 응답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내 일이 조직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일하는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급여나 복리후생에 대한 불만보다, 의미와 목적의 부재가 더 자주 등장했습니다.

물론, "내가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와 같이 공정한 보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많았지만,

사람들은 돈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잃어서 떠나고 있었습니다.




소명이라는 열쇠


그렇다면 사회과학 연구에서 말하는 '소명'이란 무엇일까요?


소명(calling)은 단순히 직업을 좋아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직업을 통해 초월적 부르심에 응답하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참여하는 의미 있는 활동을 뜻합니다. [8]


소명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딕(Dik)과 더피(Duffy)는 소명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선 외부로부터의 초월적 부름에 응답하여, 삶의 목적과 의미를 추구하며, 타인 지향적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는 것." [8]


이 정의에는 세 가지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소명은 '나'를 넘어서는 부르심입니다.

자기만족이 아니라, 더 큰 목적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둘째, 소명은 일에 '왜'를 부여합니다.

같은 업무도 소명의 렌즈로 보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셋째, 소명은 타인을 향합니다.

나의 일이 누군가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한다는 인식입니다.


「일터신앙」의 저자 이효재 목사님은 이 개념을 더 깊은 차원에서 풀어냅니다.


책을 통해 일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9]


이효재 목사님은 이어서 강조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매일 평범하게 반복하는 일상의 일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진다." [9]


소명으로 하는 일은 재미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소명을 잃어버린 일은 아무리 좋은 조건에서도 공허합니다.




소명 상실이라는 연쇄 반응


저는 연구를 통해 소명 상실과 조용한 사직의 관계를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정리했습니다. 그 핵심은 이렇습니다.


소명의식이 약해지면 직무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의미가 상실되면 심리적 이탈이 시작됩니다. 심리적 이탈이 축적되면 조용한 사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과정입니다. 논문에서는 이 과정을 여섯 가지 경로로 설명하지만, 우리 일상의 언어로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내 안의 동력이 꺼집니다. 소명은 일에 온기를 불어넣는 불씨와 같습니다. 이 불씨가 꺼지면, 일은 그저 생계를 위해 견뎌야 하는 차가운 의무로 전락하고 맙니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던 마음속 깊은 곳의 동력이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일과 내 삶이 철저히 분리됩니다. 한때는 내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이었지만, 더 이상 일에서 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회사에서의 나'와 '진짜 나' 사이에 심리적인 바리케이드를 치게 되고, 마음은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멀어집니다.


셋째, 동료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집니다. 본래 소명은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세상을 향해 연결되는 '관계적인' 경험입니다. 하지만 일의 의미를 잃으면 조직 내의 신뢰와 유대감도 함께 바래집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일하지만, 짙은 소속감을 잃은 채 외딴섬처럼 고립감을 느끼게 됩니다.


넷째, 선한 영향력에 대한 기대가 사라집니다. 소명은 단순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넘어, 타인을 향한 따뜻한 윤리적 책임감을 품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꺾이면 '굳이 내가 왜 나서야 해?'라는 냉소가 자라나고, 조직을 향한 헌신은 사치스러운 단어가 되어버립니다.


다섯째, 더 나아지고자 하는 성장의 의지가 멈춥니다. 소명을 품은 사람들은 스스로 배우고 몰입하며 길게 달려갑니다. 하지만 의미가 사라진 일터에서는 자기 계발도, 내일의 성장도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저 오늘 하루의 시간을 무사히 버텨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됩니다.


여섯째, 시련을 이겨낼 마음의 근력이 사라집니다. 일하다 마주치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와 상처들을 딛고 일어서던 회복탄력성이 고갈된 것입니다. 스스로 일의 의미를 만들어낼 힘마저 잃어버린 깊은 정서적 탈진. 이것이 결국 '조용한 사직'이라는 가장 조용하고도 슬픈 도피처로 우리를 등 떠밀게 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소명을 잃으면, 의미를 잃습니다. 의미를 잃으면, 마음이 떠납니다. 마음이 떠나면, 몸만 남습니다.

이것이 제가 연구하고 데이터로 확인한 조용한 사직의 본질입니다.





질문이 답이 되기까지


다시 사무실의 그날 저녁으로 돌아가봅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그때는 이 질문이 두려웠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질문이야말로 저를 살린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H사 인사실에서 조직문화 진단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몰입도가 낮은 조직의 데이터를 파고들수록, 제도나 환경이 아니라 '일의 의미'가 핵심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확신은 석사과정으로 이어졌고, 석사 논문의 주제에 '직무소명의식'이 핵심 요인이 되었습니다.


직무소명의식.

이 개념을 처음 연구 주제로 삼았을 때, 저는 사실 제 자신의 소명 위기를 학문으로 풀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석사 과정에서 소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소명의식이 높은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더 높은 직무만족과 성과를 보인다는 것.

그리고 소명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형성되고 발전하고 때로는 상실되기도 하는 역동적인 개념이라는 것 [10].


이 발견이 저를 박사과정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한 사직과 소명 상실'과 관련된 논문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장의 질문을 학문으로 가져간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날 저녁 인사실에서 던진 질문이 제 소명을 재발견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소명을 잃어버린 경험이, 역설적으로 소명을 연구하는 소명이 된 셈입니다.




1부를 마치며


지난 네 편에 걸쳐, 우리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현상의 표면에서 뿌리까지 내려왔습니다.


1편에서 조용한 사직이 게으름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2편에서 그것이 다섯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3편에서 여섯 가지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것의 가장 깊은 뿌리가 '소명 상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효재 목사님의 말을 다시 떠올립니다.

"일하는 방법만 알고 일하는 의미를 모르면, 무슨 가치가 있겠냐?" [9]


문제의 진단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부터는 답을 찾아갈 차례입니다.


2부에서는 '소명이란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려고 합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약 500년 전, 마르틴 루터가 혁명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모든 정당한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이 한 마디가 직업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루터의 직업소명론이 오늘의 직장인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당신의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라는 그 놀라운 선언의 의미를 나누겠습니다.


"이 글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 하나를 던져보시면 어떨까요?

'나는 지금, 왜 일하는 가에 대한 답을 잃어버린 채 일터로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References


[1] Hamouche, S., Koritos, C., & Papastathopoulos, A. (2023). Quiet quitting: relationship with other concepts and implications for tourism and hospitality. International Journal of Contemporary Hospitality Management, 35(12), 4297-4312.

[2] Harris, L. C. (2025). Commitment and quiet quitting: a qualitative longitudinal study. Human Resource Management, 64(2), 565-582.

[3] Patel, P. C., Guedes, M. J., Bachrach, D. G., & Cho, Y. (2025). A multidimensional quiet quitting scale: Development and test of a measure of quiet quitting. PloS one, 20(4), e0317624.

[4] 김광태, 이혜원, & 손영우. (2023). 다차원적 조용한 사직 척도 (MQQS) 타당화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산업 및 조직, 557-583.

[5] 김광태. (2025). 조용한 사직과 소명 상실: 조직이론과 기독교 소명 개념의 통합적 고찰. 신앙과 학문, 30(3), 5-38.

[6] Wrzesniewski, A., McCauley, C., Rozin, P., & Schwartz, B. (1997). Jobs, careers, and callings: People's relations to their work.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31(1), 21-33.

[7] Duffy, R. D., & Dik, B. J. (2013). Research on calling: What have we learned and where are we going?.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83(3), 428-436.

[8] Dik, B. J., & Duffy, R. D. (2009). Calling and vocation at work: Definitions and prospects for research and practice. The counseling psychologist, 37(3), 424-450.

[9] 이효재. 일터신앙: 소명, 사랑, 기도 그리고 인내. 도서출판 토비아.

[10] Duffy, R. D., Autin, K. L., Allan, B. A., & Douglass, R. P. (2015). Assessing work as a calling: An evaluation of instruments and practice recommendations. Journal of Career Assessment, 23(3), 35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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