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볼부 감독이 되다 (6)
시 대회 진출을 연료로 해서 계속 달려 나갈 것만 같던 티볼부에 제동이 걸렸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무리 없이 교내의 체단실을 사용하던 중, 한 학생이 체육 기구로 장난을 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체육 기구들은 자칫하면 큰 사고로 발전할 수 있기에 체단실을 관리하던 선생님께서 해당 학생에게 엄하게 주의를 주시며, 안전문제로 당분간은 티볼부 전원이 체단실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씀해 주셨다.
안 좋은 소식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역 대회 이후 나는 아이들과 대회 준비를 하기 위해서 저녁 7~8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초과 근무를 하였는데 이것이 또 행정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보통 선생님들께서 초과근무를 하면 그 수당은 교육청 자체에서 그 비용을 지불한다. 하지만 교육공무직인 나는 학교 자체에서 지급을 해야 하는데, 재정 특성상 학교가 벌어들이는 돈은 미미하기에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상황이 안타까웠던 탓인지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 조용히 도서관에 찾아오셔서 위로를 해주셨다. "돈을 줘도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서 선생님은 정말 아이들을 위해 많이 노력해 주셔서 고마워요." 라며 다독여주시는 한 편, "초과근무를 하면 피곤할 테니 학교에서는 퇴근시간까지 조금만 연습하다가 귀가하세요." 라며 정중한 언어로 나의 초과 근무를 만류하셨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어느 정도 눈치를 익혀왔기에 현재 상황을 인지하여 선생님들께 알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다만 방과 후에 있는 아이들과의 연습은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약속이었기에,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학교에 남아 연습을 이어갔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가까워지자 티볼부는 조금 더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기 전까지는 티볼을 연습하고자 하는 아이들이 있어도 "지금은 너희들에게 남은 시험과 공부가 우선이니 거기에 집중하라"라고 말을 했었다. 아이들은 그 말에 수긍했고 3주 남짓을 시험공부를 하는데 집중을 했다.
다만 시험이 끝나자 그동안 밤낮없이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인 것인지 아이들은 연습을 잘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연습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고, 잘못은 한 것도 아닌데 몰래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가 게임을 하러 가는 인원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나는 체육 교과 선생님도 아니고, 티볼은 정규 교과목도 아니었기에 아이들에게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괜찮다."라는 말로 아이들이 편하게 휴식하게끔 웃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 시간이 계속되던 어느 날 티볼부원이 네 명 남짓밖에 오지 않게 되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오늘 참석한 아이들에게는 오늘은 인원이 적어서 연습이 힘들 것 같으니 쉬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티볼부원들에게 내일은 할 말이 있으니 꼭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전달을 부탁했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이 하나둘 운동장을 가로질러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왜 귀찮게 자신을 불러 냈느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한 아이도 있었고, 이제 갓 모였는데도 "집에 언제 가요?"라면서 교문 쪽을 바라보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차분히 얘기를 시작했다.
"다들 시험 친다고 고생 많았지? 많이 피곤하기도 할 테고."
아이들은 비슷한 말을 이미 담임 선생님께 몇 번이고 들었다는 듯이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대회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거나, 대회에 나가서 그냥 지고 싶은 사람이 있어?"
예상치 못한 나의 말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마다 시 대회에 진출했다고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떠들고 다녔을 뿐, 패배에 대한 것은 여태껏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시 대회도 지역 대회와 같이 토너먼트 형식이라서 한 경기를 지는 순간 바로 탈락이야. 그리고 내 생각에는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 팀이 지는 게 거의 정해져 있어."
"우리를 이긴 학교나 시 대회를 진출한 학교들은 대회를 우승하기 위해서 1년을 준비했고, 지금도 열심히 남아서 연습 중이야. 그런데 우리는 마치 우승을 이미 한 것마냥 연습도 안 하고 편하게 쉬고 있어. 맞지?"
"공부든 스포츠든 세상에 모든 일들은 똑같아. 상대를 이기려면 적어도 상대방이 노력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해야만 해. 그렇게 하는데도 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만큼 우리가 정말로 승리를 바란다면 지금보다도 더 절실해져야 한다고 나는 봐."
이전까지 보인적 없던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한 말이 그리 틀리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대회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 밖에 남지 않았어. 그 기간 안에 다른 학교들이 채워온 연습량을 뛰어넘어야 우리는 그나마 승리를 바라볼 수 있어. 어정쩡하게 연습을 해서 첫 경기를 질 거라면 차라리 연습을 안 해서 졌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게끔 방학중에 아예 푹 쉬고 시합에 출전하면 좋을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아이들은 내가 던진 질문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핸드폰으로 대회 날짜를 체크해 보는 인원들도 있었고 서로 눈치를 보며 수근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연습에서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했던 학생 회장과 티볼부 주장, 그리고 몇몇 성실했던 학생들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하나둘 대답을 이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까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몇몇 학생들이 있긴 했으나 대다수의 부원들은 눈을 반짝이며 생각을 바꾼 듯했다.
나는 그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이전과 똑같이 너희들에게 강요하는 건 없을 테니 연습하고 싶은 사람만 다음 주부터 나오라"라고 점잖게 말을 전달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순간 보여준 이글거리는 저 눈빛들이 실제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바라는 목표를 정하면 무조건 달려가고자 하는 청소년기의 단순함. 그것은 나 또한 같은 나이일 때 겪어본 것이었기에 그 경험이 오늘날 다시 반복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