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다 Sep 19. 2024

여름햇살보다 뜨거운 열정

티볼부 감독이 되다 (7)

 한 달 남짓의 여름 방학. 티볼부 아이들의 열정은 폭염이라 불리는 여름의 햇살보다 뜨거웠다. 방학기간이라 각자 쉬고 싶고 놀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도, 다들 이른 아침부터 나와 짧게는 4시간 길게는 6시간씩 티볼 연습에 임했다. 이따금씩 모기가 날아와서 괴롭히기도 하고,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여우비에 쫓기듯 피신하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미소를 지으며 파이팅을 외쳤다.


 이런 아이들의 노력을 의미 없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 또한 매일 체계적으로 연습 일정들을 고안했다. 타격과 웨이트, 수비 훈련 등등 매일 한 계단씩 성장할 수 있게끔 아이들을 지도했고, 연습에 필요한 장비가 부족하면 사비를 들여 타격 네트나 배트 등을 구매하기도 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점점 더 단단해져 가는 곡식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들이 가슴속에서 피어나곤 했다. 아이들이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 또 나의 과거와 나태해진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반성. 그리고 아이들이 꿈꾸고 있는 목표를 꼭 이루어주고 싶다는 바람까지. 내가 지금껏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아이들을 통해서 배워가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각자의 몸에 훈련의 성과가 나오고 있을 무렵, 나는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남은 기간 조금 더 힘내보자는 말을 전하려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서로 간의 신뢰가 쌓여갔던 덕분인지 나의 지시에도 아이들은 예전처럼 투덜거리거나 뭉그적거리는 느낌이 없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마치 어떤 거친 폭풍이 와도 함께 나아가자고 외치는 굳세고 용맹한 선원들을 보는 것 같았다.


 "다들 매일 같이 나와서 수많은 공을 던지고 스윙을 한다고 고생이 많지?"


 아이들은 이 정도 연습은 이제 가소롭다는 듯 한껏 미소를 보이면서 "아니요", "괜찮습니다."라며 나의 말에 호응을 해줬다.


 "너희가 매일 같은 훈련을 반복하면서 어찌 보면 지겨울 수도 있고, 좀처럼 눈에 띄게 실력이 확 늘지 않아서 조급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너희가 수고로움을 무릅쓰며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과정들은 마치 커다란 도자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은, 티볼 연습과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어떻게 연관이 된다는 것인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나의 말에 집중했다.


 "도자기는 찰흙을 가지고 있다 해서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아. 아주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면서 서서히 커져가지. 그처럼 너희도 한 번에 큰 성장을 이루기보다는 아주 천천히 성장해가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돼. 그런데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잘 돌아가고 있던 물레에서 손을 떼버리면 어떻게 돼? 만들어지고 있던 도자기는 그대로 굳어버려서 이도저도 아닌 흙 덩어리가 되거나 그저 작은 그릇으로 남게 될 뿐이야."


 "지금 너희의 일과도 같아. 아주 천천히 만들어져가고 있는데 싫다고, 귀찮다고 여기서 멈추어버리면 너희 마음속에 있는 그릇은 딱 거기서 성장을 멈출 거야. 이것은 비단 지금의 티볼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이라던지, 공부를 한다던지 각자의 꿈을 이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저마다 무언가 깨닫는 것이 있는 듯 눈을 살짝 내려다보며 사색에 빠졌다.


 "지금 커다란 도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끝나고 나면, 다음 달에는 그것을 단단히 굳히는 시간들을 보내게 될 거야. 그리고는 곧장 우리는 대회를 치르러 가겠지. 각자가 구슬땀을 흘려서 소중히 빚어낸 도자기에 성공이라는 샘물을 담아내기 위해서, 날씨가 많이 덥고 짜증이 나더라도 조금만 더 힘내보자. 나도 너희와 같이 땀 흘리며 걸어갈게."


 아이들은 나의 말을 끝으로 "해보자, 해보자!" 격려의 말을 외치며 다시금 각자가 있던 자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몇몇 아이들은 "항상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하고 가거나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꺼내놓고 가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의 배경을 비추는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부셨고, 푸른 하늘은 마음을 씻어낼 듯이 무척이나 청량했다.


 충분한 노력을 해도 그것이 곧 바라는 결과가 되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이번만큼은 이 세상이 그리 야박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아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그저 무의미한 것으로 남지 않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삐걱대는 티볼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