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의 마음으로

사서, 티볼부 감독이 되다 (9)

by 그리다

시 대회가 어느덧 한 발 앞으로 성큼 다가온 어느 날. 나는 마땅히 연습할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공사가 진행 중인 운동장은 대회가 끝날 즈음에야 마무리가 되었기에 새롭게 연습을 할 장소가 필요했다. 티볼 연습장소로 쓰려면 운동장이 충분한 크기여야 했고, 아이들이 집에서 손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기에 나의 고심은 깊어졌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지도를 뒤적이던 중 번뜩하고 눈에 띈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인근 강변공원에 위치한 사회인용 야구장이었다.


해당 강변공원은 큰 강을 따라 형성된 넓은 평야지대에 조성된 공간으로 시민들이 보통 피크닉, 자전거 라이딩을 목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널따란 공원이었다. 여기에 축구, 배드민턴, 야구, 농구장 등이 공원 안에 충분히 배치되어 있어서 운동을 목적으로 방문하기에도 좋았다. 나는 시합 전 아이들이 실제크기의 경기장을 체험하기에 안성맞춤이거니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연습공간은 없겠다 싶어서 곧장 이곳을 빌리기로 했다.


대여를 하는 방식은 조금 복잡했다. 그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원이라 생각했지만 야구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예약절차 및 비용지불을 해야 했고, 예약을 위해서는 필수로 팀 등록을 해야만 했다. 나는 팀 등록을 위해서 공원 관리 담당자분께 연락을 드리니, 처음에는 "티볼이 뭐죠? 유소년 야구 같은 건가요?"라고 고개를 갸웃하셨다. 나는 간단하게 티볼이 어떤 스포츠인지 말씀을 드리며, 빌리고자 하는 사유와 절차를 차근차근 여쭈었다. 보통은 팀 등록에서 승인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에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았기에, 나는 긴밀하게 계속 연락을 드려 이틀 만에 등록을 끝내고 야구장 예약을 완료했다.


야구장은 총 다섯 곳. A, B, C, D, E로 나뉘어 있었는데, 시설이 가장 좋은 A와 B, C 구장은 이미 사회인 야구팀들이 예약을 마친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D와 E 구장이었는데 E 야구장은 예비로 지어진 곳으로 높은 펜스도 없고 바닥에 선도 제대로 그어지지 않은, 그저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공터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남은 D 구장을 예약하기로 했는데, 이때 스치듯 뜬 화면의 경고메시지가 나의 시선을 이끌었다. 'C, D 야구장은 침수가 되어있을 수 있으니 예약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나는 '에이 설마'하는 마음으로 그냥 지나쳤는데,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 문구를 조금 더 유심히 살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 운동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게 된 우리 티볼팀. 아이들은 저마다 들뜬 얼굴로 야구장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껏 공을 치고 달릴 수 있겠다며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하였는데 야구장의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봉긋하게 솟아있어야 하는 투수 마운드는 흙이 파여 평평한 상태였고, 외야지역의 절반은 물이 차서 거의 늪지대나 다름이 없었다. 이에 외야 수비를 담당하는 아이들도 외야 구역을 한 번 밟아보더니 "선생님! 여기 들어가면 신발이 푹푹 꺼지는데요" 라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전에 잘 확인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는 다음에는 옆에 있는 야구장을 예약하겠다 말하면서 야구장에서의 첫 연습을 차근차근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C야구장을 빌려서 다시 한번 연습경기를 진행했는데, 이 날은 작년에 졸업했던 학생들까지 흔쾌히 시간을 내어주어 함께 연습을 진행했다. 해당 졸업생들은 지금의 우리 상황처럼 작년 시대회에 출전한 인원들로, 나이만큼이나 막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의 노하우와 경험을 얘기해 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고무시켜 주었다.


실제 경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졸업생팀과 현역팀이 맞붙은 경기. 한여름의 날씨라 지치기도 하련만, 아이들은 저마다 파이팅을 외치며 살벌하게 경기를 이어나갔다. 시합 스코어는 2~3점 차이로 이닝이 바뀔 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불꽃을 튀었고, 하나의 경기가 끝난 이후에는 서로가 잘한 것과 아쉬운 점을 토로하며 강평을 이어갔다.


나는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가며 서로 농담도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스스럼없이 형들을 살갑게 대하는 중학생들과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결코 얕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고등학생의 모습이 참 단란하고 예뻐 보였다.


졸업생들은 나를 보면서 "애들 실력 보니까 선생님께서 작년에 티볼 담당하셨으면 우리 팀이 전국대회 갔을 것 같은데요?"라면서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빈말이라도 고맙다."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졸업생들에게 "너희들 덕분에 얘네들이 더욱 성장한 것 같다. 오늘 와줘서 진짜 고맙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자리를 정리하고 모두 후련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던 길. 나는 오늘의 이 뜨겁고 찬란한 추억이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기를 기도했다. 지금은 힘들고 피곤한 순간이겠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이 날의 내리쬔 햇살이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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