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티볼부 감독이 되다 (End)
대회 당일 나는 잠을 설쳤다. 그동안 남들 못지않게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대회 날이 되니 생각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조금 더 잠자리에 누워 있어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아직 푸르스름한 빛이 가득했고, 주말 아침이 그러하듯 인도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침 7시가 갓 넘은 시간. 나는 아이들이 오기 전에 티볼 장비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교문을 넘어섰는데, 둔탁한 파열음이 학교 건물을 타고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을 하니, 그 소리는 나보다 더 일찍 학교를 온 몇 명의 아이들이 운동장 한편에서 연신 배트를 휘두르는 소리였다. 나는 놀라운 마음에 아이들에게로 가서 왜 이렇게 빨리 나왔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멋쩍은 듯 웃으며 "대회날이니까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힘차게 대답을 했다. 알고 보니 티볼부 아이들 몇 명이 전날 밤 서로 연락을 하여 일찍 나오자고 약속을 한 것이었는데, 직장인들도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시간에 학교를 온 아이들이 퍽 대견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해가 떠오르고 운동장을 채우던 그림자가 점점 지워질수록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모여들었다. 9시 즈음이 되자 모든 티볼부 학생들이 출석을 하여 저마다 넘치는 에너지를 풀어내었는데, 나는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인 만큼 운동 강도를 낮추어 웜업 정도만 하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우리의 시합이 예정된 시간은 12시. 아이들은 각자 공을 던져보거나 배트를 휘두르며 마지막 컨디션 점검을 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사용하던 장비들을 정리한 후에 간단한 먹거리와 글러브를 챙겨 꿈에 그리던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대회가 열리는 곳은 버스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한 고등학교. 학교와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리니 가파른 비탈길과 함께 완만한 능선 위로 지어진, 오래된 성당과 같은 느낌의 붉은색 학교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해당 학교는 스포츠로도 이름이 있는 학교라 그런지 부지에는 커다란 운동장이 총 3개나 있었는데, 반듯한 야구장 하나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 그리고 흙으로 된 보조 운동장은 '우와~'하는 탄성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할 만큼 거대했다.
교문을 통해 학교로 들어서니 오전에 시합이 편성되어 있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팀이 각각 운동장을 반으로 갈라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우리는 콘크리트로 된 운동장 옆 스탠드로 걸어가 빈자리에 각자 짐을 내렸는데, 주변에는 현재 경기 중인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짐이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이후 아이들은 곧장 글러브를 챙겨 보조운동장으로 달려갔는데, 다들 주변에서 연습하는 다른 학교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더 열심히 공을 주고받는 것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나는 홀로 남아 우리가 서게 될 경기장을 쭉 살피고 있었는데, 마침 경기가 끝난 한 중학생 팀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앞서 걷는 선생님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오는 학생들. 나는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그들이 경기에서 패배했음을 직감했다. 학생들은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자신이 가져온 짐들을 챙겼는데, 그런 모습을 보던 선생님은 아이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잘 싸웠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그 모습에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또한 이렇게 패배를 했을 때를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윽고 우리의 순서 바로 앞에 지정된 팀이 경기에 들어가자 대회를 주최하는 본부석에서는 준비를 위해 우리 학교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는 안내에 따라 팀에 등록된 선수들의 라인업을 적어서 냈는데, 발목 수술로 인해 안타깝게 참석하지 못한 학생의 이름까지 모두 적어서 제출을 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 긴장도 풀어줄 겸 짧게 말을 건넸다.
"다들 지금 많이 떨릴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 일거다. 그리고 스스로가 잘할 수 있을지 아닐지 확신이 안 선다면, 너희 마음을 믿지 말고 지난 몇 달간 땀 흘리고 고생했던 그 시간들을 믿어라.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나의 말이 끝나자 얼굴빛이 조금 더 밝게 변하였다. 그러고는 언제 굳어있었냐는 듯이 "예 알겠습니다!"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리의 짤막한 대화가 끝난 모습을 지켜보던 대회 진행자분은 싱긋 웃으셨고, 나에게 살짝 목례를 하며 아이들을 정렬시켰다. 그리고는 경기의 룰과 주의사항 등을 아이들에게 찬찬히 설명했다.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중학생 경기장 쪽에서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이 크게 울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나와 우리 학생들 모두가 '어라?'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이유인즉, 방금 경기가 끝난 팀이 바로 저번주에 우리와 친선전을 했던, 우리 지역구 1등 학교였던 것이다.
나는 서로 아는 얼굴이었기에 반가운 마음도 들고, 분명 결승까지 올라갈 만큼 실력이 있는 팀이라 생각했기에 축하를 하려 다가갔다. 하지만 경기장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우리와 경기를 할 때 보여주었던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학생들의 얼굴에는 잔뜩 그늘이 졌던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순간 '저 학교의 선수들이 쉽게 질 실력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곤 해당 학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선생님께서는 아쉬움이 남은 눈빛으로 "준비해 온 것들이 많았는데 판정이 조금 애매해서 결과가 아쉽게 됐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남기고 아이들과 함께 스탠드를 향해 걸어가셨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자 둥글게 어깨동무를 하며 우렁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는 휘슬과 함께 그토록 기다리던 우리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추첨을 통해 정해진 결과 우리는 후공이었기에, 아이들은 각자 글러브를 챙겨 수비하러 경기장으로 나아갔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공을 바라보는 아이들. 그런 집중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앞선 세 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아웃처리했다. 우리가 연습한 대로 부드럽게 포구를 하고 1루를 향해 정확하게 공을 던졌는데, 확실히 오랜 연습을 한 보람이 느껴졌다. 이후 나온 상대편의 4번 타자가 당겨 치는 솔로 홈런을 때려 살짝 흠칫하기도 하였지만 곧장 분위기를 잡은 아이들은 좋은 수비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멋진 수비를 할 때마다 응원석에서 "좋다!", "멋지다!"를 연발해 주었는데, 이 덕분에 우리 팀의 분위기가 한층 고무되었다. 첫 시작은 무난하게 4 실점. 이제 우리가 공격을 할 차례가 다가왔다.
우리는 각자 약속한 대로 테이블 세터진(*1,2번 타순) 이 빠른 발을 이용해서 베이스를 채우고, 클린업 타자(3,4,5번 타순)들이 장타를 쳐서 점수를 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작전은 시작과 동시에 무산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1번 타자가 배트를 짧게 잡고 내야로 공을 쳤는데, 심판이 이렇게 배트를 휘두르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아차!' 하며 직전에 타학교 선생님께 들었던 '판정이 조금 애매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시도하려던 타격 방식은 티볼 규정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지역대회에서도 모든 학교들이 사용을 할 만큼 평범한 것이었고 우리 또한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이 타격을 갈고닦았던 것인데, 그 생각은 그저 우리의 착각일 뿐이었다. 모든 스포츠에서 그러하듯, 규정에 대한 것은 심판의 재량이 큰 부분을 차지하였기에 규정적용에 대한 부분을 따져 물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안일함은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사실 일전에 우리 학교 체육 선생님께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과거에 저도 시 대회에서 이 타격을 쓰는 팀을 만나서 아쉽게 졌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연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다음 해에 똑같이 준비해서 갔더니 이번에는 또 갑자기 심판이 안된다고 해서 난감했었지요. 그러니 매 경기마다 심판의 성향을 확인하셔야 됩니다."
나는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온갖 생각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합 중이었기에 푸념을 길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뜻하지 않게 막혀버린 우리의 전략을 뒤로하고 아이들에게 일단 강하게 치라고 다시 한번 작전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아이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나 보다. 준비해 오던 타격을 하지 못하게 된 아이들은 연습 때 보여주던 좋은 타격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고작 2점의 점수만을 기록할 뿐이었다.
2회에 들어가자 점수차는 눈에 띄게 벌어졌다. 1회에서 점수를 따지 못했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아이들은 수비에서 간간히 실책을 하였고, 공격권이 왔을 때 역시 타격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게 2회가 끝나자 두 팀의 점수는 7점 차로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렴풋이 우리의 팀에 패배라는 단어가 새겨지고 있음을 느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점수차는 뒤집을 수 없기에,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경기 경험이라도 느끼게 해 주고자 교체 멤버였던 학생들을 모두 3회에 투입시켰다. 아이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할 수 있다!'를 외치며 경기에 들어섰지만, 승리를 확신한 상대방의 기세를 누그러트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분전했지만 점점 실점을 하였고, 마침내 두 팀의 점수가 11점 차가 되는 순간, 심판은 콜드게임을 선언했다.
나는 아직 타석에 서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기에, 질 땐 지더라도 3회 말까지 우리가 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내심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판은 그저 승자와 패자를 각각 외치고 돌아설 뿐이었다.
입고 있던 조끼를 갈아입고 나는 상대편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는 경기 결과가 적힌 종이에 확인을 했다는 사인을 했다. 몇몇의 아이들은 허탈함과 아쉬움이 남았는지 규정과 관련한 부분들을 투덜거렸지만, 나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고개 숙인 아이들을 다독였다. 그리고는 지금껏 봐오던 다른 팀들의 모습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스탠드를 향해 걸어갔다.
각자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있는 아이들은 얼굴을 감싸 쥐기도 하고, 자신이 더 잘했어야 한다는 혼잣말을 하며 자책에 빠지기도 했다. 나 또한 오랫동안 준비한 것들이 고작 1경기. 그것도 4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게임으로 인해서 마무리되었다는 것에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감독이라는 직책이었기에 이 감정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스탠드에 서서 아이들에게 마지막이 될 강평을 하였다.
"아쉽게도 결과가 좋지 못했네. 하지만 패배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아이들은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는 자리에 이렇게 서 있잖아 그치?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산 정상에 발을 디딘 사람만이 말해줄 수 있는 것처럼, 시 대회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온 너희들 또한 오늘 이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까지 흘린 피와 땀은 너희 안에 새겨져서 너희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도 선명하게 남을 거다. 지역의 강호를 이기고 지역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느낀 성취감. 또 긴 시간 동안 너희가 연습하면서 쌓아 올린 많은 추억들이 너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될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젠가는 너희들도 각자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될 텐데, 그때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오늘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이후 나는 짧게 숨을 내쉰 뒤 "그동안 너희들 덕분에 밋밋할 수 있었던 내 삶이 진짜 뜨겁고 행복했다. 고맙다 얘들아."라는 말로 강평을 끝냈다. 아이들은 내 말이 끝나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면서 큰 목소리로 화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짐을 챙겨 학교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한 컷은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면서 씩 웃어 보였다. 나는 티볼부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돌아보며 "좋다! 그렇게 하자."라면서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다들 패배를 한 이후에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멋쩍은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싫지는 않은 듯 곧장 줄을 섰다.
"자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티볼부. 그래도 한 때나마 우리가 하나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이 참 소중하다 느껴졌다.
이후 우리는 고깃집으로 회식을 하러 가면서 각자 아쉬웠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몇몇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좋은 결과를 못 낸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라는 참 따뜻하고 대견한 이야기를 했고, 또 다른 학생들은 "6개월 가까이 연습했는데 단 한 경기만 하고 돌아서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라는 얘기도 했다.
나는 아직 해가 창창히 떠있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다. 해가 떠있다고 해서 저 너머의 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 오늘 우리의 별도 조금 더 밝은 빛에 가려졌을 뿐, 아직 그 빛을 잃지는 않았다고.
P.s 이후 우리와 붙었던 상대 학교는 파죽지세로 시 대회를 우승했고, 무려 전국대회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티볼부 아이들은 "그래도 전국대회 결승전까지 간 팀에게 진 거니까 우리도 사실 강했던 게 아닐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싶어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