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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에 혼자가 되게 생겼다(4)

천둥 번개 공포의 실마리를 찾아서

   어떤 일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겨나기도 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불현듯 딱 떠오르는 생각들도 있다.


둘째가 1년을 더 집에 있기로 하고 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날들이었다.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장마는 천둥번개와 함께 왔다. 번개 한줄기가 번쩍 하는 순간 나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 안은 바깥소리가 잘 안 들리는 장소라 나는 자주 화장실로 도망친다.

여기서 좀 버티면 천둥번개가 끝날 것을 알기에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퍼뜩 내가 언제부터 천둥번개를 무서워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둘째도 떠날 것을 알기에 내 공포와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천둥번개부터 실마리를 찾아보자,

생각했다.

나는 그 공포가 시작된 날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사실 이야기를 다 풀고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평범한 이야기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학교에 갔다.

학교가 파할 때까지 비가 멈추지 않으면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4남 2녀의 형제자매 중에 5번째로 태어났다.

흥부전을 읽었을 때 흥부네 집 풍경이 우리 집과 같은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이면 먼저 뛰어 나간 아이가 우산을 들고 갔다.

최소한 우산이 6개는 있어야 우리는 모두 우산 아래 안전할 텐데 그러지 못했다.

우산은 늘 부족했고 느릿느릿 일어나 학교로 갈 즈음엔 남은 우산이 없었다.

난 그때 학교를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 일어나서 움직였다.

학교가 너무 싫었다. 가기 싫었다.

우산이 없다는 핑계로 그냥 눌러앉은 날도 있었다.


학교 수업시작 시간이 될 때까지 불안과 초조함 불편함으로 안절부절못하며 버티다가 그 시간이 딱 지나면 무엇인가 모를 안도감과 체념이 몰려왔다. 빈집에서 나 혼자, 때로는 동생과 함께 종일을 버텼다.

빈주먹이나 다를 바 없는 부모님은 6남매를 먹이느라 늘 집에 없었다.

밤늦게 돌아온 부모님은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갔다.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을 들킨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무조건 뛰쳐나갔다. 아버지는 동네 입구까지 날 쫓아왔다. 어떤 날은 잡혀서 들어갔고 어떤 날은 잡히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생쥐처럼 조용히 몰래 숨어 들어갔겠지.







  초등학교 2학년,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다 잠깐 장마가 주춤한 날 우산 없이 학교를 갔다.

하교 즈음엔 다시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비가 와서 텅 빈 운동장을 보며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여름에 비를 맞는 것은 그럭저럭 견딜만해서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작스레 천둥번개가 치며 빗줄기가 굵어졌다. 놀랐지만 집에 거의 다 왔기 때문에 조금만 참자 생각했다. 때마침 천둥번개도 잦아들었다.

나는 집 마당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안전한 구역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턱 놓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바로 번개가 쏟아졌다. 놀라서 얼굴을 들었는데 뒤이어 찢어질듯한 천둥소리가 났다.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내 머리를 둘로 갈라놓을 듯한 소리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떨어진다는 말은 이런 걸까? 나는 마당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집안에서는 아무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계속 울면서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불렀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마음으로는 엄마가 뛰어나와 나를 일으켜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야만 이 울음이 멈출 것 같았다. 처음엔 놀라서 울었고 그다음엔 화가 나서 울었다. 그다음은 서러워서 울었다. 감정은 놀람에서 분노로 그리고 서러움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들으라고 일부러 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큰소리로 울어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집에 아무도 없었던 거다.







   처음부터 천둥번개가 무서워서 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너무 깜짝 놀라서 울었다. 그다음엔 이렇게 놀라서 마당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데 아무도 그런 나를 누구도 보듬어 주지 않아서 서럽고 화가 났다. 그때 나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엄마가 나와서 달래주기를 기다린 것이 너무 과한 기대였을까.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있었으면 뛰어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무서움은 그다음 순간에 찾아왔다.

아무도 없는 마당, 계속해서 미친 듯이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 그리고 아무도 없는 동굴 같은 집안, 어디를 가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섭고 또 무서웠다.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그 순간부터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온갖 잡다한 일들, 몇 푼 쥐어지지 않는 일들이지만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다. 6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학교를 밥먹듯이 빼먹어도 아버지와 엄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학교에 가라고 타이를 뿐이었다. 난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학교를 빼먹었고 집에 혼자 있었다. 혼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하고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방 한쪽 벽에 있는 문고판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천둥 번개가 아무리 쳐도 엄마랑 같이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가 없는 동굴 같은 방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엄마는 늘 없었다.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미워하는 감정을 밑으로 눌러놓았다는 것이 맞을 거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을 별일 아닌 것으로 건조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무서운 것은 저 천둥과 번개, 화가 나는 것은 저 천둥과 번개, 내가 안전하지 않은 이유는 저 천둥과 번개 때문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복잡했던 어린 감정들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었다. 공포는 그 어떤 다른 감정을 모두 앗아간다. 공포는 다른 모든 감정을 검은색으로 점령해 버린다. 놀란 마음도 엄마가 없어서 서러운 마음도 컴컴한 방도 모두 공포에 잠식당하는 순간 공포로 변해 버린다. 차라리 어린 나에게는 그게 편했을지 모른다. 천둥번개는 너무 무서워!! 이 한마디면 될 일이다. 엄마가 없어서 슬프고 서럽고 무서운 감정에서 엄마의 부재는 쏙 빠지고 천둥번개에 대한 두려움만 남게 되니 나는 엄마의 부재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천둥번개에 대한 공포가 탄생했다. 그리고는 그 공포는 점점 더 커지며 나의 모든 다른 감성까지 잠식했다.

어른이 된 이후로도 그 공포는 작아지지 않았다. 공포에 어른이나 아이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심지어 나의 이 공포는 어른 시절 생긴 것이니 어른이 됐다고 줄어들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우산을 받치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는 늘 신기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전쟁 같은 난리통이 무섭지 않은 건지... 부러웠다.








   천둥번개가 이제는 멎었겠지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화장실에 뛰어들면서 내가 늘 느끼는 감정은 "안전하다"였다.

여기는 안전해, 여기까지는 저 찢을 듯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화장실을 나오다가 화장실 문 앞에서 까닭 모를 울음을 터트렸다.

천둥번개가 치면 늘 엄마랑 같이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절대로 무섭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토록 바라던 이불속이 화장실이라니, 화장실이 날 아늑하게 지켜줬구나..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때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울음이 잦아들면서 생각했다.

괜찮아, 이제 나는 안전해

괜찮아, 나는 안전해

그 어린 나에게 속삭였다.

넌 오래전부터 안전했어. 네가 몰랐을 뿐이지.


그날 이후

천둥이 치고 무서움이 올라오면 내게 말했다.

괜찮아, 너는 이제 안전해

그러면 한결 나아졌다.

나는 안전하다..

주문처럼 외며 천둥번개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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