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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에 혼자가 되게 생겼다 (3)

수년 전에 심리상담을 몇 달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상담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마음 저 밑에 밀어 넣어서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이 단단하게 엉켜있는 감정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꺼내고 싶었다.

기어코 눌러 놓았던 그 감정들을 꺼내서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책상 위에 하얀 도화지를 놓고 하나하나 꺼내 올려서 그 위에 올려놓으면 그것들의 정체가 무엇인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담사가 내게 물었다.

"뭐가 제일 무서워요?"

"댐에 가득한 물이요, 그 깊이가 너무 아득해서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깜깜한 밤에 누군가 옆에 서서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겠어요.

혼자 있을 때 머리를 감을 수 없어요.

눈을 감지 못하겠어요.

천둥 번개가 너무 무서워요.

미친 듯이 달리는 차들도 무서워요

골목이 너무 무서워요

요즘은 골목이 없어서 그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꿈속에서 골목길을 헤매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늘어놓았던 기억이 난다.


상담사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가?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또 왜 그런 건가?

속 시원한 답이 아니었다.



상담사가 못 미더웠는지, 나 자신 그만큼 나를 대면할 자신이 없었는지 거기까지 가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리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상담을 흐지부지 끝냈다.


감정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다.

신기하게도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감정은 느낄 수 없다.

헐, 대박, 미쳤다,

요즘은 이 세 마디로 모든 감정표현을 대신한다.

놀라거나 슬프거나 헐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그 감정들이 들어있다.


나는 공포라는 이름으로 뭉쳐져 있는 나의 감정을 대면하고 그것을 알아내야 했다.


분명 "공포"라는 하나의 단어로 그 감정들은 내게 존재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것을 나는 막연하게 알았다.


그것은 공포보다 더 무서운 무엇이었다.

나는 그 감정과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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