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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에 혼자가 되게 생겼다(2)

엄마는 빈 둥지 증후군이야, 그말은 틀렸다

  엄마, 그건 망상이야


 퇴근한 둘째를 식탁에 앉혀놓고 설득을 시작했지만 단 5분도 안 돼서 둘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엄마는 아무래도 혼자서 살기는 힘들 것 같은데 너 내년에 나가면 안 될까?"

"혼자 살기 왜 힘들어?"

"혼자는 아무래도 좀 무서워서"

"뭐가 무서워?"

"이 집에서 엄마 혼자 생활하는 게 무서워...."

"아니 그러니까 뭐가 무서운데?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둘째는 나를 봤다.

"혼자 있을 때 천둥번개 치는 것도 무섭고, 퇴근하고 빈집에 들어오면 거실에 누가 있을까 봐 무섭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머리 감는 것도 무섭고... 암튼 좀 무섭다고"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엄마의 과도한 상상력이라고!! 망상이야!!"

"뭐?? 망상?? 뭐가 됐던 그냥 좀 1년만 더 있으면 안 되겠냐!!!"






 둘째를 설득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둘째도 안다.

엄마가 겁이 좀 많다는 것을.

번개가 심하게 치는 여름날엔 공포에 질려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 나를 본 적이 있었다.

보통 아파트 화장실은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어서 외부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가장 안전한 곳이어서 나는 화장실로 자주 피했다. 그런 나를 보며 "이그 울 엄마 또 시작이다" 이 정도 반응이었다.

엄마의 공포가 거의 패닉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무섭다고는 하나 그래도 엄마는 잘 자고, 깨끗이 씻고 출근을 하며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엄마가 뭔가를 그토록 무서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둘째를 설득시키지 못했고 점점 초조해졌다.







   엄마는 빈 둥지 증후군이야




  나는 기분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편인데 그즈음에는 몹시 기분이 다운됐었다.

새벽이 되도록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날이 더 많았다.

주말에 부산에서 남편이 올라오면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는데

절대로 혼자 있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무슨 말끝에 " 다 부질없어..."라고 말하며 뒤끝을 흐렸더니 남편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말 큰일이네.."이렇게 말하는 남편은 이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있었다.


남편은 나의 두려움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도 나의 공포를 이해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공포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30년 동안 같이 살아오면서 자다가 가위에 눌리거나 악몽을 꾸고 소리치는 것을 흔들어 깨우기도 했고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말도 안 되는 일에 공포를 느끼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설득해 볼게" 남편은 그렇게 말하고는 둘째를 불렀다.


"엄마는 빈 둥지 증후군인 것 같다. 갑작스럽게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아빠도 부산으로 가게 됐고,

너희들을 모두 다 내보내고 나면 엄마가 허탈하고 우울해서 많이 힘들 것 같은데 네가 1년 정도만 더 있으면 안 될까? 아니면 6개월만이라도?"


둘째가 빈 둥지 증후군이 뭔지 알지는 못했겠지만 "빈 둥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둘째의 얼굴이 바뀌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뭔가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남편의 입에서 나 온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이 너무 생경해서 약간 의아하고 놀란 얼굴로 옆에 앉아 있었다. 둘째는 " 네 알겠어요. 제가 1년 더 있을게요." 짧게 한마디 하고 일어났다.


남편의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한마디에 일은 너무도 쉽게 해결이 됐다.

나는 조용히 혼자 되뇌었다.

"빈 둥지 증후군... 빈 둥지 증후군.. 빈 둥지..."

남편 덕분에 일이 잘 해결돼서 앞으로 1년간은 혼자 있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남편이 말한 "엄마는 빈 둥지 증후군이야" 이 말은 옳지 않다.

아니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이 공포감은 "빈 둥지 증후군"이 아니다.

혼자 있기 싫은 이유 중에 10% 정도는 빈 둥지 증후군일 수 있다.

90%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그냥 공포 그 자체였다.

왜냐면 나는 누군가 이 집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또는 지금은 없어도 밤늦게라도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아무도 없는 시간을 잘 지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그런 시간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나의 공포심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나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그랬다. 남편이 정의한 "빈 둥지 증후군"은 그냥 사회 통념에서 이즈음 내 나이의 여성들이 품 안에 끼고 키우던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느끼는 허탈함을 가르키는 것 일 뿐, 그것은 나의 증상은 아니었다.

남편의 진단이 정확한 나의 병명은 아니었지만 둘째가 독립을 1년을 미루었기 때문에 안심이 됐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빈 둥지 증후군"이 아니라면 나의 이 공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나의 공포감이 무엇인 지 대면하고 싶어 졌고 그 공포의 정확한 실체가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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