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자
2. 상자
겨울이 오고 있다.
혼자 맞는 겨울이, 그 추위를 버텨낼 자신이 없어서 남쪽으로 도망갈 생각부터 먼저 했다. 떠나버리자, 봄에 다시 돌아오자. 잠시 남쪽으로 몸을 피하자고 생각했더니 좀 안심됐다. 하지만 겨울이, 추워서가 아니라, 혼자 맞는 겨울이 버티기 힘든 것인데 남쪽으로는 누구랑 간단 말인가? 여전히 혼자인 채로 남쪽의 겨울은 이곳보다 더 추울지도 모른다. 낭패다. 피할 길 없는 막다른 골목이 분명하다.
남편은 올 1월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11월, 나는 여전히 혼자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삶에서 겉돌고 있다. 내가 이렇게나 남편을 사랑했던가? 생각해 본다. 사랑한 것과 떠난 것 그리고 남겨진 것이 시간의 흐름처럼 자연스럽다. 남겨지고 떠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떠나고 사랑하고 남겨지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고 떠나고 나는 남겨졌다. 내가 먼저 떠나지 못해서 분하고 억울했다.
운명은 왜 원하는 상자를 적당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잘못 배달된 선물상자를 들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즐거운 걸까? 어쩌면 간절하게 남편이 죽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상자는 그녀에게 갔어야 했다. 남편을 애절하게 사랑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없는 공간이 너무도 무섭다.
스무 살에 만나서 스물아홉에 결혼하고 육십까지 같이 살았으면 한번쯤은 이별을 준비했어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나이 육십에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아늑하게 나를 감싸던 집이라는 공간이 이토록 무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사흘 만에 집안에 들어섰다. 현관을 들어서다 거실에서부터 훅 불어오는 바람에 섬찟 멈췄다. 신발을 벗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무엇엔가 깊이 끌려들어 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다. 눈물이 쏟아지며 가슴이 조여왔다. 털썩 현관에 주저앉았다. 신발을 벗던 둘째가 깜짝 놀라며 나를 잡았다. 무섭고 슬프고 아파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던 딸이 달려왔다. 버티려고 했으나 주저앉은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두 아이가 양쪽에서 나를 잡았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했다. 순간 알았다. 나는 이 집에는 다시는 들어서지 못하리라는 것을
사람이 죽는 것은 사건이지만 장례식과 그 이후에 할 일들은 생활이었다. 남편의 짐과 남겨진 물건들과 옷가지 등등을 정리해야 하는 중노동이 남아 있었다. 꼭 정리를 해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친지들이 그렇게 말했다. 짐이며 옷가지며 천천히 정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그들은 어찌 그런 것들을 그리 잘 알아서 한마디씩 하는 걸까? 망자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미망인의 남은 의무인냥 부지런히 나에게 충고했다. 위로할 마땅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냥 던지는 말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내게 특별히 당부나 부탁을 남겼을 리 만무했다. 또한 가는 날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처럼 조금씩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의 짐은 실로 단출했다. 양복과 셔츠와 겉옷과 바지들, 낡은 티셔츠와 속옷들을 모두 합해도 작은 옷장 하나가 채 차지 않았다. 안방의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옷장을 한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침대 옆에까지 옷장을 세워둔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남편은 낚시와 테니스를 즐겼다. 사진을 찍는 소소한 취미도 있었다. 취미가 세 개나 되는 사람치고는 낚싯대와 테니스 라켓과 카메라들도 소소하게 방 한쪽에 가지런히 잘 정리돼 있었다. 남편이 이렇게 단출한 사람이었나? 생각하는데 또 눈물이 쏟아졌다. 옷들을 정리하다 말고 발작처럼 쏟아지는 눈물,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어떤 울음은 정말 목이 멘다. 목이 아프고 숨쉬기가 곤란한 울음을 겨우 토해낼 때가 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이 불쌍해서 우는 건 지, 남겨진 내가 불쌍해서 우는 건 지 나도 모르겠다. 울다가 실신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건 과장이고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건 과장도 비유도 아니었다. 나는 벽에 기대 울다가 그대로 스르륵 쓰러졌었다. 종일 끼니를 거르고 울었던 탓이리라. 울다가 또 울다가 계속 울다 보면 눈물이 마른다. 허기가 지고 어지럽다.
“이러다 산 사람 죽겠다.”
언니가 나를 끌어 식당 한쪽에 앉혔다. 찰기 없어 보이는 흰쌀밥을 물에 말아 숟가락을 내 손에 쥐어주며 “어여 먹으라”고 손짓했다. “어여 먹으라”는 언니의 말에도 눈물이 뚝뚝 묻어났다.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입에 욱여넣다 보면 신기하게도 몸에 힘이 돌았다. 그러면 다시 눈물이 나왔다. 아니 눈물을 쏟을 힘이 생겨났다.
그렇게 슬픈데 어떻게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분명 그 사람은 몸속의 모든 눈물과 힘을 쏟아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거다. 울다가 지치면 물에 말은 밥을 욱여넣고 다시 울 힘이 생기면 나는 울었다. 그렇게 사흘을 버텼다. 남은 사람이 너무 울어도 망자가 가는 길이 편치 않다며 오빠가 말했다. 80까지 두 부부가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오빠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남편을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 아버지 모두 일찍 여읜 내게 남편은 남편 이상의 존재였다. 친구로 만나서 남편이 됐다. 두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됐고 더 나이 들어서는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줄 삶의 동지가 됐다. 고등어 한 토막을 앞에 두고 하나하나 가시를 발라서 내 밥숟가락에 얹어 줄 때는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하며 어리광을 부리고도 싶었다.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함께 헤치고 지나온 지난한 세월과 생활이 있었다. 매일 내 옆에서 눈을 떴고 내 옆에서 잠들었다. 천둥 번개가 몹시 치는 사나운 밤에도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잠들고 내 옆에는 남편이 있는 것이 확실할 때 나는 안전함을 느꼈다.
우주를 먼지처럼 떠돌다 남편 옆에 살짝 내려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허망하게 하루아침에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