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충동질하기 위해
취미 말고 일을 원했다.
나는 어쩌다 일을 하게 된 사람이라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롯이 어쩌다는 아니다.
결혼을 하고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았고 요즘 말로 독박 육아를 했다. 지금은 한물갔지만 20년 전만 해도 지역의 온갖 정보가 실린 종이로 된 지역 정보신문을 많이들 봤다. 수십 장에 달하는 그 정보지에 딱히 볼만 한 것은 없었지만 나는 늘 취업란을 보고 또 봤다. 아무리 봐도 내게 맞는 일거리는 없었다. 전공도 그렇고 경력도 없고 할 줄 아는 것은 더더욱 없었다. 늘 기대감으로 신문을 펼쳐 들지만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어던졌다. 내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도 사실 몰랐다. 딱히 원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일 뿐이었다. 누가 나가서 일을 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 왔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면 됐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시간이 조금씩 여유가 생기자 일을 하고픈 생각은 거의 갈망이 됐다. 취미도 가졌었다. 퀼트를 해봤고 뜨개질도 했다. 수채화를 잠깐 배우기도 했고 책 읽는 모임에도 나가봤으며 지역의 환경단체 소모임도 잠깐이지만 했었다. 학습지 관련 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계속하게 되지는 않았다. 삶에 있어서 취미는 중요한 것이지만 내게는 취미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 취미 말고 일을 하고 싶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하지만 그 갈망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은 채 세월이 갔다. 일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 준비된 나
일을 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지만 그냥 세월만 보낸 것은 아니었다. 무슨 자격증을 땄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때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표 영어를 3년 이상 하고 있었다. 나중에 영어학원을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으니 일을 하기 위한 준비로 한 것이 아니고 두 아이의 영어를 위해서 일종의 홈스쿨처럼 했었다. 매일매일 루틴으로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을 3년 이상 아이들과 영어를 하고 있었다. 엄마표 영어란 아이들의 영어를 티칭 위주의 학습이 아닌 영어 소리의 자연스러운 노출과 습득을 위해서 환경을 조성하는 거였다. 나는 아이들이 볼 영화, 들어야 하는 영어 원서, 그리고 읽을 영어 원서 등, 자연스러운 노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냈다. 집에는 자연스럽게 영어책들과 영화 디브디 타이틀이 모였고 3년이 지나니 그동안 모은 영어책이 이미 2000권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엄마표 영어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왜 학습이 아닌 티칭인지, 중간에 슬럼프를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이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가 됐다. 영어 관련 이야기를 하라면 밤을 새워가면서도 할 수 있었다. 하다 보니 엄마표 영어에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래도 영어 관련 일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즈음엔 도서관 자원봉사를 나가기도 했다. 두 아이가 집에서 영어 원서로 영어를 한다는 소문이 꾸준하고 끈질기게 동네에 퍼졌었는지 어느 날 둘째 친구의 엄마가 찾아왔다. 이 엄마는 직장인으로 방학만 되면 아이를 두고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이 늘 부담이었다. 자신의 아이도 방학 때 같이 하루 3시간 오전에 영어 책 좀 읽혀주면 안 되겠냐고 제안해왔다. 우리 아이들에게 했던 거랑 똑같이 해달라고 했다. 큰애가 중1이고 둘째가 6학년, 그리고 나는 45세가 끝나가는 12월이었다.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싶었다. 그 손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인도해 줄 것임을 느낌으로 알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친한 엄마랑 상의를 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이 엄마는 상의고 뭐고 자기 아이들까지 부탁한다고 했다. 그렇게 45세 겨울에 나는 갑작스럽게 영어 공부방을 시작하게 됐다. 집에는 영어 원서가 이미 2000권이 넘었고 아이들이 볼 영화 dvd도 50장이 넘었다. 당장 아이들만 있으면 오늘 공부방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나는 3년 이상을 이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방을 시작했다. 나는 좀 망설이기는 했으나 잘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일은 나에게는 딱 맞는 옷과 같은 일이 될 거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우연한 기회는 운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운이 좋았다. 나도 안다. 하지만 운만은 아니었다. 운이 내게 왔을 때 나는 준비돼있었다.
무엇을 하던 3년을 하면 업으로 전환할 기회가 온다.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
a, b, c도 모르는 아이도 영어 소리 노출 3년이면 영어 말문이 터진다. 3년은 참 의미 있는 숫자다.
어떤 일이던 3년이면 풍월을 읊고 10년이면 고수가 된다. 단 조건이 있다. 무엇을 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느냐다. 풍월을 읊는 그 서당개는 분명 아이들이 글을 읽는 그 문 앞마당에서 늘 그 소리에 귀를 쫑긋 세웠을 것이다. 아이들이 합창으로 하는 그 소리가 너무도 듣기 좋고 신기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 거고 하루에 몇 시간이고 그 툇마루 밑을 지켰을 거다. 다른 개들은 하릴없이 땅을 파고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날이 많아도 이 서당개는 그러지 않았다. 대충 해서 3년이 아니다. 그 프로세스를 모두 꿰뚫는 3년이어야 한다. 당신의 취미가 꽃꽂이라면 3년이 지나면 꽃에 관련한 , 식물에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는 해박해있어야 한다. 당신이 요리에 남다르다면 당신만의 레시피는 물론, 새로운 요리를 맛보았을 때 어떤 재료로 어떻게 요리했을지 정도는 술술 알아야 한다. 당신은 요리에 진심이어야 한다. 당신이 뜨개질을 좋아한다면 패턴 정도는 한눈에 휙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하던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뜨개질을 배웠던 나도 딸의 한복을 짰었다. 나 같은 아마튜어를 상대하려면 당신은 일정 정도는 프로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선은 넘어서는 실력을 가져야 한다. 그 프로세스를 잘 알아야 한다. 어려운 건 아니다. 좋아하는 걸 조금만 넘어서면 된다.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것이 아니고 조금만 더 넘어서기. 보통은 그냥 적당히 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 적당히에서 조금만 넘어서면 되는 것이다. 당신이 특별한 경력도 없고 전공도 변변치 않은데 일은 너무 하고 싶다면 당신이 지금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꾸준히 3년을 하고 사람들이 그 일에 모여있는 평균선을 넘어버려라. 원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은가? 평균선을 넘어섰을 때, 당신은 준비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준비됐다면 우연한 기회인 운을 만났을 때 당신도 그 운을 잡을 수 있다. 그 운은 당신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리고,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정말 운이 좋았어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우연하고도 새로운 기회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멋진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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