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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되는 영어 공부방, 판을 확 깔았다

욕심껏 일하고 싶어

  그곳은 영어책을 읽는 곳이야


 느닷없이 얼결에 시작하게 된 영어 공부방은 제법 잘 굴러갔다.

이름도 없고 간판도 없는 공부방이었지만 건너 건너 소문이 났고 아름아름 상담이 이어졌다. 

엄마들은 영어책을 읽히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왔다. 오전에 3시간 수업을 하고 오후엔 새로운 엄마들을 만나 상담을 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느닷없이 시작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일을 해왔던 사람 같았다. 나는 무조건 열심히 했다. 무조건 열심히 했을 뿐 아니라 제법 잘 해냈다.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은 기분, 어제까지 이일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능숙하게 수업을 했고 상담을 했다. 상담을 하는 엄마들 한 명 한 명에게 이 학습법에 관한 설명을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맘껏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행복했다. 예전엔, 영어는 듣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파닉스를 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하루에 3시간씩 영어 노출 3년이면 영어에 관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었다. 내 말은 허공을 맴돌다 내게 돌아오는 혼잣말이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거나 드러내지는 않아도 싸늘하게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들은 자신들이 배운  영어가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죽은 영어인 것을 내 얘기를 들으며 같이 한탄하고 공감했다. 물론 나와 상담을 한 모든 엄마들이 내 말을 이해하고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파닉스를 하지 않고 단어를 외지 않는 학습법은 낯선 것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엄마들도 원하는 것은 있었으니 제발 책 좀 읽혀달라는 것이었다. 영어든 국어든 책을 좀 읽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는 다들 공감했다. 나의 공부방은 영어책을 읽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근처 동네에 잔잔하게 파문이 일었다. 13명으로 시작한 영어 공부방은 한 달이 지나자 3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신바람을 느끼며 수업을 하고 열정적으로 상담을 하면서도 뭔가 모를 갈증이 느껴졌다. 수업을 더 하고 싶었다. 더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실컷 수업을 하고 싶었다. 더 많은 엄마들을 만나고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살림을 하는 집에서 하는 공부방이 아닌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기를 원했다. 나는 판을 확 깔고 싶어 졌다. 








선생님, 돼지갈비 드셨어요?



 나는 바쁘고 행복하고 살아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식구들이 먹을 밥을 하고 반찬도 몇 가지 뚝딱 해놓고는 잽싸게 씻고 아이들을 맞았다. 집안에서 음식 냄새가 풍기는 것이 싫어서 한겨울임에도 자주 환기를 했다. 아이들에게 생활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그때는 마침  둘째가 막 중학교 입학할 나이였는데  둘째는 정말 잘 먹었다. 항상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고기를 좋아해서 자주 고기를 구웠다. 어느 날, 그날도 돼지갈비를 한바탕 굽고는 문을 한참이나 열어놓고 환기를 하고 오후 수업에 오는 아이들을 기다렸다. 수업에 온 한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외쳤다. "선생님 돼지갈비 드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음식 냄새를 맡고 그냥 했던 말이었는데 당시 나는 그 말에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수업을 하면서도 내내 아이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한번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니 점 점 더 불편해졌다. 살림을 겸하는 공부방이니 생활의 냄새가 배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이들이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을 텐데도  나는 그것이 몹시 불편했다. 학생들의 숫자가 점점 늘면서 나는 이참에 독립하리라 결심했다. 아직 식구들 중 그 누구와도 상의를 하지 않았지만 수업이 없는 오후 시간이나 토요일을 이용해서 근처 아파트 매물을 보러 다녔다. 영어수업을 시작한 지 두 달만의 일이었다. 나는 이 학습법에 확신이 있었고 아이들을 잘 지도할 자신도 있었다. 수업을 하면서 새로 만나는 엄마들과 상담을 하면서 엄마들이 얼마나 새로운 영어공부법에 대한 갈증이 있는지도 알았다.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이건 무조건 되는 일이었다. 아니 나는 이일을 꼭 되게 만들고 싶었다. 우리 집 두 아이에게 통했던 이 학습법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면 우리 두 아이가 특별해서 이 학습법이 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딸이 문자도 빨랐고 언어감각이 좀 더 있어서 아들보다 훨씬 빠르게 아웃 풋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자가 느린 둘째가 영어로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가진 언어적인 감수성과 능력은 다 다를 것이지만 이 학습법, 엄마표 영어, 듣기 먼저 시작하는 이 학습법은 적어도 그 아이들이 갖고 있는 그 능력, 그 감수성 그대로의 아웃 풋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좀 더 크게 판을 깔고 더 많은 세상의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부방과 나의 집을 분리해야만 했다. 성격급한 나는 당장 공부방을 할 만한 매물들을 보러 다녔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 단지의 매물들을 보러 다녔고 어느 날 바로 옆 단지 1층의 32평 매물을 보게 됐다. 보자마자 단박에 맘에 들었고 앞뒤 안재고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버렸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이 붐비고 마음껏 수업을 할 생각을 하니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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