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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례온 Sep 13. 2022

사랑하다

넌 나를 사랑해?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묘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시절이 있었다. 단어 선택에 예민한 사람인만큼,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는 말에는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를 분명 좋아했지만, 그건 사랑과는 또 다른 마음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의 전부를 헌신하는 운명적인 관계가 사랑이라면, 너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엔 내 마음이 아직은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너가 빠른 내 걸음에 발맞추기 버겁다고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보폭을 좁히고 속도를 늦출 것이다.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너가 저녁 산책을 하는 와중에 세 걸음에 한 번씩 멈춰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면,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노을을 감상할 것이다. 너의 손을 잡기 위해서 늘 한쪽 손을 비워둘 것이며, 너가 눈물나게 지치는 날에는 양팔로 하루 종일 너를 껴안아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너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좋아하면서 기쁨을 느낄 것이다. 또, 너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대신 분노하고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할 표현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에게 너를 사랑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게 될 가능성을 두고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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