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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을 Dec 04. 2020

나는야 프로 전학러

이제 정착할래!

 나의 학창 시절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뭐 초등학교만 4개를 다녔으니 말 다했지. 이사도 너무 많이 다녀서 10번 이후로 세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나는 그렇게 '프로 전학러'가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새로운 환경을 좋아했고 곧잘 적응했다. 성격이 막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무난했던 거 같다.


 전학 간 첫날에 등교는 혼자 했지만 하교는 항상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했다. 좋게 말하면 편안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만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렇게 옮겨 다닐수록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폰보다는 '편지'를 통해서 안부를 주고받곤 했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편함을 보는 것이 또 다른 낙이었다. 새로운 아이들도 좋았지만 어쩌면 예전부터 알던 아이들도 마음 한편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9년 전.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사귀게 된 삼총사.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난 그때의 친구 두 명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어렸지만 깊이 친해졌고 서로의 집에 드나들기를 밥 먹듯이 했다. 친구 어머님은 슈퍼를 운영하셨는데, 갈 때마다 과자 한 움큼씩 쥐어 주셨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단순한 친구 관계보다는 가족과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들도 일 년 반. 나는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렇다고 슬퍼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한 번씩 놀러 오면 된다고 하셨고 그 당시에는 '그래! 전학을 갈 뿐이지. 친구들 보러 오면 되지.' 이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깊었던 아이들과 헤어지고 또 다른 학교로 갔다. 한 번 놀러 가야지 마음먹고 실천하기까지 1년이 걸렸다. 오랜만에 모이는 삼총사라 생각만 해도 설렜다. 둘은 내가 못 본 사이에 더 깊은 사이가 되어있었다. 분명 우리는 반가웠는데 걷잡을 수 없는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다 해도 거리가 멀어지거나 자주 보지 못하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보러 가는 길은 신났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왠지 씁쓸했다. 나의 모든 걸 줬던 친구들인데 한 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서로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멀어짐이었다. 그 뒤로 나의 인간관계에 '정'과 '미련'은 버렸다. 어차피 또 언젠가 떠나야 하고 너무 많은 걸 주고 간다면 그만큼 그리울 거 같았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깊은 얘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알고 지내는 친구들은 많지만, 내가 편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사실 없다. 어떤 이는 나에게 인맥이 넓다고 하지만 글쎄. 여러 명 알고 지내기는 하지만 막상 누구랑 제일 친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한 번은 "나는 이렇게 다 털어놓는데. 왜 넌 네 얘기를 한 번도 안 해?"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멘붕에 빠졌다. 서운함이 섞인 말투였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게 사실이었고 설사 있다 한들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원하던 나는 누구에게나 '밝은 사람'이었다. 겉은 분명 내가 원하던 모습을 이루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내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건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떠돌이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걸 결혼을 6개월 앞둔 이 시점에야 깨달았다. 그에게는 나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우리 사이는 더 돈독해져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까지 했다. 처음으로 마음이 정착한 것이다. 어쩌면 이에 대한 두려움이 컸었는지도 모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첫 발을 내디뎠으니 앞으로는 연극하는 삶이 아닌 진정한 나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러한 모습이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 선행되어야 할 나만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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