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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Mar 31. 2020

동행은 같이 빵을 나눠먹는 사이

1. Companion 동행, (삶의) 동반자

1. Companion (동행, 삶의 동반자) : 라틴어 Com(함께) + panis(빵). "함께 빵을 먹는 사이"
2. Friend (친구) : 원시 인도유럽어 pri-(사랑하다). "사랑하는 사이"


  ~ 2019. 04. 17(수) 여행 떠나기 전


 '나랑 한달동안 같이 빵 나눠먹을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의 첫 유럽여행은 패키지 여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미 패키지였는데, 숙소와 교통편은 업체 측에서 마련해주고 현지에서는 개별 여행이 가능한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자유도 보장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골치 아픈 숙소 및 교통편 예약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동행은 무려 40명이 넘었었다! 이들은 이전까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도 없었는데, 동일한 시기에 같은 여행사를 통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출발 2주 전 사전 준비사항들을 알려주기 위해 업체 측에서 마련한 사전모임을 통해서 처음 이들과 만났는데,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가 여행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솔직히 처음 모임 가지기 전엔 긴장되기도 했었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과 같이 한 달 넘게 여행을 떠나야 하니 '이상한 사람은 없을까? 또라이 같은 사람이 있으면 여행이 힘들어 질 것 같은데' '의견 안맞는 사람들이랑 같은 조에 걸리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괜히 앞선던 것이다. 서로 너무나도 잘 아는 친한 친구나 가족, 연인들끼리 같이 여행가도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하니 어찌 보면 걱정하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40명 넘는 일행 중 딱히 모난 사람은 없었고, 그 덕분에 그들과 함께 재밌는 추억도 많이 쌓았다. 일행 중 몇 명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가끔씩 만나는데, 당시 추억을 디저트 삼아 커피 한 잔 하며 계속해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알쓰'라 추억을 안주삼아 소주 걸치는 낭만적인 행위를 못한다)

한 달의 유럽 여행을 같이 했던 전용버스와 동행들 (출처 : 직접 촬영)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씩 ‘어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더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라도 같이 간 일행들과 취향이 맞지 않으면 금방 머릿속에서 잊혀지지만, 반대로 마음맞는 사람들과 떠나서 많은 추억을 쌓으면 별 특별한 것 없던 여행지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그만큼 동행은 중요하다. 이를 영어로는 companion이라고 하는데, 라틴어로 ‘함께’를 뜻하는 com과 ‘빵’을 의미하는 panis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로 ‘함께 빵을 먹는 사이’의 뜻이 된다. (참고로 ‘평생 같이 빵을 먹는’ 존재라는 개념에서 ‘(삶의) 동반자’의 뜻도 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여행을 떠날 때 같이 떠나는 동행은 다양하다. 연인 혹은 가족들끼리 떠나기도 하고, 나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갈 때도 있다.


 그중 가장 흔한 경우는 아무래도 친한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다. 친구는 프랑스어로 ami,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로는 amigo, 그리고 이탈리아어로는 amico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사랑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amare에서 유래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랑하는 사이’의 뜻이다. 친구들끼리 "사랑해 친구야"라고 하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생각만 해도 느글느글하다) 최소한 진심인 것만은 확실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어로 친구를 의미하는 friend와 독일어 freund도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랑하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원시 인도유럽어 ‘pri-’(사랑하다)에서 유래) 즉, 친구끼리 여행을 가는 것은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우정을 더 돈독하게 만드는 목적으로 즐겁게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우정여행을 떠난 뒤 그 관계가 우정 또는 사랑에서 증오로 바뀌어 절교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떠날 땐 웃으면서 같이 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서로에 대한 증오만 가득한 채 따로 비행기 표 끊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를 겪어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난감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공금을 모아서 여행했다면 비용처리 문제가 남아있다. 한바탕 싸워서 연락하기 정말 싫은데, 정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연락해야 한다. 다시 말도 섞기 싫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비용이 부담되는 것이다. "저기 (흥) 나도 연락하기 진짜 싫은데 (흥) 그 때 피렌체에서 스테이크값 내가 계산했는데 한 사람당 30유로 나왔거든? (흥흥)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한 33,200원 정도 되니깐 천원절사 그딴거 하지말고 저 금액 그대로 내 계좌에 넣어줘" 이런 불편한 관계가 여행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니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만약 같이 찍은 사진이 있고 그 사진이 정말 잘 나왔다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고 한다. 같이 찍힌 그 친구의 모습이 꼴도 보기 싫은데, 내 모습과 풍경은 거의 인생샷 급으로 잘 나와서 버리기가 너무 아까운 것이다. 일단 그 친구 부분만 없애려고 편집을 시도해본다. 화면을 이리저리 확대해서 내 모습만 나오게 하기 까지는 일단 성공한다. 그런데! 하필 그 친구가 어깨동무를 하는 바람에 내 어깨에 친구의 팔이 떡하니 올려져있다. 그 팔을 없애려고 포토샵을 켜서 편집하다보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허무한 기분이 들어 이내 포기한다. 여행 다녀오면 ‘남는 게 사진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진마저 건질만한 게 없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얼마나 짜증날까.  


 사실 여행에서 어떤 힘든 일을 겪는 과정을 통해 본모습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 동행으로 적합할 지 알지 못한다. 평생 옆집에 살며 같이 늙어가자고 약속했던 친구와 여행가서 대판 싸우고 이후 서로 근처에서 얼씬도 안 할 수도 있는 반면,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일정이 맞아 어쩔 수 없이 같이 떠났던 친구와 일명 '찐친'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옆에 있는 친구의 본 모습이 궁금한가? 그럼 한 번 여행을 같이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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