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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Mar 27. 2020

여기에 뭐하려고 오셨어요?

2. Immigration 입국심사

1. Immigration (입국심사) : 라틴어 in(안) + migrare(움직이다). "안으로 움직이다, 들어오다"
2. Vacation (휴가) : 라틴어 vacare(비워내다)에서 유래. "평소에 가지고 있던 걱정과 스트레스를 비워내는 것"
3. Travel (여행) : 라틴어 tripalium(고문기구)에서 유래. "고문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추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과정"


 2019. 04. 17(수) 런던 히트로 공항


 "니 뭐할라고 여기 왔노?"


 마침내 여행 날이 다가왔고 40명의 동행들과 함께 큰 기대감을 품은 채 비행기에 올라탔다. 하지만 긴 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피곤한 것 외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런던 구경이고 뭐고 일단 빨리 숙소 가서 씻고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착해서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길~게 늘어진 줄이었다. 입국심사라는 과정이 아직 남은 것이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기에 심사 자체는 걱정되지 않았지만, 긴 대기시간 때문에 피곤함은 점차 쌓여갔었다. 할 수만 있다면 새치기를 해서라도 빨리 입국심사를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기 위해 인내심을 가진 채 얌전히 기다렸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어서 마침내 입국심사관과 대면하게 되었다. 사실 입국심사 시 물어보는 질문은 거의 정해져 있다. 어디서 잠을 자는지부터 시작해서 귀국 항공권은 있는지, 또는 며칠 동안 머물 것인지 등에 대해서 물어본다. 나 역시도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담당자를 만났기에 간단한 질문들만 받고 빠른 시간 안에 입국심사를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운이 안 좋으면 질척거리는 입국심사관으로부터 말꼬리 잡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미국 여행 갔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간다고 했다가 '몇 년 친구냐? 친구는 어디 대학교 무슨 학과생이냐? 지금 친구는 방학인데 왜 그 친구가 한국에 안 오고 니가 미국에 왔느냐?' 등의 질문을 받느라 20분 동안 묶여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입국심사관에게 꼬투리 잡힐 만한 답변은 피하는 게 좋다. 


 입국심사 과정은 간단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름 중요하다. 영어로는 immigrati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안'을 의미하는 in과 '움직이다'는 뜻의 라틴어 migrare가 합쳐진 단어다. 즉, '안으로 움직이다 혹은 들어오다'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일'을 뜻하는 '이민'을 가리킬 때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종종 불법체류의 목적으로 입국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심사를 유독 까다롭게 진행하는 경우가 있으며, 입국심사관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 사람의 입국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다시 돌려보내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특히 미국은 불법이민 외 테러 위험도 산재하기에 더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긴 입국심사를 거쳤던 히드로 공항 (출처 : 직접 촬영)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자 중요한 것은 '여기 왜 왔냐'이다. 방문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한 여행객들의 대답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놀러 왔다' 아니면 '여행 왔다'의 두 가지 중 하나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실 여행을 의미하는 영어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 관광을 의미하는 sightseeing부터 travel,  vacation, tour, trip 그리고 journey 등이 있는데, 그 목적에 따라서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여유는 무슨. 베르사유 궁전도 보고 몽생미쉘도 가야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사진 다 나와도 그 앞에서 엣지있게 나온 내 모습 하나정도는 챙겨가야지'라는 생각이면 '7박 9일 유럽 5개국 여행'과 같이 듣기만 해도 지치는 관광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참고로 내가 다녀왔던 일정도 '28박 30일 유럽 11개국 21개 도시'로 만만치 않았었다. 어찌 보면 나도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어렵게 먼 길 떠나온 김에 한 번 쭉 둘러보자'는 마음이 컸다. 이에 해당하는 단어는 sightseeing인데, 단어 그대로 '구경거리나 명소(sights)들을 보러(see) 다니는 개념'이다. 


 '난 그냥 두 발 쭉 뻗고 아무것도 안하면서 쉴래!'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이 경우에는 휴가를 의미하는 vacation 또는 프랑스어의 vacance(바캉스)가 적합하다. 이 단어들은 모두 '비워내다' 의미의 라틴어 vacare에서 유래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에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즉, 휴가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채워 넣는 일상생활'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걱정과 스트레스'를 비워내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평소에 일상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너무 많은 걱정, 그리고 쓸데없는 지식들로 머리를 채운다. 하지만 정작 채워야 할 것은 채우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바로 가슴속의 '공허함'이다. 그렇기에 너무 많이 채워 과부하가 걸린 몸과 머리를 비워내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라며 공불염을 습관처럼 중얼거리고 있다면 휴가를 떠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자. 이런 목적으로 떠날 경우 프랑스 니스 등 휴양도시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해변에 누워있거나 책을 읽고, 심심하면 바다수영을 하며 최대한의 여유를 누리면 된다. 아니, 책도 읽지말자. 무엇을 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멍 때리다가 오는 것이 최고다.


 만약 자기 성찰이 목적일 경우에는 travel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이 단어는 '노동'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travail에서 유래했는데, 이 프랑스어는 '고문기구'를 뜻하는 라틴어 tripalium를 그 어원으로 한다. (참고로 이 고문기구는 큰 말뚝 세 개(tri)를 엮어 만드는데, 거기에 사람을 묶은 뒤 며칠동안 방치해 두는 형벌을 집행할 때 사용되었었다) 이를 참고하여 해석하자면 여행이라는 것은 '단순히 노동의 차원이 아니라 고문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추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좋게 풀어서 이렇게 해석한거지 실제로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던 조상님들의 말씀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정확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그냥 관광으로 왔다고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 바캉스 느낌의 여유를 즐길 때도 있고 고행과도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으며, 잠깐씩 투어를 떠날 때도 있다. 하지만 처음 떠날 때 생각했던 가장 주된 초점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긴 줄에서 대기하는 동안 '영어로 물어볼 것인데 제대로 대답 못하면 어떡하지?'라며 긴장하기보다는, 여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자신이 왜 여행을 왔는지 한 번 더 곱씹어보는 계기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대기 시간 길다고 욕하면서 짜증내기 보단 앞으로 어딜 가고 뭐할지 생각하며 정신승리 해보자는 이야기다)

바쁜 여행일정 속에서 나름의 여유를 즐겼던 프랑스 니스 해변가에서 (출처 : 직접 촬영)


 참고로 2019년 5월 13일, 그러니깐 내가 출국한 날짜 기준으로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점부터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E-Passport Gate를 시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국적의 전자여권 소지자는 바코드 찍고 프리패스로 들어가면 끝이다. 한 달만 늦게 출국했어도 이런 혜택을 당당하게 누리며 편하게 갈 수 있었는데 아쉽다 ㅜㅜ 런던 외에도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 등 자동출입국 심사를 거치는 곳은 몇 군데 있으니, 출국 전 미리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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