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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Apr 14. 2020

모두를 위한 공간

3. Pub 펍 (영국 전통 술집)

1. Pub (펍) : Public House의 줄임말. "공공의 집"
2. Handicap (핸디캡) : "Hand in a cap" (모자에 손 넣어!)
3. T.G.I.F. (불금) : "Thanks God It's Friday"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드디어 금요일이군요!)


 2019. 04. 17(수) 영국 런던에서 (1)


 입국심사 끝내고 숙소 도착해서 좀 쉬니깐 슬슬 정신이 차려졌다. 어느 정도 정신줄을 잡고 짐 정리하고 나니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온 '꼬로록' 소리가 배 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배가 고파진 것이다. 얼른 허기를 채워서 배를 진정시키기 위해 저녁 먹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그 날 저녁에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홋스퍼'와 '맨체스터 시티'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축구 경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장소는 바로 펍(pub)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영국 사람들은 진짜 말 그대로 축구에 환장을 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거의 종교처럼 믿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도 유별나지만 특히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펍에 모여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며 맥주를 즐긴다. 나는 굉장히 운 좋게도 그 문화를 조금이나마 현지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운 좋게도 숙소 근처에 <The Rylston>이라는 괜찮은 펍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저녁 7시쯤 동행들과 함께 펍으로 향했다.                                        

피맥을 즐기며 축구경기를 봤던 The Rylston 펍 (출처 : 직접 촬영)


 가자마자 피자와 맥주를 시킨 뒤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두명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의 젊은 사람들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편한 복장으로 자연스럽게 서로 인사하며 자리를 잡았다. 경기는 손흥민 선수가 2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펼치면서 토트넘이 4-3으로 이겼다. 우리는 손흥민 선수가 골 넣을때마다 고함지르며 좋아했는데, 우리 앞에 앉아있던 분들 중 상대팀 응원하시는 분이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며 째려보셨다. 다행히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토트넘 팬들이 더 많았고 그분들도 같이 큰 소리로 응원했으며, 더군다나 그 어르신은 훌리건 같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크게 주눅 들지 않았었다. 손흥민 화이팅! (전 크게 잘못한 것 없어요! 왜 저한테만 그렇게 차가운 눈길을 보내셨던 건가요)

     

 그런데 Pub이라는 공간은 영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단어는 public house의 줄임말로, 언어 그대로 해석하면 ‘공공의 집’이 된다. 우선 펍에서 판매하는 맥주나 음식 값은 다른 식당에 비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참고로 생맥은 한 잔에 4파운드, 즉 한화 6천원 정도다) 게다가 출입도 자유롭다. 자유롭게 나갔다 들어갔다 해도 눈치주는 사람은 전혀 없다. 드레스 코드나 나이제한, 성별, 인종 등의 제약조건도 거의 없다. (물론 인종차별이 심한 곳도 간혹 한 두군데 있기는 하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간판을 보면 왜 모든 사람을 위한 집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런던 거리에는 다양한 펍들이 즐비해있는데, 특이하게도 펍의 간판에 각각 다른 특색있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권투 글러브 끼고 있는 양부터 녹색 코트를 입은 소년까지 정말 다양했었다. 게다가 펍의 이름들은 그림에 어울리도록 특색 있고 쉽게 지었다. 이 모든 것들은 문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당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장소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펍의 이름인 'The Greencoat Boy'는 '녹색 코트를 입은 소년'의 뜻이며, 왼쪽 상단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처 : 직접 촬영)


 또 다른 영국 문화권 국가인 스코틀랜드에도 펍 문화가 널리 정착되어있는데, 그곳에서 ‘Handicap(핸디캡)’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친구들끼리 술 한잔 마신 뒤 계산할 때 누군가가 'hand in a cap'이라고 외치며 모자를 벗으면, 각자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 뒤 주먹을 쥔 채로 모자에 넣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먹 쥔 상태이기에 누가 정확하게 얼마를 낸 것인지 모른다. 지금 여유가 없는 친구들은 돈 내는 흉내만 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생색내지 않으며’ 여유있는만큼 돈을 낸다. 그렇기에 사정이 여의치 않은 친구들도 큰 부담 없이, 자존심도 상하지 않은 채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멋있지 않은가?      


 영국 펍의 어원이나 스코틀랜드의 핸디캡 어원 등을 보면 알겠지만 펍이라는 공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름의 정(情)이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공간이면서, 글을 못 읽는 사람들도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쉽게 지은 펍 이름에 그림까지 넣은 간판, 그리고 친구들과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시는 문화까지. 이토록 정겨운 공간에서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며 보는 축구 경기는 놓치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펍 문화 관련하여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불목(불타는 목요일)과 비슷한 개념인 ‘Thirsty Thursday’, 즉 ‘목마른 목요일’이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금요일 하루만 지나면 주말에 쉴 수 있으니 목요일부터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불목이 한창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할 시간인 오후 4시 혹은 4시 반부터 시작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 시간대에 펍을 가면 정장 입은 직장인들이 뚱뚱한 백팩을 옆에 내팽겨쳐 둔 채 야외에 서서 맥주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불목이 있다고 해서 불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불금을 영어로는 ‘T.G.I.F’라고 하는데, 이는 ‘Thank God It’s Friday’의 약자다. 그런데 이 표현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맞다. 바로 미국의 레스토랑 체인의 이름인 T.G.I. FRIDAYS(T.G.I. 프라이데이스)와 동일하다.     


 ‘목마른 목요일’이나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드디어 금요일이군요!’ 등의 표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주말은 어느 나라나 상관없이 설렘을 안고 기다리는 날인 듯하다. 이러한 날에 축구 경기가 있으면 광적인 축구 팬들과 글을 읽지 못하는 이들 등 모든 사람들이 펍이라는 공간에 모여 그들의 시간을 즐긴다. 주로 젊은 사람들이 불타는 밤을 즐기는 우리의 문화와는 달리 나름의 정겨움도 느껴진다. 모든 사람들이 맥주 한 잔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공간인 펍에서 그들의 문화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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