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Colic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는 일상이 조금 익숙해질 무렵,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이유 없는 울음, 해석되지 않는 밤. 바로 영아산통(Colic)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울음은 커졌다. 한 시간 전에 분유를 먹였고, 기저귀도 말랐고, 방 온도도 적당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울었다. 팔에 안아도, 달래도, 눕혀도 울고—결국 아내도 함께 울게 되었다.
혹시 아이가 아픈 건 아닐까,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정시켜보려 젖병을 다시 물려봤지만, 이미 충분히 먹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울음. 수유 간격 없이 자주 먹이는 것이 오히려 아이의 위장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인터넷 글을 보고 나서야, ‘더 먹이는 것만이 답은 아니구나’ 싶었다. 배를 따뜻하게 감싸고, 백색소음을 틀고, 공갈 젖꼭지를 물려보기도 했다. 어떤 날엔 조금 진정되었고, 어떤 날엔 소용없었다. 무엇이 효과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순간엔 그저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영아산통을 의미하는 ‘Colic’이라는 단어는 '결장'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olon에서 시작해, 중세 영어에서는 ‘장에서 오는 복통’을 의미했다. 오늘날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아기의 격렬한 울음을 뜻한다. 우리말 ‘영아산통’의 ‘산통(産痛)’은 원래 해산할 때 느끼는 극심한 배의 통증을 가리킨다고 들었다. 내가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산모들이 말하듯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기의 울음이 그 이름을 공유한다는 건, 이 작은 몸이 감당하는 통증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생후 3~4주 무렵 시작돼 6주에 가장 심해지고, 보통 3~4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한다. 진단 기준도 있다—하루 3시간 이상, 주 3일 이상, 3주 이상. 하지만 현실 속의 울음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의 울음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면, 기준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영아산통의 원인은 아직 불분명하다고 한다. 위장의 미성숙, 기질적인 예민함, 수유 중 공기 섭취 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뚜렷한 정답은 없다. 그래서 더 무력해진다. 아이는 아프고, 부모는 이유를 모른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보다, 해석할 수 없는 고통이 더 깊게 사람을 흔든다.
예방이나 완화를 위한 방법은 많다. 과식 피하기, 수유 중 트림시키기, 배 따뜻하게 하기. 하지만 이 모든 건 ‘가능한 시도’일 뿐, ‘확실한 해법’은 아니다. 아기의 울음은 통증의 언어고, 부모의 태도는 그걸 해석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아무 소용없는 듯 보이는 모든 행동—안고, 토닥이고, 다시 눕히고, 또 안고—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아이와 시간을 함께 버틴다. 우리 아기에게 이 밤은 기억되지 않겠지만, 아내와 나는 평생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원인을 몰라 더 힘들었고, 그래도 곁에 있었던 그 시간을. 울음은 그쳤고, 아이는 잠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육아는 무언가를 ‘잘 해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무력한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일, 울음이 멈출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일. 위로란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혼자 겪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그 밤 조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영아산통은 부모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아기가 자라며 겪는 또 하나의 성장통이다. 그리고 부모는 그 옆에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버티며, 또 조금씩 자라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