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허리뼈를 평생 떠안고 살려면 주변 근육을 키워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마흔까지 운동과는 담 쌓던 사람이라 근육으로 담장부터치고 보자는 심보로 헬스장부터 들어섰다. 허리뼈를 넘어 등, 배, 팔, 엉덩이 근육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통증 재발 할까 무서워 설정한 안심 모드다. 내 눈엔 척추만 보이고 마음도 온통척추뿐이었다. 천골도 척추뼈의 하나지만 마디마디가 아닌 하나로 퉁 친 거라, 알았어도 넘어갔을 게다. 나의크고 작은 근육들을 일구느라 헬스는 그 나름대로 소임을 다했다. 아프지 않는 삶으로서 만족했다.
필라테스와 소매틱요가를 접하면서 몸에한층 더 깊히 들어갔다. 바다에서 스노우쿨링만 하다가 해저탐험 하는 듯했다. 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쓰지 않던 근육을 쓸 때 신세계를 느낀다고들 한다. 내 몸에서 파라다이스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천골(엉치뼈)'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골 맛 모르고 생을 마감했다면 억울해서 눈 뜬 장님 될 뻔 했다. 꼬리뼈 보다 더 퇴화 취급한 게 천골이었다. 꼬리뼈야 방향키로 주워 듣기라도 했지 천골은 그리 강조되진 않았다. 천골을 느끼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어려워서 피했지 덜 중요해 그런 건 아닐 게다. 천골(sacrum)이 '신성시되는(sacred)' 말에서 유래했듯이 말이다.
난 골반이 뒤로 말린 체형이었다. 허리가 아파 골반을 뒤로 기울여 앉아 버릇해 천골도 함께 누웠었다. 필라테스를 할 적마다 내 천골쪽을 가르키며 좀 일으켜 세워보라는 지적을 꽤나 많이 받았다. 40년 묵은 뼈를 하루 아침에 일으켜 세우기란 쉽지 않았다. 천골을 세우면 허벅지 앞과 고관절까지 당겼다. 남들 바닥에 앉아 운동 할 때 혼자 박스 신세를 졌다. 이런 식으로 남보다 위에 있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데. 시간날 때마다 천골 품은 골반을 앞으로 뒤로 번갈아 기울였다. 서든, 앉든, 눕든 천골 세우기 프로젝트에 막이 열렸다. 누워 지낸 천골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생전 못 느낀 이상야릇한 감각이 엉덩이 사이에서 일어났다.
천골 하나 세우니 세상이 달라졌다. 앞에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가 뒤로 당겨졌다. 납작해진 아랫배로 척추도 바로 섰다. 척추가 길어지니 들린 흉곽도 아래로 떨어졌다. 천골이 뒤로 말렸을 땐 등이고 목이고 덩달아 앞으로 구부러져 숨도 가빴는데 이게 왠일인가. 바른 자세로 공기가 더 많이 드나들기도 하지만 천골도 호흡을 함께 했다. 그런 뒤로는 구부러져 있던 무릎도 펴졌다. 천골 덕에 더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찌 그런 동작을 하느냐며 놀라던데 속으로 난 더 놀랐다. 호흡은 가스교환 만이 아니었다. 들이마신 숨은 천골까지 도달하고 천골이 다시 되받아쳐 숨을 밖으로 내몬다. 쉬어 본 자만이 누리는 이 느낌,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천골도 어깨뼈처럼 역삼각형이다. 그래서인지 천골도 어깨처럼 삼면이 관절이다. 양 옆으로는 커다란 골반뼈와 만나 천장관절을 이룬다. 위로는 허리뼈, 아래로는 꼬리뼈와 만난다. 모름지기 관절이라 함은 움직이는 곳이거늘 화석처럼 살았다. 분절 하나하나 움직이는 목-등-허리 뼈와 달리 4-5개 척추가 한통속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등뼈도 막대기처럼 한 통 속이었지만). 손바닥 위에 막대기 세워 중심잡기 놀이하듯 천골이 다른 척추를 세운 셈이었다. 척추를 일으켜 세우는 근육으로 유명한 척추기립근(세움근)도 시작점은 천골이다. 천골부터 뒷목까지 길게 연결된 척추기립근을 비롯해 웬만한 상체, 하체 근육이 천골에 붙어있다.
엄마의 레퍼토리가 있다. 나를 낳을 때 머리만 밖으로 나와 목 졸려 죽을 뻔 했다고. 나 역시 아이를 2박3일에 걸쳐 낳았다. 아이 머리가 내 골반 사이에 낀 채로. 천골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골반 안의 공간 크기가 달라진다. 엄마와 내가 아이를 순조롭게 낳지 못한 게 과연 힘의 논리만 있었을까. 퇴근 하면 천골 밑에 마사지볼을 끼워 이리저리 잘 굴린다. 출생의 비밀도 머릿속을 구른다. 아무렴 어떠랴. 천골 마사지로 온 몸이 개운한데. 얼굴 주름까지 펴지는 이 느낌이 중요하지.
드러누워 양 무릎 접어 두 손으로 끌어안으면 천골이 인기척 한다. 천골을 동서남북으로 천천히 회전시킨다. 일명 '천골시계'라고 하는데 평소 불편했던 곳은 시계바늘이 느리게 간다. 천골을 굴리고 나면 '화~'한 민트향이 퍼져 나온다. 천골을 온전히 느끼는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뼈를 가지고 노는 사람이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납작했던 뼈가 둥그스럽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천골은 본래 앞이 오목한 뼈였다.
천골이 납작한 사람보다 둥근 사람이 대체로 덜 불안해 하고 밝은 에너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어 그런지 내 안에 천골 밥그릇이 있는 것만 같다. 천골이 접시라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뼈와 뼈를 연결하는 게 근육이라 빚는대로 만들어지니. 뼈를 깎는 고통 없이도 성형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 천골 그릇에 담긴 소중한 장기를 상상하며 천골을 등받이 삼아 오늘도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