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하면 사람들은 우락부락, 울룩불룩, 자글자글한 결을 떠올린다. 겉근육을 한꺼풀 벗긴다 손 치더라도 어깨나 척추를 움직이는 속근육을 강조한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는 않지만 숨에도 결이 있다. 숨결로서. 호흡은 살아 있는 당연한 수단으로 여긴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24시간처럼.거저 받은 근육도 절로 쓰이는 것과 내 의지로 쓰는 건 쉽게 건너는 강이냐, 건널 수 없는 강이냐를 만든다. 호흡할 때 쓰이는 '횡격막(가로막)'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횡격막도 엄연한 근육인데 우린 잊고 산다. 공기의 소중함을 놓치고 살듯이.
나 역시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횡격막을 내장 취급 했을 게다. 심장과 폐처럼 내 의지로는 움직일 수 없는 근육인 줄 알았다. 우리 몸의 근육은 대부분 길쭉길쭉한 세로형이다. 횡격막은 이름처럼 가로형으로 위아래 명확히 선 긋는 막이다. 생긴 것부터 비범하다. 몸 좀 써 본 전문가들은 몸에서 가로로 된 근육만 잘 챙겨도 에너지가 솟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횡격막을 느낀 순간부터 쉬어지는 대로 쉬다 가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에 치우쳐서, 나 편한 대로 숨을 쉬기엔 횡격막에게 미안한 일이다.
횡격막은 흔히 우산 같다고들 한다. 위로 둥그스럼 불룩해서. 나 역시 횡격막 체험 전에는 우산으로 보였다. 횡격막의 영향력을 느낀 뒤로는 웅장한 '돔' 건축물이 따로 없다. 횡격막 위로는 심장과 폐가, 아래로는 위와 장이 있다. 숨을 마실 때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고 내쉴 때 위로 올라간다. 통상 근육이 짧아지면 수축하고 길어지면 이완한다고 한다. 혹은 힘을 줄 땐 수축, 놓을 땐 이완이라든가, 본래 자리를 이탈할 때 수축, 되돌아갈 땐 이완, 이런 식이다. 횡격막 입장에서는 숨을 마실 때 돔이 뒤집히며 수축하고 숨을 내쉬면서 또 한차례 뒤집혀 이완한다. 근육이 특이하네, 움직임 한 번 멋지군, 차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공기를 끌어들이고 내보내느냐에 따라 위아래로 놓인 장기의 지각변동을 좌우한다. 손끝 발끝까지 얼마만큼의 맑은 공기와 노폐물을 배달할지를 결정한다. 순환계, 호흡계, 소화기계...도대체 진료과 몇 개를 담당하는 건가. 마흔까지 별명이 종합병원이었는데 횡격막을 일찍 만났다면 한 방에 해결 될 문제는 아니었는지.
"마시며 팔 들어 올리고, 내쉬며 다리 뻗고"처럼 호흡은 항상 움직이는 구령에 따라붙는다. 팔다리가 먼저 가 있고 나중에 숨이 뒤쫓는 엇박자였다. 횡격막의 오르내림을 느끼는 순간 운명은 바뀌었다. 횡격막은 마시는 코와 내쉬는 입과도 죽이 맞았다. 결국 호흡에 팔다리가 따라 붙는 게 순리였다. 호흡 믿고 몸을 툭, 내맡기게 되었다. 호흡이 리드하니 몸 구석구석 가동범위는 더 열리고 더 뻗치고 더 구부러졌다. 지금 여기, 현재 상태를 호흡이 알려주었다. 가만히 있을 땐 그 나름대로 호흡을 관찰한다. 횡격막도 근육인지라 더 크게 호흡해 공간을 넓히면 체력 뿐 아니라 마음 근력까지 올라간다. 횡격막이 지휘해 갈비뼈 사이부터 등, 옆구리, 회음부 근육까지의 화음을 느낀다.
다리가 공중이나 뒤로 넘어가 몸이 뒤집힌 상태에서는 횡격막도 뒤집어진다. 가쁘게 가슴으로 호흡 할 땐 이 자세에서 숨이 막혔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몸을 뒤집은 자체도 대단한데 횡격막이 중력을 헤쳐나갈 땐 힘든 일을 해낸 것만 같다. 숨만 잘 쉬어도 대단한 사람이 된다. 숨 가쁘게 사느냐 마느냐는 횡격막 하기에 달렸다. 공기를 적게 들이면 헐떡대는 횟수로 채우게 마련이다. 화를 내거나 흥분할 여지도 많아진다.
횡격막 수축을 위해 난 가끔 숨을 마신 상태에서 4초 정도 멈춘다. 코로 들어온 공기로 몸속 태풍이 한 차례 일고 횡격막 텐트를 4초간 펼치는 그 순간을 만끽한다. 참았던 내면을 날숨으로 한껏 내보낼 때 후련함을 느낀다. 피부로 나오는 땀이나 입으로 내뱉는 공기나, 뭐가 다른가. 아니 땀 보다 공기는 손 안대고 코 푼 격이다.
노력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 걸로 치면 근육 만한 게 없다. 성과가 두드러지게 눈에 보이니 자신있게 말한다. 쓰면 쓸수록 틀림없이 는다. 숨을 더 잘 참고 더 많이 토하다보면 개과천선, 도인 되는 건 시간 문제. 어쩌면 마음 넓은 사람은 횡격막 평수도 넓은 게 아닌가 싶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돔' 양식 건축물이 우리 몸 안에도 있다. 내 몸을 세우고 짓는 건 식스팩 복근이 아니라 횡격막 근육이었다.